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Me Too), 종교계도 예외 아니다
미투(#Me Too), 종교계도 예외 아니다
  • 진흙속의연꽃
  • 승인 2018.02.28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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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속의연꽃] 남자가 조심해야 할 세가지 '부리'

오래 전의 일입니다. 중학교 다닐 때 지리시간에 들은 일입니다. 수십 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지리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때 당시 30대 중반 정도로 보였던 지리 선생님은 몸이 바싹 마르고 가는 체형으로 얼굴은 샌님 모양이었습니다. 요즘 말로 꼰대 같기도 하지만 꼬장꼬장한 선비 같은 인상입니다.

지리 선생님은 지리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인 이야기도 종종 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 것은 “남자들은 세 가지 부리를 조심해야 한다.”라는 말입니다. 중학교 1학년 때인 것으로 기억합니다. 사춘기도 시작되지 않고 변성기도 오지 않은 중학교 1학년 아이들에게 세 가지 부리를 조심하라고 한 것입니다.

삼단지계(三端之戒)

지리 선생님이 말한 세 가지 부리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은 입부리와 성기를 지칭하는 부리입니다. 나머지 하나는 기억에 남지 않습니다. 요즘은 인터넷시대입니다. 무엇이든지 검색하면 즉각 알아 낼 수 있습니다. 검색창에 ‘남자는 세 가지 부리를 조심해야’라고 쳐 넣자 곧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남자는 남자로 살면서 평생 세 가지 부리를 조심해야 하는데 이를 ‘삼단지계(三端之戒)’라 합니다. 원래 이 말은 한시외전(漢詩外傳)에서 나온 말로 문사의 필단(筆端)과 무사의 봉단(鋒端), 그리고 변사의 설단(舌端)을 말합니다. 글 쓰는 자는 붓끝을 조심해야 하고, 칼을 쓰는 자는 칼끝을, 말하는 자는 혀끝을 조심해야 함을 말합니다. 함부로 붓끝이나 칼끝, 혀끝을 놀렸을 때 그것으로 인하여 화를 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남자도 세 끝을 조심해야 하는데 이에 대하여 한자어로 표현하면 설단(舌端), 권단(拳端), 조단(鳥端)이라 합니다.

남자로 평생 살면서 말부리(舌端)를 조심해야 하는데, 이는 세치 혀끝으로 뱉어낸 말로 인하여 어떤 화를 입을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또 남자로 살면서 손부리(拳端)를 조심해야 하는데, 이는 말보다 주먹이 앞서는 것을 경계하는 말이라 봅니다. 마지막으로 조단(鳥端)을 조심해야 하는데, 오늘날 미투(Me Too)운동의 희생자들을 보면 조단(鳥端)의 중요성을 알 것 같습니다.

남녀로 이루어진 욕계(欲界)

우리가 사는 세상을 욕계(欲界)라 합니다. 우리들은 욕망의 세계를 살고 있습니다. 욕망으로 이루어진 세계입니다. 우리가 욕계에 살게 된 것은 욕망으로 인한 것입니다. 그것도 성욕이라는 근본적인 욕망으로 인한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로 이루어져 있는 욕계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끌려서 욕계에 태어난 것입니다.

이 세상의 반은 남자이고 이 세상의 반은 여자입니다. 성의 구별이 있는 욕계에서는 서로의 성에 끌릴 수밖에 없습니다. <디가니까야> ‘세계의 기원에 대한 경’을 보면 남자와 여자로 성이 구분 되었을 때 “여자는 남자에게 지나치게 몰두하게 되었고 남자는 여자에게 지나치게 몰두하게 되었다. 그들은 서로 지나치게 서로 몰두하면서 탐애가 생겨났고 몸이 달아올랐다” (D27)라 되어 있습니다.

욕계를 떠난 색계나 무색계에서는 성의 구별이 없습니다. 선정의 세계에서는 탐욕이 소멸되어 있기 때문에 남녀 구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선정수행을 닦으면 ‘오장애’라 하여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 악의, 해태와 혼침, 흥분과 회한, 의심이 사라집니다. 오로지 기쁨과 행복과 평정만이 남아 있는 세계입니다.

성적교섭의 굴레

욕계에 태어나 욕계를 살아갈 수밖에 없는 수행자에게 있어서 가장 큰 장애는 ‘성적욕망’입니다. 이는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이 극대화 된 것입니다. 성적인 욕망 극복 없이는 결코 선정에 들어 갈수도 없고 색계나 무색계에 태어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일까 ‘청정한 삶(Brahmacariya)’을 선언한 성직자자 수행자들에게 성적욕망과 관련하여 일곱 가지 성적교섭 굴레에 의한 파손이 있습니다. 그 첫 번째 파손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바라문이여, 세상에 어떤 수행자나 성직자가 완전히 청정한 삶을 선언하였음에도 여인과 함께 서로 교합할 뿐만 아니라 여인의 마사지, 지압, 세욕, 안마를 즐기면, 그는 그것에 유혹되고 그것을 욕망하고 마침내 쾌락에 빠집니다.”(첫 번째 파손)(A7.50)

수행자의 성적교섭의 굴레 첫 번째 파손을 보면 여인의 마사지, 지압, 세욕, 안마를 즐기는 것입니다. 마치 요즘 연극계의 거물이 성추행과 성폭행으로 망신을 당하는 모습이 연상됩니다. 비록 연극계의 거장이 수행자는 아니지만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자가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 굴복하여 망신당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몰래 훔쳐만 보아도

성적교섭의 굴레에 대한 첫 번째 것을 보면 신체적인 접촉에 따른 것입니다. 청정한 삶을 살기로 한 수행자나 성직자가 여인과 교합하고 마사지, 지압, 세욕, 안마 등 신체적 접촉을 하는 것입니다. 이는 계행의 파괴입니다. 더 이상 청정한 삶을 산다고 볼 수 없습니다. 겉모양으로 수행자나 성직자일지 몰라도 속으로는 일반사람들의 도덕적 평균치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이어지는 파손에서 가장 마지막 단계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여인과 서로 교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여인의 마사지, 지압, 세욕, 안마를 즐기지 않지만, 그러나 여인과 함께 농담하고, 희롱하고, 유희하지도 않더라도, 여인의 눈을 자신의 눈으로 관찰하고 응시하지 않더라도, 담장 너머나 성벽 너머 들려오는, 웃거나 이야기하거나 노래하거나 우는 여인의 소리를 듣지 않더라도, 예전에 여인과 함께 웃고, 이야기하고, 유희했던 기억을 떠 올리지 않더라도,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의 대상을 갖추고 구비하여 즐기는 것을 봅니다.” (여섯 번째 파손, A7.50)

성적교섭으로 인한 파손은 반드시 여인과 성적교합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최종적으로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의 대상을 갖추고 구비하여 즐기는 것을 본다’라고 했습니다. 마치 오늘날 인터넷으로 음란물을 접하는 것과 같습니다. 청정한 삶을 살기로 맹세한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에게도 컴퓨터를 사용하거나 스마트폰이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몰래 훔쳐만 보아도 성적교섭에 따른 청정한 삶이 파손되는 것으로 봅니다.

미투(Me Too), 종교계도 예외 아니다

요즘 미투 운동이 거세게 일고 있습니다. 처음 여검사의 성추행 사건이 세간의 관심사가 됐지만 이어서 노벨상 후보로 알려졌던 거물시인이 연루 되었고 최근에는 연극계의 거장이 추문에 휩싸였습니다. 모두 세 가지 부리 중의 하나를 잘못 부려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런데 미투 운동은 좀처럼 수그러들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추세라면 종교계도 예외가 아닐 것입니다.

불교계에서는 오래 전부터 성추문이 있었습니다. 가장 도덕적이라는 종교계에서도 성적욕망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 같습니다. 더구나 독신비구승으로 청정한 삶을 살기로 구족계까지 받은 승려들의 성추문에 대한 소식을 들으면 ‘언행일치’가 되어 있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듯합니다.

불교계에서 성추문은 주로 고위직 승려들에 대한 것이 많습니다.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자리에 있었던 한 스님은 젊은 시절 자신이 맡고 있는 사찰의 유치원 여교사 사이에 아이를 낳았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누구나 다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결정적 증거가 없어서 조치취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느 교구본사 주지스님은 유전자 검사를 거부하여 처자식이 있음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습니다. 현 총무원장도 은처자 의혹으로 소송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어느 교구본사 주지스님은 이전에 비구니 자매 성폭행 건으로 회자된 바 있습니다. 이외 승려들에 의한 수많은 성추행과 성폭행 사건이 있습니다.

요즘 미투 운동으로 낭패를 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전에는 감추고 쉬쉬 했던 것들이 시대가 바뀌어서인지 폭로 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전에 지은 행위로 지옥 같은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추락하는 유명인들을 보면서 중학교 시절 지리 선생님의 말이 딱 들어맞습니다.

성직자와 수행자는 청정한 삶을 살기로 약속한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구설수에 오른다면 수행자로서 자격이 없는 자들입니다. 특히 비구계를 받은 승려들이 성추문에 휩싸인다면 한국불교의 위기라 볼 수 있습니다.

고위직 승려들의 성추문을 접하면 요즘 사회에서 거세게 일고 있는 미투는 오래 전부터 불교계에 있었던 것입니다. 아마 미투 운동의 다음 차례는 종교계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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