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인과 노스님] 곱게 싼 인연
[젊은 시인과 노스님] 곱게 싼 인연
  • 이홍섭
  • 승인 2006.01.24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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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현대시세계> 신인 공모를 통해 시인으로 데뷔한 이래 시집 <강릉, 프라하, 함흥>, <숨결>, <가도 가도 서쪽인 당신>을 펴냈으며, ‘시와 시학 젊은 시인상’을 수상했다. 고향 강릉을 중심으로 한 강원도 정서를 젊은 감성으로 빚어내는 새로운 서정과, 체험에서 우러나는 독특한 불교적 사유를 담고 있는 시편들은 그를 우리 시대의 한 개성적 시인으로 자리매김하게 한다.

강릉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뒤 강원일보에서 기자로 활동했으나, 이 책에 등장하는 노스님을 뵙고 난 뒤 절로 들어갔다. 그로부터 십여 년, 이 책은 그 동안 시인이 비승비속(非僧非俗)의 몸으로 노스님을 시봉하며 배우고, 느낀 생각들을 자유롭게 풀어놓은 것이다.

코딱지절의 유래

가난한 어부를 아버지로 둔 한 스님이 있었습니다.
스님은 사타구니에 막 거웃이 나기 시작할 무렵 집을 떠나 입산을 했습니다. 스님이 입산하게 된 것은 삶에 대한 고민도 고민이었지만, 무엇보다 배고픔이 싫어서였습니다. 일찍이 어머니를 여윈 스님은 바다에 나가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기다리며 배를 곯기 일쑤였습니다.
아버지는 배 한 척 없이 남의 통통배에 얹혀 고기잡이를 나갔기 때문에 돌아올 때도 고기 대신 미역줄기나 다시마줄기를 들고 오는 날이 많았습니다. 스님은 집에 홀로 남아 주린 배를 움켜쥐고 하루 종일 미역이나 다시마를 말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른 미역을 씹으며 허기를 달래던 스님은 미역줄기에 엉겨있던 한 덩이의 소금을 씹은 뒤 그 길로 집을 떠나 머리를 깎았습니다. 우련히 씹게 된 소금이 그동안의 찌든 가난을 쥐어짜듯 확인시켜 주었고, ‘앞으로의 삶이 설마 이 짜디 짠 소금보다 못하랴’라는 깨달음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스님은 입산을 하면서 다시는 고향을 찾지 않으리라 다짐했습니다. 스님은 고향과 정반대편에 있는 마을의 절도 들어가 한 노스님을 시봉하며 스님 생활을 열심히 했습니다. 물론 삼시 세 끼는 놓치지 않고 찾아 먹을 수 있었고, 공부도 마음껏 할 수 있었습니다. 머리가 명석한 스님은 노스님의 총애를 받으며 자라나 점점 유명한 스님이 되어갔습니다. 스님은 젊은 나이에 스님들을 가르치는 유명한 강주(講主)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스님은 자신과 한 약속대로 입산 이후 한 번도 집을 찾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 스님의 아버지는 아들을 찾아 헤매다 마침내 포기하고 고향을 떠났습니다. 아버지는 스님이 된 아들을 보았다는 마을 사람의 얘기를 듣고 아들이 이제 다시는 올 수 없는 곳으로 갔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도 잊을 겸, 물 좋은 바다도 찾을 겸 해서 전국의 바다를 전전하다가 강원도의 한 작은 바닷가에 정착했습니다. 스님이 전국의 여러 절을 돌며 정진하는 동안, 아버지는 바다에 나가 열심히 고기를 잡았습니다. 아버지는 바다와 싸우느라, 얼굴이 검게 타고 주름이 깊어졌습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스님이 시봉하던 노스님이 열반을 앞두게 되었습니다. 노스님은 절 안의 식구들을 모두 불러 모은 뒤 “이 절은 내가 평생 노력하여 부자 절로 만들었다. 나는 이제 저 세상으로 가니 이 절의 재산은 공동으로 관리하고 나누어 쓰도록 하라”고 말한 뒤 입적했습니다. 그러나 절의 식구들은 스님이 입적하자마자 재산다툼을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차라리 재산을 남기지 않는 것보다 못한 꼴이 펼쳐졌습니다. 노스님을 시봉했던 스님은 쓸쓸하게 절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때 어떤 사람이 아버지의 전갈을 가지고 찾아왔습니다. 아버지가 죽기 직전 꼭 한 번 아들을 만나고 싶다며 자신을 보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스님의 이름이 널이 알려져 의외로 찾기 쉬웠다고 덧붙였습니다.

스님이 출가한 이후 처음으로 아버지를 찾아갔습니다. 은사스님을 떠나 보내고 겪은 마음 고생이 출가할 때의 다짐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스님은 자신에게 아무것도 남은 게 없는 것 같다고 허망함을 느꼈습니다. 스님에게 남은 것은 조그만 명성과 단 하나의 혈육인 아버지뿐인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출가할 때와 마찬가지고 코딱지만한 작은 어촌에 살고 계신 아버지를 보는 순간 저절로 한숨이 폭 새어 나왔습니다. 마당에는 여전히 미역줄기며 다시마줄기가 어지럽게 널려있었습니다. 스님은 어린 시절 씹었던 소금 맛이 되살아나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숨을 거두기 직전인 아버지의 목소리가 스님의 발길을 잡았습니다. 아버지는 파도에 얽은 바위 같은 손으로 아들의 손을 잡고, 숨을 고르며 유언을 남겼습니다.

“나는 평생 이 바다를 일구며 살았다. 내가 너에게 줄 것이라곤 평생 일군 이 바다밖에 없다. 이 넓은 밭은 너에게 주고 간다. 아들아, 이 푸른 밭을 다 가져라.” 아버지는 스님에게 그렇게 유언을 남기고 이승을 떠났습니다. 스님은 아버지를 위해 제를 지내고 극락왕생을 빌었습니다. 바다는 아버지가 얘기한 대로 넓디넓은 밭처럼 푸르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스님은 지난 시절을 곱씹어 보았습니다. 가난, 출가, 스님으로서의 명성……. 그것은 마치 아버지가 싸워 온 파도와 같았습니다. 파도를 넘으면 이전의 파도는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고 마는 것이었습니다. 스님은 비로소 아버지의 유산이 누구나 줄 수 없는 최고의 선물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스님은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다 문득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파도를 보고 놀라고 말았습니다. 바다는 파도를 한 번 일으킬 때마다 푸른 경전(經典)하나씩을 세우며 달여오고 있었습니다. 그 후 스님은 아버지가 살던 집을 절로 개조한 뒤 ‘코딱지절’이라 이름 붙이고 그곳에서 여생을 보냈습니다. 지금도 그 절에 가면 소금뭉치가 사금파리처럼 반짝이는 미역줄기며, 다시마줄기가 앞마당에 널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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