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대덕 스님이 그립다
고승대덕 스님이 그립다
  • 정찬주/소설가
  • 승인 2018.07.18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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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주] 고승들 환생한다면 일성과 행동은 무엇일까
▲ 정찬주/소설가

일전에 너무 답답하여 허정스님에게 전화를 했다. 허정스님은 대뜸 나보고 올라오라고 했다. 그 심정을 이심전심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나는 불가피한 사정 때문에 상경하지 못한다고 양해를 구했다. 허정스님은 설조 노스님 곁을 외호하고 계시는 스님이다. 허정스님의 타는 마음을 내가 왜 모르겠는가. 28일째 단식 중인 설조 노스님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는 나도 그러한데 스님이야 가까이서 뵙고 있으니 시시각각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갈 것이다.

경허스님의 주석처였던 천장사 주지를 지낸 허정스님은 자(慈)와 비(悲)를 겸비한 스님이다. 자(慈)란 무엇인가? 그윽할 현(玄)자 두 개에다 마음 심(心)자가 조합된 글자이다. 자(慈)자는 그윽한 하늘같은 마음, 즉 한없이 자애롭다는 뜻을 품고 있는 글자이다. 스님은 천장사 주지 때, 내 산방에서 검둥이를 분양해 갔는데 출가한 뒤 부모만큼이나 속가에서 키우던 강아지가 생각났다고 내게 토로한 적이 있다. 부모만큼 강아지를 그리워하는 스님이라면 천품이 몹시 선하지 않은가. 비(悲)란 무엇인가? 아닐 비(非)자에다 마음 심(心)자가 조합된 글자이다. 즉 아니라고 나무라는 마음, 죽비를 든 마음이 비(悲)자인 것이다. 스님이 승단의 문제점에 대해서 침묵하지 않고 할 말을 계속하는 불퇴전의 태도를 보면 부드러운 성정과 달리 비판의식의 날이 예사롭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궁여지책으로 나는 나와 인연이 있는 이낙연 국무총리께 문자를 띄웠다. 내 산방으로 두 번이나 찾아왔을 때 남도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서 얘기하고 공감한 나머지 전남도청 홈페이지에 대하소설 <이순신의 7년>을 연재하기로 약속했던 인연이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나는 다음과 같이 총리께 문자를 보냈다.

‘말없는 1천만 불자들이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88세 설조 노스님께서는 27일째 단식하고 있습니다. 총리님께서 관심 가져주시기를 바랍니다. 노스님의 목숨이 위태롭습니다. 정치권에서 방관하고 있는데 분노가 치밉니다. 정찬주 합장’

종단 밖의 인사에게 호소하는 것이 부끄러웠지만, 종단사건 역시 대한민국 안의 일이니 어디든 호소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즉시 문자로 답을 주곤 했는데 아직 소식이 없다. 총리께서 신중하게 들여다보실 것이라고 믿는다.

내가 부끄러운 까닭은 또 있다. 불자들에게 지대하게 영향을 미쳐왔던 산중의 원로대덕 스님들이 노스님 생명이 경각에 달려 있는데도 조용하다는 것이다. 선방 수좌의 서슬 퍼런 일갈(一喝)도 도무지 들리지 않는다. 대장부 일대사(一大事)가 실존의 생명 너머에 뜬구름처럼 있다는 말씀이었는지 청법(請法))의 예를 또 갖추지 않을 수 없다. 더불어 고단한 중생을 위해 TV든 라디오든 장소를 가리지 않고 동분서주하던 이른바 스타 스님들은 지금 어디에 계시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나는 삼십여 년 동안 신라의 김지장스님, 만해스님, 경봉스님, 성철스님, 일타스님, 혜암스님, 법정스님 등 고승의 일대기인 장편소설을 집필해 온 문단 말석의 작가이다. 내가 천착해온 고승 분들이 ‘오늘 환생한다면 첫 일성과 행동은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당장 설조 노스님이 계시는 천막으로 달려가시어 스님의 말라가는 손을 맞잡았을 것 같다. 지금도 내 귀에는 혜암스님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1994년 4월,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에 추대된 혜암스님은 종단의 갈등이 심해지자, 개혁회의를 출범시키고 개혁종단을 탄생케 했다. 그때 혜암스님은 대중들에게 자신의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

“우리 종단 모습이 부처님 말씀과 달리 흐릿해지고 망가진 것 아닙니까. 그 흐릿해진 부분을 개혁하자는 것이지 부처님 법을 개혁하자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부처님 법은 개혁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잘못된 부분을 개혁할 수밖에 없다는 뜻을 가지고 발을 들여놓은 것입니다. 희생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이번에는 물러나지 않겠다는 결심을 가지고 왔습니다.”

‘눈앞에 길이 있다’는 선가(禪家)의 금언이 오늘따라 더욱 사무친다. 그 길이란 부처님 제자로서 ‘지금 이 순간 수행자로서 내가 할 일’을 뜻함이 아닐 것인가. 거룩한 한 생명을 떠나보내고 난 뒤 안타까워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양심에 시나브로 얹히는 허물의 무게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자(慈)와 비(悲)를 겸비한 파사현정의 고승대덕 스님이 그립다.

정찬주/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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