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法)은 지키시라
법(法)은 지키시라
  • 이학종/시인, 전 미디어붓다 대표
  • 승인 2017.12.22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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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종] 공동체 유지 위한 최소 보루마저 훼손하지 말라
▲ 이학종/시인, 전 미디어붓다 대표기자.ⓒ불교닷컴

《노자(老子)》 18장에 “대도폐유인의 실도이후덕 실덕이후인 실인이후의 실의이후례 실례이후법 大道廢有仁義 失道而後德 失德而後仁 失仁而後義 失義而後禮 失禮而後法”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大道(대도)가 없어지자 仁義(인의)가 나왔다. 道(도)를 잃은 후에 德(덕)이 나왔고. 德(덕)을 잃은 후에 仁(인)이 나왔으며. 仁(인)을 잃은 후에 義(의)가 나왔고. 義(의)를 잃은 후에 禮(예)가 나왔다. 禮(예)를 잃은 후에 法(법)이 나왔다.”고 풀이할 수 있겠다.

기계적인 적용이라는 지적이 있을 수 있겠으나 노자(老子)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가치를 도, 덕, 인, 의, 예, 법의 순서로 보았던 것 같다. 이는 노자가 도(道)로 움직이는 세상을 최고로, 법(法)으로 굴러가는 세상은 하급한 세상으로 여겼다는 것이 된다. 하긴 법을 다루는 사람들은 조선 후기까지만 해도 양반이 아닌 중인계급에 속했으니, 법에 대해 옛 선조들은 그리 높은 가치를 두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왜 법(法)자는 물수(氵)변에 갈거(去)자로 구성됐을까. 그 해답은 노자의 수유칠덕(水有七德)에서 찾아볼 수 있다. 물이 가진 일곱 가지 덕이란 인간수양(人間修養)의 근본을 물에 비유해 설명한 것인데, 내용인 즉 이렇다.

“낮은 곳을 찾아 흐르는 謙遜(겸손), 막히면 돌아갈 줄 아는 智慧(지혜), 구정물도 받아주는 包容力(포용력), 어떤 그릇에나 담기는 融通性(융통성), 바위도 뚫는 끈기와 忍耐(인내), 장엄한 폭포처럼 투신하는 勇氣(용기), 유유히 흘러 바다를 이루는 大義(대의)가 그것이다.”

노자가 말한 6가지 가치 중에서 가장 낮은 단계이기는 하지만 법에도 이런 깊은 의미가 깃들어 있음을 밝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법(法)은 강자(强者)의 것이지 약자(弱者)의 것은 아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풍자에서 보듯 법은 으레 강자의 편에 유리하게 적용돼온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강자들은 곧잘 ‘법앞에 만민이 평등하다’고 주장하지만, 약자들은 그 말을 곧이듣지 않는다.

노자의 대도(大道)와 똑같지는 않지만, 부처님께서 제시해주신 대도를 이루기 위해 세속의 모든 것을 버리고 출가한 분들이 스님들이다. 따라서 스님들이 모여 이루어진 공동체 승가(상가)에서는 마땅히 도(道)가 공동체 유지의 기본 틀이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도라는 것이 그리 녹녹한 경지가 아니니, 덕, 인, 의, 예가 차례로 등장했고, 그 마지막 순서로 법이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적어도 인류가 만든 공동체 가운데 가장 이상적인 공동체인 승가는 법에 의해 유지되는 것을 당당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무상대도(無上大道)를 추구하는 수행공동체에서 도와 덕, 인, 의, 예를 다 제치고 법을 앞세우는 것이 자랑할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느 덧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 승가는 종헌·종법으로 대표되는 법 만연주의에 물들어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법마저 힘 가진 이들이 자의적으로 적용하거나 위력으로 악용하거나, 나아가 제대로 지키지 않으려는 경향이 갈수록 짙어가고 있다는 데 있다.

800일 가까이 불교닷컴과 불교포커스를 이른바 ‘해종언론’으로 규정하면서 출입금지, 광고금지 등 가혹한 탄압을 해온 조계종의 집행부가, 지난 12월 19일 서울중앙지법이 결정한 ‘중앙종무기관에 두 언론의 출입을 금지하는 것은 언론기관의 자유로운 취재활동을 제한하는 행위로 볼 수 있다’며 ‘자유로운 취재행위에 대한 권리를 보전할 필요성을 인정’했는데도 여전히 출입을 막고 있다고 한다.

이는 조계종 집행부가 종헌·종법의 아전인수격 남용에 그치지 않고, 세속의 사람들도 지키는 나라의 법까지도 위력으로 무력화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조계종의 새 집행부에게 당부하고자 한다. 언감생심(焉敢生心) 도(道)는 아니더라도, 아니 덕(德)과, 인(仁), 의(義)와 예(禮)까지는 아니더라도, 법(法)이라는 공동체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보루마저 훼손하지는 마시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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