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민속박물관 관장의 국립전주박물관 전보에 대하여
국립민속박물관 관장의 국립전주박물관 전보에 대하여
  • 하도겸
  • 승인 2018.07.13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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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 물이 반드시 썩는 것은 아니다. 독보적인 능력을 가진 이종철 전 관장의 오랜 재직 기간 중에 국립민속박물관(이하 민박)은 구멍가게를 벗어나 슈퍼마켓을 거치지도 않고 곧바로 ‘백화점’으로 성장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2011년 개방형으로 임명된 천진기 관장(이하 천관장)이 부임한 지 8년간 민박은 새집을 구하지 못했다. 일부는 “세종확대이전” 등과 관련해서는 아예 숨을 죽이는 거의 식물인간 상태에 이르렀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임기 없이 선배들이 비켜준 자리에 임명된, 노사상생 등에서 리더십이 충분하지 못한 ‘관장’은 전 관장 때와 같은 속도의 ‘발전’을 바라는 열정 가득한 후배들에게서는 ‘장애’를 넘어 ‘재앙’일 수 있다.

요즘 학계나 일부 언론에서는 천 관장의 국립전주박물관(이하 전주박)장으로의 전보 자체를 재앙같이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있다. 직업 공무원제하에서 공무원의 ‘정년’은 보장되어야 한다. 하지만, 과장이나 팀장 등의 부서장이 아닌 고위공무원단(이하 고공단) 기관장을 7년이상 하고 정년도 몇 년 남지 않았다면 조직의 발전을 위해 후배들을 위해 스스로 비켜주거나 떠날 때를 알아야 한다고 주변에서 미리 덕담을 해줬어야 한다. 모든 공무원들이 그렇듯이 과거 천관장의 빠른 승진도 그의 능력 여하와 관계없이 선배들이 비켜준 자리가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번 전보를 둘러싼 논쟁은 결과적으로 천관장이 민박의 미래와 민속학의 발전보다는 자신의 안위를 우선했다고 해석하는 입장에서 보면 전보를 선택하는 순간 이미 충분히 예견된 참사라고 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빈약한 그의 업적과 함께 전주박으로의 전보로 인해 그의 빈자리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민박 후배는 그리 많지 않을 듯싶다.

중박에서는 애초에 민박으로 오고 싶어 하는 관장은 없었던 것으로 안다. 그분들도 민속학의 특수성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이런 시점에서 천 관장이 스스로 특임연구관이나 명예퇴직을 선택해서 일선에서 물러났다면 어땠을까? 천 관장 재직 7년 동안에 새로 생긴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하 대박)은 ‘학예실장’ 자리를 만들어 내는 동안 민박은 손 놓고 있는 바람에 과장들이 역량을 키울 자리는커녕 기회조차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천 관장이 택한 전주박 전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민박이 짊어지게 되었다. 민박 발전이라는 꿈을 함께 했던 일부 학예사들 역시 이를 창피하고 모욕적인 수모로 기억할 것 같다. 천 관장이 인사적체가 심한 중박의 지방박물관장을 거부하지 않는 순간, 민박 관장으로 중박 출신이 오는 것은 인사행정에서는 상식이 아닐 수 없다. 공무원인사에서 정원에 따라 기브앤테이크 즉 바터제가 상식임을 알면서도 작금의 논쟁이 중박의 인사적체를 문제 삼는 것에는 찬성할 수 없다. 오히려 전주박으로 간 천 관장을 정조준하지 못하는 것은 민박의 현실에 대한 인식이나 인지감수성에서 온도 차를 드러낸 것이다.

물론, 신임 박물관장은 박물관을 발전시킬 수 있는 능력 특히 박물관 행정 경험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다만 민속학에 국한하지 않고 관련 분야인 인류학, 역사학, 국문학 등의 학식이 있는 사람이면 충분하다. 과거 정권에서 행정 능력이 미숙한 교수 출신 낙하산 학자들이 망친 기관들은 수도 없이 많다. 따라서 학계의 주장처럼 민박 관장은 민속학 최고 전문가일 필요가 없다.

민박은 대학도 아니며 연구소도 아닌 민속 전문 박물관이다. 민박은 민속을 기반으로 유물조사·수집, 보존처리, 연구, 전시,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 오랜 기간 전문성을 축적해 왔다. 이런 전문성을 이해하고 리드하며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관장이 필요하다. 지금 민박의 숙원과제인 ‘이전’을 비롯하여 산적한 현안을 명쾌하고 신속하게 풀어줄 능력과 경험, 그리고 열정이 있는 사람이면 충분하다.

민박 관장을 오랫동안 공석으로 둘 수 없다. 산적한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능력 있는 해결사 관장의 조속한 임명을 요청하고 싶다. 다만 임기제(2년, 필요하면 4년까지 중임 가능)의 조건을 반드시 붙여야 한다. 우리가 자랑스러워하는 일 잘하는 대통령님도 임기가 겨우 5년이다. 지금처럼 중간 평가 없이 민박 관장을 5년 이상 재직하는 것은 시대착오라고 할 수 있으며 자칫하면 인사 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

민박 공무원 노조는 도종환 장관의 지난 1년 동안 보여준 노사 상생을 비롯한 성공적인 업적에 찬사를 보낸바 있다. 얼마 전 심우용 문체부 노조 위원장이 제정하고 제2회를 맞이하는 '바람직한 관리자상'에 부합하는 '능력 있는 신임 임기제 관장'을 임명해 줄 것으로 믿으며 그런 장관의 바람직한 인사행정을 적극 지지한다.

*이 글은 필자의 개인 견해입니다. 당사자나 관계자 분들의 반론을 기대합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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