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차와 득차, 그리고 삶의 즐거움”
“성차와 득차, 그리고 삶의 즐거움”
  • 한유미/한국차심평원장
  • 승인 2017.03.17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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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선생 한유미의 ‘茶와 놀자’] (1)茶와의 대화

‘茶와의 대화’는 차를 유기적 관계로 대하고 싶다는 뜻이다. 차를 자연물이 아니라 정신적 공감의 대상으로 삼고 싶어서이다. 차에서 차를 해방시키는 인식의 이 전환은 차의 가치를 표현한 ‘경쾌한 경의’이다. 

삶의 질적 변화에 미치는 차의 영향력은 ‘차의 맛이 주는 즐거움’이다. 화학적 작용으로 인한 즐거움에는 ‘생각의 잠재성을 일깨운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그래서 득차(得茶)이다. 득차는 ‘내 맘대로 기분 좋아짐’과는 차이가 있으며 성차(成茶)를 바탕으로 얻어진다. ‘성차를 바탕으로 한다’는 ‘맛을 따져본다’는 필연적 과정을 염두에 둔 개념이다. 성차는 자연이 주는 최상의 혜택을 문명의 기술로 극대화해 만드는 차를 말한다. 차 속의 인간을 즐겁게 하는 자연의 선물을 가공을 통하여 드러나게 하는 것이 성차 생산 과정의 핵심이다. 이 과정은 차의 맛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며 그 영향은 곧 득차로 이어진다. 때문에 성차는 득차의 출발점이다. 성차를 매개로 한 득차(자연과학을 기반으로 한 인간중심적 관점)에서 ‘차는 마음으로 마신다’는 마음만의 일방적 관점은 ‘득차 성차’의 세계에서 말하는 차의 가치와 결부되지 않는다.

득차의 즐거움은 ‘자연과 인간의 유기적인 관계성’을 바탕에 두기 때문에, ‘선의 세계’에 흡수 동화가 될 때에도 ‘맛’이라는 화학적 작용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다시 말하면 ‘차의 맛에 의한 마음의 즐거움’일 때 득차가 성립된다. 다도(일본다도를 의미)와 일본불교의 특징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선차(선문화적 요소들을 선 자체로 간주하여 선의 변형을 꾀하고, 변형된 선마저 세속으로 끌어내린 차가 종교를 넘보아 ‘종교적 분위기로 정신성을 나타내 보이는 것’ 위엄을 얻은 와비차 혹은 와비다도가 된 것) 또한 예외이다. 차의 품질과 상관없이 잡스러운 차로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는 부분이 있어서이다. 여기서 말하는 선차를 포함한 다도는 개념이나 구성의 이론체계가 확립되고 널리 알려져 인정되는 것을 말한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 차일까? 맛있는 차일까? 차와 맛있는 차는 같은 의미일까?

‘차를 좋아해서 안다’고 하는 것인지 ‘알기 때문에 좋아 한다’는 것인지 따져보지 않고는 이해의 증진, 자신의 기호조차도 판단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맛을 따지는 일은 골치 아픔과 피곤함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사람에겐 재미있음이지만, 또 어떤 사람에겐 갈증과 답답함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골치 아픔과 피곤함, 갈증과 답답함을 이겨내고 난 이후의 시원함은 우리에게 자유를 선물한다. 세상에 공짜 없음의 법칙은 정신세계에서나 물질세계에서나 어김없는 진리라고 투덜거리게 한다. 차의 맛을 ‘따져보는 것’은 보다 더 많은 것을 알게 하고 더 많이 좋아하는 동기가 되기도 한다. 

‘알기 때문에 좋아 한다’는 정도는 차를 고를 때 보다 ‘의미 있는 선택’을 하게 된다. 최소 준전문가의 안목은 가지고 있다는 말과 통한다. 그 ‘의미 있는 선택’의 목적은 깊은 즐거움, 득차의 세계로 연결됨은 말할 것도 없다. 결국 득차란 ‘삶의 즐거움’에 목표가 있다. 자유(정도의 차이를 느끼게 하는 전문성)를 얻고자 함은 구속(세상에 마음대로 나돌아다니는 통속적 상식을 걸러내고, 사회적 의미가 있는 배경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을 배경으로 한다. 그러므로 ‘맛을 따져 본다’는 어느 정도 수준이 보장된 구속에 비유될 수 있다. 구속 이전의 통속적 잣대에 의한 판단(때로는 과도한 자신감의 근원이 되기도 하는) 혹은 나홀로 무딘 자유(초심자의 개인적 입맛을 벗어나지 못하는)를 논하는 것이 아니다. 좋아하는 것, 누구나 알고 싶어 하는 것에 대한 자유를 누구나 꿈꾸고 얻고자 하지만 여러 가지 만만치 않은 수고를 당연시하는 사람은 드문 게 현실이다. 차에 관심 있는 애호가들 혹은 더 깊은 전문성을 갖추고 싶은 사람들에게 구속은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진실한 자유를 위해 차의 맛을 따져보는 것에 대한 호불호, 그야말로 진정한 선택의 자유 아니겠는가?

차가 생물체로 다가오는 일은 성차를 통한 득차의 경지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자연과 인간의 더 할 수 없는 정신적 교감의 정수 ‘차와의 대화’는 사심을 내려놓게 하고, 보여지는 대로 보는 몰입을 경험케 한다. 집착이 사라져버린 그 자유․․․? ‘차와의 대화’ 속에서 마시는 차의 맛은 시․원․함!. 멈추지 않는 근심을 씻어준 찻자리에서 눈을 뜬 그 시원함은 자유의 맛, 자유의 발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차의 노래

육우의 守中으로 茶를 우려마시니
봉래산 신선들이 부럽지 않네
육우는 茶에 미쳐 살아도 젖은 마음 떼어내지 못했고
노동은 일곱 잔에 마음을 벗었어도 세상 밖 바람의 사람

내가 茶인지 茶가 나인지
茶友여 得茶의 흥취는 소동파 詩文도 희롱한다네 (졸시)

 

차선생 한유미(韓有美)

중국 항주다엽연구소(杭州茶葉硏究所) 심배화 선생에게 차심평(Tea Tasting)을 배웠다. 2003년부터 심평과 가공, 차 고전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 주해서 《육우다경》과  《동다송·다신전》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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