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스님 성전] 산은 내게 그렇게 살라하네
[미소스님 성전] 산은 내게 그렇게 살라하네
  • 김영태
  • 승인 2006.08.14 11: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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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눈이 부신 아침이다. 찬란하다는 말이 오늘 아침의 햇살에게는 적격이다. 햇살의 입자들이 눈이 부시게 다가와 모든 것이 밝게 빛난다. 짙푸른 나무의 잎들도 햇살을 닮아 마치 빛들이 모여 있는 것만 같다. 이럴때 내게는 즐거운 혼돈이 온다. 나무를 나무라 불러야 할지 아니면 햇살이라 불러야 할지 그 경계가 무너지는 것이다. 하긴 어떠랴. 나무가 나무만이 아니고 햇살이 햇살만이 아닌 것을. 모든 것이 인연인 생명의 세계에서 이렇게 경계가 무너지는 것을 바라본다는 것은 생명의 세계를 체득해 가는 즐거운 과정이기도 하다.

산사 마루에 앉아 햇살이 가득 내려앉아 녹음을 지워버린 나무를 바라보며 나는 옛 스님의 글 한 편을 읊조린다.

암자는 천 봉우리 속에 아득히 숨어 / 골이 깊고 험하여 이름조차 알 수 없네 / 창을 열면 다가서는 산 빛이요 / 문 닫으면 스며드는 개울물 소리네.
암자는 아득히 먼 곳에 있다. 구름만이 오갈 뿐 인적은 자취조차 없다. 창을 열면 산 빛과 만나고 문을 닫으면 개울물 소리와 만날 뿐 칩거한 스님의 마음에는 번뇌가 없다. 그리움도 바람도 모두 끊어진 마음의 평화가 엿보인다. 그 골의 이름을 알 수 없듯이 그는 어쩌면 자신의 이름마저도 버렸는지 모른다. 이름마저 버렸을 때 자연과 하나가 되고 자연과 하나가 되었을 때 만나게 되는 마음의 적요가 무척이나 아름답게 다가온다.

나는 지금 문을 열면 산 빛이 바라다 보이고 문을 닫으면 개울물 소리 들리는 곳에 있다. 그 곳에서 난 아침이면 좌선을 하고 해가 뜨는 오후에는 계곡에 나가 물에 발을 담그고 밤이면 하늘의 별을 헨다. 마음을 쉬면 이토록 편하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대중과 더불어 살 때는 느껴보지 못한 마음의 평화다. 옛 스님들이 왜 대중을 떠나 깊은 산으로 들어갔는지 알 것도 같다.

이름마저도 기꺼이 버리고 산에서 살다간 옛 스님의 그 마음이 나는 부럽다. 더는 아무것도 구하지 않기에 깊은 골짜기에서도 그는 자유로운 것이다. 산 빛을 만나면 산 빛이 우주가 되고 물소리를 들으면 물소리가 우주가 되는 그의 텅 빈 마음은 이미 구속을 떠나 있다. 외로움과 그리움은 마음의 구속일 뿐이다. 마음이 텅 빈 자유로운자에게 생은 어쩌면 구름처럼 자유로운 것인지도 모른다.

이 아침 옛 스님의 시 한 편이 내 마음을 움직인다. 그리고 눈부신 햇살과 흐르는 계곡과 햇살에 빛나는 나무들이 내 발길을 잡는다. 산 중에서 그냥 살라한다. 떠가는 구름과 흐르는 물처럼 그렇게 살라한다. 산 밖의 일은 모두 번뇌로 돌리고 산 빛 같은 마음으로 그냥 살라한다. 이름도 모를 골짜기에서 이름마저 버리고 자유롭게 살라한다. 그렇게 살 수 있을까. 그러나 그렇게 살고만 싶은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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