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문사상 상실기에 등장한 불교
바라문사상 상실기에 등장한 불교
  • 마성/철학박사․팔리문헌연구소장
  • 승인 2018.05.15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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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불교란 무엇인가- 제5강 불교의 바라문화

붓다시대의 종교사상계는 크게 정통파인 바라문교와 비(非)정통파인 사문 그룹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역사적으로 인도종교의 주류는 바라문교였다. 바라문교가 인도의 종교와 문화의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 불교가 인도의 종교사상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정통파인 바라문교와 사문 계통인 육사외도(六師外道)의 사상을 동시에 논파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정통파인 바라문교를 대표하는 사상은 ‘전변설(轉變說, pariṇāma-vāda)’이었고, 육사외도를 대표하는 사상은 ‘적취설(積聚說, ārambha-vāda)’이었다. 전변설은 자아(自我)나 세계는 유일한 브라흐마(brahmā, 梵天)에서 유출 전변했다고 보는 것이다. 이에 반해 적취설은 그러한 유일의 절대자를 인정하지 않는 대신 개개의 요소를 불멸의 실재로 믿고, 그것들이 모여 인간과 세계 등 일체가 성립한다고 보는 것이다.

전자의 전변설에 입각한 수행 방법은 요가(yoga)와 선정(禪定)을 닦아 해탈을 실천하려는 ‘수정주의(修定主義)’였다. 반면 후자의 적취설에 바탕을 둔 수행 방법은 고행을 통해 마음을 속박하고 있는 미혹의 힘을 끊고 해탈하려고 하는 ‘고행주의(苦行主義)’였다.

붓다시대에는 전통적인 바라문사상은 이미 그 빛을 상실해 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대신할 만한 새로운 종교 사상의 권위 또한 확립되어 있지 않았다. 사문과 같은 자유로운 사상가들이 등장하여 다양한 견해와 교설을 주장하고 있었다. 그때 붓다가 출현하여 두 계통의 사상을 모두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사상을 펼쳤던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불교와 바라문교는 처음부터 경쟁, 혹은 적대 관계에 있었다. 그러나 붓다시대에는 일시적으로나마 불교가 바라문교를 주도한 것으로 보인다. 초기경전에는 붓다가 바라문들보다는 한수 우위에 있었음을 나타내는 대목이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디가 니까야(Dīgha-nikāya)』 제3 「암밧타 숫따(Ambaṭṭha-sutta)」에는 붓다 재세시 꼬살라(Kosala)국에서 가장 존경받았던 ‘뽁카라사띠(Pokkharasāti)’라는 바라문이 붓다께 귀의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리고 『디가 니까야』 제4 「소나단다 숫따(Sonadaṇḍa- sutta)」에는 당시 마가다(Magadha)국에서 가장 연로(年老)하고 학식과 명성이 높았던 ‘소나단다(Sonadaṇḍa)’라는 바라문이 붓다께 귀의하여 재가신자가 되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로 미루어 당시에는 붓다를 능가할 수 있는 바라문이 없었던 것 같다.

특히 붓다는 많은 바라문들을 교화시켜 불교로 귀의시켰다. 붓다의 뛰어난 제자 중에는 특히 바라문 출신자들이 많았다. 이러한 사례들은 현존하는 초기경전의 여러 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장아함경』 권1 제1 「대본경」에는 바라문교의 최고신인 범천왕(梵天王)이 비바시불(毘婆尸佛)에게 법(法)을 청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때 범천왕은 오른 무릎을 꿇고 손을 모아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느니라. “원컨대 세존이시여, 때를 보아 법을 베푸소서. 지금 이 중생들은 업장이 엷고 모든 감각 기관이 영리하며 공경하는 마음이 있어 교화하기 쉽습니다. 뒷세상에서는 구제할 수 없는 죄를 지을까 두려우니 온갖 악한 법을 멸하고 좋은 세계에 태어날 수 있게 하소서. [『長阿含經』 卷1 第1經 「大本經」(T1, p.8b)]

위 경전의 내용은 범천왕이 매우 겸손하게 비바시불에게 설법을 청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범천왕은 인도종교의 전통에서 지고무상(至高無上)의 신분이다. 그런데 인도종교의 창조주인 범천왕이 붓다께 예배드리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이것은 붓다가 바라문교의 최고신인 범천왕보다 우위에 있었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붓다시대의 바라문들은 자기 종족에 대한 자부심과 특권 의식을 갖고 있었다. 그 대표적인 예문은 다음과 같다.

바라문들만이 최상의 계급이다. 다른 계급들은 저열하다. 바라문들만이 밝은 계급이고 다른 계급들은 어둡다. 바라문들만이 청정하고 비(非)바라문들은 그렇지 않다. 바라문들만이 범천의 아들들이요 직계 자손들이요 입으로 태어났고 범천에서 태어났고 범천이 만들었고 범천의 상속자이다.[DN. Ⅲ, p.81; MN. Ⅱ, p.84, “brāhmano va seṭṭho vaṇṇo, hīno añño vaṇṇo; brāhmaṇo va sukko vaṇṇo, kaṇho añño vaṇṇo; brāhmaṇā va sujjhanti no abrāhmaṇā; brāhmaṇā va brahmuno puttā orasā mukhato jāta brahma-ja Brahma-nimmitā Brahma-dāyādā.”]

이러한 바라문들의 주장에 대한 불교도들의 반대 논리는 다음과 같다.

그런 사람에게는 ‘나는 세존의 아들이요 직계 자손이요 입으로부터 태어났고 법에서 태어났고 법이 만들었고 법의 상속자이다.’는 말이 어울린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와셋타(Vāseṭṭha)여, 여래에게는 ‘법을 몸으로 가진 자[法身]’라거나 ‘브라흐만을 몸으로 가진 자[梵身]’라거나 ‘법의 존재[法體]’라거나 ‘최상의 존재[梵體]’라는 이런 다른 이름이 있기 때문이다. [DN. Ⅲ, p.84, “bhagavato 'mhi putto oraso mukhato jāto dhamma-jo dhamma-nimmito dhamma-dāyādo'ti. taṃ kissa hetu? tathāgatassa h'etaṃ vāseṭṭha adhivacanaṃ— dhamma-kāyo iti pi brahma-kāyo iti pi, dhamma-bhūto iti pi brahma-bhūto iti pīti.”]

위 두 경문을 비교해 보면 논리가 똑같다. 이를테면 바라문들은 ‘범천의 아들’이라고 했다. 반면 불교도들은 ‘세존의 아들’이라고 맞받아쳤다. 또한 바라문들은 ‘범천에서 태어났고 범천이 만들었고 범천의 상속자이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불교도들은 ‘법에서 태어났고 법이 만들었고 법의 상속자이다’고 반박했다. 이른바 ‘범천’이라는 단어 대신 ‘법’이라는 단어를 삽입했다. 이 경에서는 왜 ‘범천’ 대신 ‘법’을 삽입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밝히고 있다. 이른바 “여래에게는 ‘법을 몸으로 가진 자[法身]’라거나 ‘브라흐만을 몸으로 가진 자[梵身]’라거나 ‘법의 존재[法體]’라거나 ‘브라흐만의 존재[梵體]’라는 이런 다른 이름이 있기 때문이다.”[DN. Ⅲ, p.84, “vāseṭṭha adhivacanaṃ, dhamma-kāyo iti pi brahma-kāyo iti pi, dhamma-bhūto iti pi brahma-bhūto iti pīti.”]고 설명하고 있다. 이 경에 나오는 ‘법신(法身, dhamma-kāya)’, ‘범신(梵身, brahma-kāya)’, ‘법체(法體, dhamma- bhūta)’, ‘범체(梵體, brahma-bhūta)’는 동의어(adhivacana)로 쓰이고 있다. 이와 같이 초기경전에서는 ‘여래(如來)․법(法)․범(梵)’을 같은 뜻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러한 해석이야말로 붓다의 범천화(梵天化), 즉 바라문화(梵化)의 증거인 것이다.

▲ 힌두교를 대표하는 삼신(三神) 가운데 하나인 비슈누(Vishnu)의 형상이다. 힌두교에서 브라흐마(Brahma)는 창조신이고, 비슈누(Vishnu)는 수호신이며, 시바(Shiva)는 파괴신이다. 대승불교의 관세음보살은 힌두교의 신 비슈누에서 유래한 것이다.

또한 이것은 붓다의 범화(梵化), 즉 바라문화(婆羅門化)를 막기 위해 동원된 논리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디가 니까야 제27 「악간냐 숫따(Aggañña-sutta, 起世因本經)」에 나오는 다음의 대목은 주목할 만하다.

와셋타(Vāseṭṭha)여, 여기서 그대들은 각자 다른 태생과 다른 이름과 다른 족성과 다른 가문에 속하는 집을 떠나 출가하였다. ‘그대들은 누구시오?’라고 질문을 받으면 그대들은 ‘우리는 사꺄무니 교단에 속하는 사문입니다.’고 대답한다. 와셋타여, 누구든 여래에 믿음을 가져 흔들리지 않고 뿌리내려 확고하고 굳세며 어떤 사문도 바라문도 신도 마라도 범천도 이 세상의 그 누구도 그것을 빼앗아갈 수 없다.[DN. Ⅲ, p.84, “tumhe khv attha vāseṭṭha nānā-jaccā nānā-nāmā nānā-gottā nānā-kul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ā. ‘ke tumhe ti?’ puṭṭhā samānā, ‘samaṇā sakya-puttiy’ amhati’ paṭijānātha. yassa kho pan’ assa vāseṭṭha tathāgate saddhā niviṭṭhā mūla-jātā patiṭṭhitā daḷhā asaṃhārikā samaṇena vā brāhmaṇena vā devena vā mārena vā brahmunā vā kenaci vā lokasmiṃ.”]

위 인용문에 따르면, 바라문들만이 진정한 범천의 아들이요, 범천의 입에서 태어났으며, 범천이 만든 것이며, 범천이 창조한 것이며, 범천의 상속자라고 주장하는 것에 주눅 들지 말고 당당히 맞서라고 당부한 것이다. 같은 경에 “우리들은 모두 진정한 세존의 아들이며, 그의 입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법을 따라 태어났으며, 법이 창조하였기 때문에 이 법의 계승자이다.”[DN. Ⅲ, p.84, “bhagavato 'mhi putto oraso mukhato jāto dhamma-jo dhamma-nimmito dhamma-dāyādo'ti.]고 설해져 있다. 이 가르침은 불교도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초기경전의 여러 곳에서 ‘진리의 수레바퀴(法輪, dhammacakka)’라는 단어 대신에 ‘범천의 수레바퀴(梵輪, brahmacakka)’을 굴렸다는 대목을 발견할 수 있다.[『雜阿含經』 卷26 第684經(T2, p.186c); 『增壹阿含經』 卷19(T2, p.645c); 『增壹阿含經』 卷42(T2, p.776a); 『增壹阿含經』 卷49(T2, p.816c); 『中阿含經』 卷49(T1, p.736c)] 이를테면 『맛지마 니까야』의 제12 「Mahāsīhanāda-sutta(師子吼大經)」에 “사리뿟따여, 여래에게는 여래의 열 가지 힘이 있는데 그 힘을 갖춘 여래는 최상의 지위를 선언하고 대중 가운데 사자후를 토하며 ‘범천의 수레바퀴[梵輪]’을 굴린다.”[MN. Ⅰ, p.69, “dasa kho pan' imāni sāriputta tathāgatassa tathāgata-balāni yehi balehi samannāgato tathāgato āsabhaṇ ṭhānaṃ paṭijānāti, parisāsu sīhanādaṃ nadati, brahmacakkam pavateti.”]라는 대목이 그것이다. 이 경은 릿차비(Licchavi)족의 아들 수낙캇따(Sunakkhatta)가 승단을 떠나서 붓다를 비방하고 다녔기 때문에 붓다의 위대함을 천명하기 위해 붓다가 사리뿟따(Sāriputta)에게 설한 것이다. 이 경도 역시 바라문교와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설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불멸후 바라문부흥시대에 불교는 점차 바라문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인도에서 불교의 흥기(興起)는 바라문교(후대의 힌두교)라는 큰 호수에 하나의 작은 파도에 지나지 않았다. 붓다시대에는 불교가 주도권을 잡았지만, 불멸후에는 사정이 달라졌다. 모든 측면에서 불교는 힌두교에 기대고 합치는 쪽으로 쫓아갔다. 그리하여 불교는 점점 쇠퇴하여 나중에는 힌두교 속으로 흡수되어 버리고 말았다.

이것은 역사적 사실이며, 불교가 인도문화를 주도하는 강력한 사상의 위치를 차지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바라문교와 불교를 비교해 볼 때, 바라문교가 강력한 세력을 가진 종교였다면, 반대로 불교는 약세적(弱勢的)․변연적(邊緣的)․피주도적(被主導的)․타자(他者)에 지나지 않았다. 후세의 불제자들이 불교가 바라문화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몸부림쳤지만, 약한 세력은 강한 세력에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인도에서 불교는 점차 바라문화 혹은 힌두교화 되고 말았던 것이다.

마성 스님 / 철학박사․팔리문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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