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선지식] '병을 앓고있던 유마' 만해
[한국의 선지식] '병을 앓고있던 유마' 만해
  • 이기창
  • 승인 2006.08.08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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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이 병들었기 때문에 나의 병이 생겼습니다. 그러므로 중생에게 병이 없게 된다면 나의 병도 곧 낫게 됩니다. ” 유마거사는 문병을 온 문수보살에게 몸져누운 이유를 밝힌다.

보살의 병은 자비심에서 비롯된다. 보살은 원래 생사를 벗어난 성인이다. 아플 까닭이 없다. 하지만 중생의 아픔을 대신하기 위해 생사번뇌의 현실에 뛰어든다. 석가모니 부처와 동시대를 산 유마의 본명은 유마힐(維摩詰)이다. 비록 머리를 깎지 않고 처자식을 거느린 재가불자였지만 그는 부처에 귀의, 큰 깨달음을 이룬 현자였다.

이웃은 그의 가족이었고 공동체는 벗이었다. 깨달음의 열매를 사회에 환원하는,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의 정신이 부처의 제자 가운데 누구보다 투철했다. 당연히 생사번뇌의 바다에서 신음하는 중생을 외면을 할 수 없었다. 유마의 중생을 향한 자비심은 어버이의 자식사랑이나 다름없었다. 조건 없는 사랑, 그 것이 보살행이다.

만해는 병을 앓고 있던 유마였다. 그의 삶의 궤적에선 유마의 모습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의 사상과 정신은 유마경에 뿌리를 박고 있다. 유마경(또는 유마힐소경)은 대승불교의 토대가 되는 소의(所依)경전이다. 경은 부처와 보살의 가르침만을 일컫는다. 고승대덕의 법문은 경이 될 수 없다. 그러나 단 하나의 예외가 있다. 바로 유마경이다. 물론 부처와 여러 보살의 법문도 담고 있지만 이 경의 주인공은 유마다. 부처는 직접 유마의 법문을 경으로 인정했다.

“유마의 중생구제 이념은 만해의 많은 저서에서 핵심이 되며 유마의 게송은 그대로 ‘님의 침묵’의 미학으로 발전하게 된다.” 만해의 일대기를 쓴 문학평론가 임중빈씨의 분석이다. 그는 또 “만해 작품의 향기는 중생구제의 몸부림에서 나온다. 만해의 침묵은 유마의 묵묵부답 그 것이기도 하다”고 덧붙인다.

유마의 묵묵부답이란 무엇인가. 불변의 절대진리를 일컫는 불이법문(不二法門) 토론자리에서 문수보살이 말했다. “그 것은 모든 문답(언어)을 떠난 경지이겠지요. 유마거사의 생각은 어떠합니까.” 유마는 아무 말이 없었다. 불이법문이 언어를 떠난 경지임을 침묵으로 암시한 것이다. 만해의 문학, 특히 시의 세계는 언어를 초월한다. 침묵의 진리로 시를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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