죽은 나무에 산 부처 새겨 ‘깨달은 고목’
죽은 나무에 산 부처 새겨 ‘깨달은 고목’
  • 휴심정 이길우
  • 승인 2016.05.13 10: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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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불상 조각가 오윤용씨
“썩은 나무에서 핀 꽃 보고 죽음과 삶 하나임을 느껴”
‘그 때’ 이후 단 하나도 판 적 없고 자랑한 적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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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산속 썩어가는 나무에서 그는 꽃을 보았다. 벼락맞아 불에 타 죽은 나무에서 부처의 얼굴을 떠올렸다. 오랜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한 채 말라가는 나뭇가지에서 삶의 향기를 느꼈다. 화엄의 세계가 거기 있었다. “남들에겐 보잘 것 없는 나무 조각일지 몰라도, 저에겐 부처의 미소였어요. 큰 가르침을 주신 큰스님의 자애로운 말씀이기도 했구요.” 그래서 칼을 댔다. 그 순간, 죽은 줄 알았던 나무에선 생명의 기쁨이 뿜어져 나왔다. 문수보살과 금강보살이 부드러운 미소를 띤 채 그를 바라보았다.
 
 지난 40년간 홀로 나무 불상을 조각해 온 오윤용(56)씨가 부처님오신날인 14일부터 경남 양산 통도사 앞 한점 갤러리에서 첫 불상 전시회를 연다. 기존의 불상과는 확연히 다르다. 고목에 핀 화려한 꽃처럼 부처가 살아 숨쉬는 듯 하다.
 
 타고난 솜씨로 부르는 게 값…스승 스님 열반 뒤 방황
 
 그는 전남 완도의 청산도에서 고기를 잡는 가난한 어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8남매 중 6째였다. 공부가 싫었다. 그림이 좋았다. 교과서에서 본 미켈란젤로의 조각품을 보고 조각가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중학교를 졸업하곤 무작정 부산으로 갔다. 15살 때였다. 조각 공장에 취직했다. 나무로 불상을 깎아 일본에 수출하는 회사였다. 군대를 제대한 뒤 본격적으로 불상을 조각했다. 처음엔 오래된 불상을 보고 모방했다. 타고난 솜씨였다. 그가 만든 목불상은 많은 절에서 사갔다. 입소문이 나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수월 큰스님과 혜각 스님을 따라다니며 말씀도 들었다. 그런데 스승으로 모시던 스님이 열반하고 난 뒤 회의가 들었다. 모방으로 만든 불상에선 더 이상 감동이 느껴지지 않았다. 한동안 조각칼을 내려놓고 방황했다. 산을 오르내리며 자연과 대화했다. “그러던 어느날, 문득 의문이 들었어요. 왜 큰스님들이 나에게 잘 해줬을까, 무슨 인연일까, 등을 골똘히 생각해 보았어요”

 그는 답을 얻었다고 했다. “스님들의 은혜를 갚는 길은 최고의 목불상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살아있는 나무를 자르지 않고, 죽어서 버려진 나무로 불상을 만들기로 했어요.” 자연에서 공부하라고 했던 스님들의 말씀을 깨달았던 것이다. “모든 공부는 자연에서 하라고 말씀하셨어요. 자연은 말씀 그대로 ‘꽃의 세계’였어요. 죽은 나무도 소중히 다루고, 보배롭게 여기는 순간 죽음과 삶이 둘이 아닌 하나가 됨이 느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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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 보고 무언가 터득하면 다행이라고 여겨”
 
 그가 주로 오르내린 영축산에는 송진이 엉겨붙은, 죽은 나무가 많았다. 한국전쟁 때 폭격으로 불에 타 죽은 나무도 많았다. 그런 나무로 불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5년 전부터다. 창고에는 그가 생명을 불어넣은 부처상이 쌓이기 시작했다. 벼랑에 죽은 채 걸려있던 수백년 된 참나무 줄기가 눈에 들어왔다. 그 나무줄기를 잘라내려니 너무 위험했다. 벼르고 벼르다가 2년만에야 채취했다. 동네 장정 6명을 동원해 계곡에서 굴리고 굴려 작업장까지 옮겨왔다. 무게만 거의 1톤이 됐다. 부처의 얼굴을 1년 동안 조각했다. 한없이 부드러운 미소를 띤 부처가 됐다. 이름을 지었다. ‘깨달은 고목’.
 
 그는 이렇게 만든 목불상을 지금껏 단 하나도 판 적이 없다. 누구에게 자랑도 하지 않았다. “그냥 죽는 날까지 불상을 만들어 창고에 쌓아 두려고 했어요. 후손이 우연히 그것을 보고 무언가 터득하면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냥 불쏘시개로 쓰이더라도 아쉬움이 없다고 여겼어요.”
 
 불교미술 당대 두 고수, 전혀 다른 불상에 감탄
 
 불상은 우연히 오씨의 작업장을 들려 살펴본 이웃 갤러리 대표에 의해 빛을 보게 됐다. 지난달 한점 갤러리 민경미 대표는 마침 통도사에 들른 미술평론가 윤범모 교수(가천대)와 수묵화가 소산 박대성 화백에게 오씨의 불상을 보여 주었다. 불교미술에 조예가 깊은 당대의 두 고수들은 전혀 새로운  오씨의 불상을 보고 감탄했다. 윤 교수는 “거칠고 투박하게 생긴 나무줄기에 보살핌이 무성하다. 자연목의 원초성을 존중하면서 깨달음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다”고 그의 불상을 평가했다.  
 
 “중생 누구나 보기만 해도 부처의 가르침과 깨달음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불상을 만들고 싶어요. 그게 바로 살아있는 불상 아니겠어요.” 오씨의 작품 ‘깨달은 고목’에 손바닥을 대어 보았다. 부처의 느낌인 듯 온화했다.

*이 글은 휴심정과의 제휴에 의해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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