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스님 성전] 새들이 비로소 내게 왔다
[미소스님 성전] 새들이 비로소 내게 왔다
  • 김영태
  • 승인 2006.01.26 17: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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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되면 산은 야윈다. 우리 절을 찾아온 겨울 철새들 역시 먹을 것이 없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맘 때 쯤 새들의 비상이 적어 보이는 것도 먹을 것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

아침에 도량을 거닐다 보면 여기저기 분주히 날아다니는 새들을 만날 수 있다. 시린 하늘 아래 날개 짓은 서글퍼 보인다.

얼마나 춥고 배가 고플까. 아침녘의 새에게서는 이렇게 연민의 마음을 지니게 된다. 그러고 보면 새는 내게 연민을 일깨워 주는 좋은 스승이기도 하다.

세상을 구하겠다는 큰 자비의 마음도 연민이요, 부처의 설산의 고행도 역시 연민이다.

연민은 수행자에게는 생명과도 같은 것이다. 연민을 잃어버리면 성불도 수행도 모두 의미가 없게 된다. 그래서 수행자는 언제나 연민의 마음을 잃지 않아야만 한다.

날마다 새를 만나며 나는 새들을 위해서 무엇을 해줄까 고민을 하다가 같이 공부하는 스님과 함께 새 먹이 대를 만들기로 했다.

날이 차 손끝이 아렸지만 새들을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추위보다 더 큰 기쁨으로 다가왔다. 괴목 나무 곁에 먹이 대를 세우고 그 위에 땅콩, 깨, 쌀, 쇠기름, 빵 등을 놓아두고 새가 날아와 먹기를 기다렸다. 먹이를 놓으며 나는 먹이를 놓기 무섭게 새들이 날아와 먹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그 예상은 빗나갔다. 하루 이틀이 지나도 새들은 날아와 먹이를 먹지 않았다. 삼일 째 되던 날 마침내 박새 한 마리가 날아와 먹이를 먹기 시작했다. 그 다음 날에는 박새뿐만 아니라 곤줄박이와 직박구리도 날아와 먹이를 먹기 시작한 것이다.

새들은 처음에는 눈치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누구도 선뜻 먹이를 먹으러 오지 않았던 것은 아마도 두려움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러다 용기 있는 박새 한 마리가 날아와 먹이를 먹자 다른 새들도 아무런 주저 없이 날아와 먹이를 먹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인간의 세계나 새들의 세계나 그리 다른 것이 아니다. 우리 세계도 용기 있는 사람들에 의해 새로운 길이 열리듯이 새들의 세상 역시 용기 있는 새들에 의해 개척 된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우리 세상에서는 그를 선구자라 부르는데 새들은 무엇이라고 부르는지 궁금하다.

이제 새들은 내가 지켜보고 있어도 날아가지 않는다. 그만큼 새와 나는 가까워진 것이다. 직박구리의 아주 요란한 울음소리도 박새의 맑은 울음소리도 나는 아주 가까이에서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가까워진 거리는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새들이 비로소 내게 날아온 것은 내게 연민의 숲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숲 안에서 새들은 평화롭다. 우리 사는 세상에도 내가 너를 생각하는 따뜻한 연민의 숲으로 가득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서로가 서로에게 둥지가 되는 따뜻한 세상의 아침을 나는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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