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산에 들어 머리를 자를 때가 생각난다. 머리가 길었었다. 삭발기를 바로 갖다 댈 수가 없었다. 삭두를 들이대기 전 가위로 먼저 자르는 초벌 작업을 해야 했다. 가위를 갖다 댈 때마다. ‘삭둑’ 소리와 함께 떨어져 내리는 머리카락들. 마치 낙엽과도 같았다. 떨어져 내린 머리카락은 물을 담은 대야 속에서 낙엽처럼 순하게 떠다녔다. 그 후에 ‘싹싹’ 소리를 내며 이어지던 삭두질 소리. 삭발을 하는 동안 눈물이 흘렀다. 이유도 없이 눈물이 흘러내려 뺨을 적셨다. 그것은 슬픔이기도 했고, 두려움이기도 했다. 삭발을 하고 나서 거울을 보았다. 거기에는 내가 없었다. 대신 낯 선 내가 서 있었다. 거울에 비친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울다가 다시 피식 웃었다. 그것이 내 첫 삭발하는 날의 모습이었다.
이제 삭발은 내게 더 이상 슬픔이나 두려움은 아니다. 그렇다고 일상적인 행위의 반복으로 그치는 것만은 아니다. 언제나 삭발은 머리털을 자르는 것 이상의 의미로 내게 다가선다. 너는 구세대비의 원력을 지니고 살아야 하는 출가 수행자라는 준엄한 목소리가 바로 그것이다. 삭발을 할 때마다 나는 언제나 나를 경책하는 그 목소리를 듣는다. 그것은 나의 내면에서 나의 번뇌와 나태와 일탈을 향해 보름마다 무섭게 일갈을 한다. 그 매운 꾸짖음 앞에서 나는 언제나 부끄럽기만 하다.
애정을 끊고 친한 이들을 버리고 떠나는 출가에는 신출가(身出家)와 심출가(心出家)가 있다. 신출가는 몸이 출가하는 것이고, 심출가는 마음이 출가하는 것이다. 출가의 진정한 의미는 바로 구세대비의 원력을 지닌 심출가에 있는 것이다.
삭발을 할 때마다 나는 나의 출가의 의미를 묻는다. 마음으로 출가한 자라고 하기에는 내 마음 속 원력의 자취가 너무 흐리다. 살아갈수록 나는 출가의 진정한 의미와는 점점 멀어져 가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삭발을 하는 아침이면 나는 언제나 나의 길과 모습에 대해서 묻는다. 보름마다 확인 되는 내 모습이 남루할지라도 나는 계속해서 내게 묻고 또 물을 것이다. 그것이 보다 나은 자아를 만들어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진정 자신을 돌아보는 일을 잊고 살고 있다. 가끔씩 자신의 모습을 찾아볼 때 우리 사는 세상이 좀 더 아름다워질 수 있을 것이다. 바람은 찬 데 삭발한 머리가 또 하나의 다짐으로 거울에 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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