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스님 성전] 삭발하는 날
[미소스님 성전] 삭발하는 날
  • 김영태
  • 승인 2006.01.31 11: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절집에서는 보름마다 한 번씩 머리를 깎는다. 대개 보름이 되면 머리가 밤송이처럼 까칠하게 자란다. 깍지 않으면 보기가 싫어진다. 그리고 이미 자란 머리털의 무게를 느끼게 된다. 삭발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설마 하겠지만 늘 머리를 삭발하고 사는 사람들에게 밤털처럼 자란 머리털의 무게는 여간 성가신 것이 아니다. 이렇듯 보름이 지나면 삭발의 단정함이 사라지게 된다. 보름을 주기로 삭발일을 정한 우리 절집의 전통이 오랜 경험의 산물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처음 산에 들어 머리를 자를 때가 생각난다. 머리가 길었었다. 삭발기를 바로 갖다 댈 수가 없었다. 삭두를 들이대기 전 가위로 먼저 자르는 초벌 작업을 해야 했다. 가위를 갖다 댈 때마다. ‘삭둑’ 소리와 함께 떨어져 내리는 머리카락들. 마치 낙엽과도 같았다. 떨어져 내린 머리카락은 물을 담은 대야 속에서 낙엽처럼 순하게 떠다녔다. 그 후에 ‘싹싹’ 소리를 내며 이어지던 삭두질 소리. 삭발을 하는 동안 눈물이 흘렀다. 이유도 없이 눈물이 흘러내려 뺨을 적셨다. 그것은 슬픔이기도 했고, 두려움이기도 했다. 삭발을 하고 나서 거울을 보았다. 거기에는 내가 없었다. 대신 낯 선 내가 서 있었다. 거울에 비친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울다가 다시 피식 웃었다. 그것이 내 첫 삭발하는 날의 모습이었다.

이제 삭발은 내게 더 이상 슬픔이나 두려움은 아니다. 그렇다고 일상적인 행위의 반복으로 그치는 것만은 아니다. 언제나 삭발은 머리털을 자르는 것 이상의 의미로 내게 다가선다. 너는 구세대비의 원력을 지니고 살아야 하는 출가 수행자라는 준엄한 목소리가 바로 그것이다. 삭발을 할 때마다 나는 언제나 나를 경책하는 그 목소리를 듣는다. 그것은 나의 내면에서 나의 번뇌와 나태와 일탈을 향해 보름마다 무섭게 일갈을 한다. 그 매운 꾸짖음 앞에서 나는 언제나 부끄럽기만 하다.

애정을 끊고 친한 이들을 버리고 떠나는 출가에는 신출가(身出家)와 심출가(心出家)가 있다. 신출가는 몸이 출가하는 것이고, 심출가는 마음이 출가하는 것이다. 출가의 진정한 의미는 바로 구세대비의 원력을 지닌 심출가에 있는 것이다.

삭발을 할 때마다 나는 나의 출가의 의미를 묻는다. 마음으로 출가한 자라고 하기에는 내 마음 속 원력의 자취가 너무 흐리다. 살아갈수록 나는 출가의 진정한 의미와는 점점 멀어져 가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삭발을 하는 아침이면 나는 언제나 나의 길과 모습에 대해서 묻는다. 보름마다 확인 되는 내 모습이 남루할지라도 나는 계속해서 내게 묻고 또 물을 것이다. 그것이 보다 나은 자아를 만들어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진정 자신을 돌아보는 일을 잊고 살고 있다. 가끔씩 자신의 모습을 찾아볼 때 우리 사는 세상이 좀 더 아름다워질 수 있을 것이다. 바람은 찬 데 삭발한 머리가 또 하나의 다짐으로 거울에 비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11길 16 대형빌딩 402호
  • 대표전화 : 02-734-7336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석만
  • 법인명 : 뉴스렙
  • 제호 : 뉴스렙
  • 등록번호 : 서울 아 00432
  • 등록일 : 2007-09-17
  • 발행일 : 2007-09-17
  • 발행인 : 이석만
  • 편집인 : 이석만
  • 뉴스렙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뉴스렙. All rights reserved. mail to cetana@gmail.com
  • 뉴스렙「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조현성 02-734-7336 cetana@gmail.com
인터넷신문위원회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