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스님들은 공부할 때 졸지 않기 위해서 턱 밑에 송곳을 곧추 세워 놓기도 하고 혹은 자기의 허벅지를 꼬집어 살이 시퍼렇게 멍이 들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그들의 공부를 향한 의지는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그런 옛 스님들의 모습은 번번이 수마에 지고 마는 내 모습을 비추어 보는 거울이 된다.
오늘도 나는 새벽 예불을 마치고 와서 좌복 위에 앉았다. 시간은 더디게 흐르고 잠은 빠르고 무겁게 찾아왔다. 졸지 말아야지 하고 도리질을 해보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앉아서 졸다가 좀더 지나서는 아예 수마에게 모든 것을 내주고야 말았다. 졸음을 극복하지 못하면 절대 공부를 해 나갈 수 없다고 했는데 나는 이렇게 수마에 패하고 마는 것이다.
살다보면 하고자 하지만 되지 않는 것들이 너무도 많다. 어느 것 하나 자신의 뜻을 따라 쉽게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노력해도 쉬이 이룰 수 없는 것이 세상의 일이다. 그래서 아름다운 삶을 위해서는 서로를 헤아려주는 마음이 필요하다. 자기가 아닌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진정한 헤아림의 의미일 것이다.
어느 선방에서의 일이다. 스님들이 참선하다 조는 모습을 보고 그 절에서 일하는 처사가 선방 앞을 지날 때 마다 중얼거리고는 했다. “매일 앉아서 졸기만 하는 것이 공부라면 나도 하겠다.” 처사의 눈에는 스님들이 그저 공부는 안하고 졸기만 하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하루는 처사의 중얼거리는 소리가 좀 컸던 모양이다. 그 소리를 정진하던 스님이 듣게 되었다. 스님은 정진을 마치고 조용히 처사를 불렀다. 그리고 제안을 했다. 우리와 같이 하루만 참선을 해보자고. 처사는 자신있게 대답했다. 앉아서 조는 일이라면 그도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처사의 생각과는 달리 앉아 있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처음 삼십 분은 견디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온몸이 쑤시는 것이 죽을 지경이었다. 처사는 끝내 하루를 견디지 못하고 선방을 나오고야 말았다. 그가 그렇게 쉽게 보았던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그 후 그는 밭을 갈 때마다 소가 말을 안 들으면 말하곤 했다. “이 놈의 소 행건 채워 선방에 데려다 앉혀 놓을 테다.”
사람은 모두가 다르다. 능력에서 생각까지 저마다 다른 것이 사람의 특성이다. 그 다름은 헤아리는 마음이 있을 때 비로소 조화를 이룰 수 있다. 그러나 나의 관점으로 재단하려 들 때 그 다름은 분열과 대립이 된다. 세계가 한 송이 꽃이라는 말은 헤아리는 마음의 소중함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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