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이 심할수록 저항 목소리가 적었다”
“암흑이 심할수록 저항 목소리가 적었다”
  • 서현욱 기자
  • 승인 2018.06.22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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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화 스님, 설조 스님 단식정진단 방문, 94개혁 두 원로 만나
▲ 22일 오후 청화 스님이 설조 스님을 찾아와 이야기를 나눴다.

94종단개혁 기수들이 만났다. 곡기를 사흘 째 끊은 94개혁회의 부의장 설조 스님과 실천불교전국승가회 의장으로 범승가종단개혁추진위(범종추)를 이끌었고 3·26구종법회와 4ㆍ10승려대회 등에서 앞에 섰던 청화 스님이 조계종단을 걱정했다.

청화 스님은 22일 오후 6시 서울 우정총국 뒤편 단식정진단을 찾아와 설정 총무원장 퇴진과 청정승가 구현을 염원하며 사흘 째 단식하는 설조 스님을 위문했다. 94년 종단개혁을 이끈 두 원로의 만남은 조계종단의 위급한 현실을 대변했다.

77세의 청화 스님은 88세의 설조 스님에게 절을 올리고 “죄송합니다”라고 참회했다. 푸른 빛이 가득 찬 천막에는 안타까움이 흘렀다. 단식하는 설조 스님이 “부처님 법 따라 받은 공양을 회향하라 나왔다”며 되레 청화 스님을 위로했다.

“죄송합니다“…“작은 희생이 교단 변화 기폭제 되길”

청화 스님은 “죄송하다. 솔직히 단식을 말리고 싶었다”며 고개 숙였다. 이어 청화 스님은 “스님은 결심하시면 뜻을 바꾸지 않으셔서 소신으로 결심하실 일에 말한다고 뜻을 굽히지 않으실 걸 알았다”고 했다.

“쓰러져도 의사에게 데려가지 말라” 신신당부한 설조 스님은 “제 작은 희생이 교단 변화에 보탬이 되고 기폭제가 된다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했다.

청화 스님은 “막막한 상태이다.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며 “마음이 무겁고 걱정이 많다”고 했다. 또 “스님께서 단식을 시작하셔서 그 파장은 종단적으로 파급될 것이다. 또 종도들이 결집된 모습이 나왔으면 좋겠다. 현재 상황은 예측할 수 없다”고 했다.

앞날을 걱정하는 청화 스님에게 설조 스님은 “저는 중도에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나머지 일은 스님 몫으로 아시고 잘 정리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스님은 “옛날에도 그랬다. 암흑이 심할수록 저항하는 목소리가 적었다”고 했다.

“개혁 때 어떤 의도로 참여했는지 모르지만…”

그러자 청화 스님은 “종단 토양이 94년과는 달라졌다. 젊은 스님들이 세속화에 물들었고, 수행인으로 공부인으로 정의감이 많이 퇴색된 것 같다. 그런 점이 우려스럽다”고 했다.

설정 총무원장과 현응 교육원장, 지홍 포교원장, 그리고 지현 총무부장, 도법 화쟁위원장 등 모두가 94년 종단개혁회의에 참여했다. 그랬기 때문일까. 설조 스님은 94년 종단개혁 때를 회고하며 모든 잘못을 자신의 탓으로 돌렸다.

그러면서 설조 스님은 “현재 종단을 감당하는 사람들이 개혁(94년종단개혁) 때 어떤 의도로 참여했는지 모르지만 당시 참여한 사람들이어서 더 그렇다”며 “개혁 때 애를 써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종헌종법을 잘 만들었어야 했는데, 개혁불사를 거치고도 종단이 이렇게 타락해 당시 참여한 사람으로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제가 가진 것을 다 회향해야 하지 않겠나 싶어서 9단식을) 시작했다”고 했다.

“개혁이라는 거대한 물줄기에 잠시 편승했을 뿐”

청화 스님은 설조 스님의 말에 공감하면서도 법과 제도 외에 출가자들의 의식 개혁을 강조했다. 또 94년 개혁에 참여했던 현 집행부 인사들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청화 스님은 “94년 제도개혁, 입법에 아쉬움이 있으신 것 같다. 94년에 제도나 입법을 완벽히 했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라며 “법과 제도만으로는 스님들의 의식을 이끌어 갈 수 없다”고 했다.

이어 “의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어 깨어나고 수행자다운 정신과 사관이 정립됐어야 그때 개혁 정신을 올바르게 지향했을 것”이라며 “(현 종단 집행부 인사들) 그때 개혁이라는 거대한 물길에 잠시 편승했을 뿐”이라고 쓴소리를 했다.

그러면서 “당시 입법 과정에서 개혁정신을 반영하는 데 고군분투하고 투쟁했다. 어느 집단이건 보수적이고 기득권이 형성되어 있다. 조계종단처럼 의식 자체가 고루하고 깨어나지 않는 곳은 드문 것 같다”고 했다. 설조 스님은 청화 스님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였다.

“불충한 정권과 부하뇌동해 벌어진 일이 많다”

설조 스님은 자승 전 총무원장을 겨냥한 듯 ‘불충한 정권과 부하뇌동’한 결과 종단이 더욱 퇴폐했다고 지적했다.

설조 스님은 “우리 종단이 퇴폐하게 된 것은 종단 내적인 요인도 있지만 외적으로 불충한 정권과 부하뇌동해 벌어진 일들이 많다”며 “달리 보면 종단 내적인 맑은 기류가 외적인 탁한 기류를 변화시킬 수 있는데, 어느 한구석에는 가능성을 개의치 말고 맑은 운동이 벌어져야 한다”고 했다. 청화 스님은 설조 스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청화 스님은 “MBC PD수첩으로 세간에 알려진 일들의 진위는 시간을 두고 가리고 따진다 해도, 종단의 원로회의나 중앙종회가 대응책을 강구하고 나서야 하는데, 문제를 타개하려는 게 아니라 적당히 덮으려는 의도가 있는 것 같아 대단히 우려스럽다”고 했다.

“병 진단해 줬더니, 법난, 해종 훼불이라고 한다”

설조 스님은 종단타락의 한 원인을 ‘언론탄압’이라고 했다. 단식 2일차 취재기자들에게 “세상에 언로를 막는 곳은 없다. 조선시대에도 언로가 열려 있었는데 지금 조계종이 언로를 막은 행태는 세상 어디에서도 없는 일”이라고 했었다.

스님은 “종단이 이렇게까지 타락한 것은 언로를 막아서 그렇다”며 MBC PD수첩이 방송한 것을 ‘훼불’ ‘해종’이라 한다.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며 ”마치 본인이 모르고 병을 키웠는데 이웃 의사가 당신 병이 위중합니다라고 진단한 것을 어떻게 병을 만들어 준 것이라고 말하겠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법난이니 훼불이니 해종이니 언어 선택도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라며 “이 자체가 법난이다. 이것을 깊이 생각하고 해야 한다”고 했다.

청화 스님과 설조 스님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법안 스님(실천승가회 고문)이 찾아왔다.

인사를 받은 설조 스님은 법안 스님에게 “뒤에 일을 수습하려면 짐이 무겁겠다. 스님은 우리보다 더 오래 살아야 하니 참담한 현상 더 오래 겪을 것 아닌가. 참담한 집 넘겨드려서 죄송하다”고 했다.

“후안무치, 낯을 들 수가 없다”

청화 스님과의 이야기가 다시 이어졌다.

청화 스님은 “크게 저항하면 덮어질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스님 말처럼 해종행위자로 몰고 그럼 종도들이 들고 일어나 덮어질 것으로 생각하나 보다”라며 “정치적 관계에 있는 것도 아니고 이해관계에 있는 사람도 아닌데 무고한 사람을 왜 그렇게 하겠어요. 어떤 근거가 없다면. 그런 것을 보면 후안무치해 보이고 낯을 들 수가 없다.

청화 스님과 법안 스님은 곧 올 장마를 걱정했다. 하지만 설조 스님은 “감내하겠다”고 했다.

설조 스님과 청화 스님의 대화는 30여 분 정도 더 이어졌다.

20일 단식을 시작한 이후 21일 아침 총무원 호법부장이 찾아와 단식을 만류했다. 같은 날 문화부장 종민 스님과 불국사 종회의원 정수 스님이 문도 일원으로서 위문했고, 실천불교전국승가회 명예대표 퇴휴 스님도 위문했다. 22일 오전에는 조계종을 걱정하는 스님들의 모임 의장 현진 스님과 기림사 종광 스님이 설조 스님을 찾아 위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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