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오면서 많은 비 소리를 만났다. 유년시절부터 출가의 길을 걷고 있는 지금까지 비 소리는 세월과 함께 다르게 다가왔다. 어린시절의 비 소리가 마치 실로폰 소리와 같았다면 사춘기의 비 소리는 바이올린 같았다. 그리고 나이가 든 지금 비 소리는 첼로 소리처럼 내게 다가선다. 그것은 어쩌면 내 마음과 세월의 변화를 비 소리가 그렇게 연주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폭포 같은 비가 쏟아지던 어느 날 도반스님이 머물고 있는 토굴을 찾아 간 적이 있었다. 어둠과 폭포처럼 쏟아 붓는 비를 뚫고 찾아 갔지만 나는 그만 계곡 앞에서 발길을 멈추어야만 했다. 계곡의 물이 불어 건널 수가 없었다. 천둥과도 같은 소리로 흘러내리는 물길 위로 목이 터져라 스님을 불러 보았지만 내 목소리는 물길을 넘어 스님의 처소에까지 이를 수는 없었다. 몸에 줄을 묶고 건너려고 시도도 해보았지만 물길의 도도함 앞에서는 그 시도마저도 접어야만 했다.
나는 우두커니 서서 빗속에서도 단아하게 비치는 불빛을 바라보았다. 그 불빛은 마치 그 방 안에서 정진을 하고 있는 스님의 삶의 자세를 닮은 것만 같았다. 반가웠다. 스스로 모든 것을 버리기를 즐겨하는 사람. 그는 그렇게 이 산중으로 떠나왔다. 지금 그에게 비는 어디에 내리고 있을까. 어쩌면 그에게는 지금 이 순간 비가 내리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마음이 고요해져 일체의 경계가 끊어진 사람에게 비는 내리나 내리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비가 내리면 나는 가슴이 젖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고는 한다. 비가 가슴에 내리는 것이다. 가슴에 내리는 비는 외로움을 남긴다. 그런 날은 우산을 쓰고 천천히 산길을 걸으며 내 외로움의 이유를 찾아본다. 우산에 떨어지는 비 소리를 들으며 나는 행복하지 않기 때문에 외롭다는 도반 스님의 대답을 만난다. 그는 참선을 하면서 행복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이제는 어디에 있어도 외롭지 않을 거라며 그는 웃었다. 달관한 듯한 그의 웃음은 분명 길을 찾은 자의 표정이었다. 산길을 걸으며 나는 몇 번이고 그의 말을 떠올린다. 그러면 그것이 내 외로움의 답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마음 찾는 공부를 하는 사람에게 비는 내리나 내리지 않고 비 소리는 들리나 침묵과도 같은 것이다. 너무 오랫동안 가슴에 내리는 비 소리를 듣고 살아왔다. 나도 이제 침묵과도 같은 비 소리를 만나야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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