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시인과 노스님] 봉정암 가는 길
[젊은시인과 노스님] 봉정암 가는 길
  • 이기창
  • 승인 2006.06.05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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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설악 봉정암은 우리 나라 사찰 중에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해발 1,244미터. 오르는 길 자체가 고행의 길이다.

그러나 봉정암을 향하는 불자들의 발길은 폭설이 내리는 한겨울을 제외하고는 끊이지 않는다. 불교성지인 적멸보궁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적멸보궁은 이 봉정암과 더불어 오대산 상원사, 정선 정암사, 영월 법흥사, 양산 통도사 등 다섯 사찰을 으뜸으로 꼽는다. 이른바 5대 적멸보궁이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셨기 때문에 따로 불상을 모시지 않는 곳, 상像을 만들지 말라고 가르친 석가의 가르침이 가장 생생하게 살아 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백담사에 머물 때 나는 이 봉정암을 여러 번 다녀왔다. 한 번은 비를 무릅쓰고 홀로 길을 나섰다가 정말로 적멸에 들 뻔한 적도 있었다. 적멸寂滅이란 무엇인가. 참으로 고요한 빈자리로 들었다는 것이 아닌가. 스님들의 죽음을 일러 적멸, 원적圓寂, 입적入寂 등으로 부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비를 맞으며 길을 잃어버렸을 때 나는 문득 이 적멸을 떠올렸다. 그리고 이 높은 곳에 절을 지으려 한 스님들의 발걸음 또한 참으로 고요한 빈자리를 향한 발걸음이 아니겠냐는 생각을 해 보았다. 내설악의 품은 충분히 그럴 만한 적멸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봉정암 적멸보궁에 처음 참배를 했을 때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인생의 무상함을 느꼈다. 불상은 없고 다만 방석만이 뎅그라니 놓여 있는 자리 뒤로 큰 유리창이 있었고, 그 창으로 오월의 신록이 햇빛과 함께 찰랑대고 있었다. 유리창을 기준으로 이쪽과 저쪽의 세상이 그렇게 완벽하게 갈라지는 풍경을 나는 일찍이 경험한 적이 없었다.

적멸보궁 안의 어두컴컴한 세계와 창 저쪽의 생동감 넘치는 세계는 유한한 인간의 삶과 그 너머 불멸의 세계를 강파르게 확인시켜 주고 있었다. 그만큼 내가 발 딛고 있는 이 세계가 그렇게 무상할 수 없었다. 텅 빈 방석은 그 무상함의 상징이었다. 석가는, 부처님은 빈 방석을 보여 주며 "자, 봐라, 인생은 이렇게 텅 빈 것이야. 한 생각 바꾸면 그 너머에서 불멸을 볼 수 있는 것을......"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진실로 유리창을 깨 버리고 싶었다.

이 체험 이후 봉정암을 향하는 사람들이 새롭게 보였다. 그들의 삶과 그들의 사연, 그리고 그들의 비원을 알고 싶어졌다. 숨이 넘어갈 것 같은 '깔딱고개'를 넘어 그들은 무엇 때문에 그토록 험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적멸보궁을 찾아가는가. 단지 불교성지이기 때문인가. 아닐 것이다. 성지는 이곳 말고도 많다.

어느 날 한 아주머니가 발이 퉁퉁 부어 신발을 벗은 채 봉정암을 오르고 있었다. 왜 그 힘든 몸으로 산을 오르냐고 물었더니 봉정암에서 기도한 덕에 교통사고를 당한 아들이 살아났다고 했다. 어느 날은 일흔이 된 할머니가 쌀을 지고 오르고 있었다. 왜냐고 물었더니 앞으로 다시는 못 올 것 같아서, 힘이 남아 있을 때 한 번 더 보고 가려고 오른다고 했다. 나는 생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할머니의 순례가 무사히 끝나길 진심으로 기원했다.

하지만 나는 내가 풀고 싶은 의문을 시원하게 풀지는 못했다. 나는 그 믿음과 구원의 뒤에 있는 그 무엇을 보고 싶었다.

이 의문이 풀린 것은 산을 떠나온 지 두 해쯤 지나서였다. 내가 먼저 적멸보궁으로 가고 싶어졌다. 빌딩 숲 뒤로 노을이 질 때나, 플라타너스 이파리가 거리에서 나뒹굴 때면 나는 봉정암에 가고 싶었다. 백담계곡을 지나, 수렴동을 지나, 깔딱고개를 넘어 거기 큰 암반 위에 자리 잡은 봉정암 적멸보궁. 빈 방석과, 그 너머 햇빛 속에서 찰랑대던 신록이 보고 싶어졌다. 그 무상함과 불멸의 공존을 보고 싶어졌다. 한번만 더 가 보면, 한 번만 더 가 보면 이 세속을 견데 내는 데 힘이 될 것 같았다. 나는 비로소 적멸보궁이 지닌 신비한 힘을 어렴풋이 알아차릴 수 있었다.

봉정암의 성지 중 또 다른 한 곳은 뒷산 바위 위에 볼록 솟아오른 오층석탑이다. 부처님의 뇌사리를 봉안했다고 해서 불뇌보탑佛腦寶塔이라고도 부리는 이 석탑 앞에 서면 절로 탄성이 터져나온다. 다른 탑들과 달리 기단부가 없어 마치 탑 아래 바위를 뚫고 솟아나온 듯한 느낌을 주는 이 탑은 또 다른 무상함의 상징이다. 이 탑을 만든 스님(혹은 석공)은 아마도 삶의 처연함, 무상함을 이렇게나마 뚫고 가려 했을 것이다. 이것이 믿음이라면 믿음이고, 구원이라면 구원이 아니겠는가.

봉정암을 오르는 길은 고행의 길이다. 그러나 그 고행의 끝에는 적멸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는 보궁이 있고, 삶의 무상함을 뚫고 솟아오른 불멸의 탑이 있다. 살아간다는 것은 그 보궁과 탑 앞에 쌀과 초, 그리고 향을 바치는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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