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불교는 이러한 줄탁동시의 전통 속에서 꽃을 피워 왔다고 할 수 있다. 군대보다도 더 엄격하고, 얼음장보다도 더 냉엄한 이 가풍은 '깨달음'이라는 절대적 가치를 골수로 삼아 끊이지 않고 이어져 왔다.
<<벽암록>>에는 이와 관련하여 '경청줄탁'이란 화두가 등장한다.
어떤 수행자가 경청화상에서 물었다.
"저는 껍질을 깨고 나가려는 병아리와 같으니 부디 화상께서는 껍질을 때뜨려 주십시오"
"그렇게 하면 살아날 수 있겠는가?"
"제가 만약 살아나지 못하면 스님은 사람들의 비웃음을 살 것입니다."
그러자 화상이 그를 질책했다.
"역시 멍청한 놈이구나"
돌이켜 보면 나도 '멍청한 놈'이었다. 내곁에는 늘 훌륭한 스승들이 있었고, 나는 알게 모르게 그 스승들이 바깥에는 쪼는 소리를 들었으되 그 소리에 제대로 호응하지 못했다. 때로는 스승에게서 섭섭함을 느끼기 까지 했으니 더 말해 무엇 하랴.
고등학교 때 시를 가르쳐 준 은사는 나에게 '시인의 뼈'를 주셨다. 시에서의 절제와 삶에서의 고집은 다 그분에게서 배웠다. 시 열 편이 쌓이면 원고를 옆구리에 끼고 바다로 향해 나 있는 둑방을 걸어 은사의 집으로 향하던 길 위에서 내 뼈는 굵어졌다. 나는 여전히 그 바람부는 길 위에 서 있다. 은사의 말 한마디에 울고 웃던 그 시설, 나는 얼마나 많은 '탁 탁' 소리를 들었던가.
대학 시절 은사는 '시인의 눈'을 주셨다. 마치 선승들이 법거량을 하듯, 나는 은사와 문학거량을 하며 밤을 샜다. 은사는 이 거량을 통해 보이지 않게 푸른 초원을 깔아 주셨고, 나는 푸른 초원과 그 너머를 바라보며 시력을 키웠다. 내가 유목민처럼 초원을 달려 나갈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얻은 것도 다 그분 덕택이다. 그 말발굽 소리가 다름 아닌 '탁 탁' 소리였으니......
서른을 넘어 뵙게 된 은사스님은 '시인의 골수'를 주셨다. 나는 스님에게서 삶의 희로애락과 덧없음을 배웠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는 삶의 자유와 고독을 맛보았다. 산에 머물 때나, 도시에 머물 때나 스님이 가르쳐 주신 '큰 슬픔'은 늘 안개처럼 나를 감쌌다. 나는 이 화두가 무섭고 버거워 무작정 도망치려 한 적도 많았다. 스승이 던져 준 화두를 피하려 했으니 어찌 멍청한 놈이 아니겠는가.
내 지나온 삶은 다 스승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그 길은 늘 설렘과 희열을 동반한 행복한 길이었다. 이 축생의 삶에서 이만한 길이 또 어디에 있을까. 나는 그 길을 걷기 위해서라도 알에서 깨어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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