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 마루에 앉아 햇살이 가득 내려앉아 녹음을 지워버린 나무를 바라보며 나는 옛 스님의 글 한 편을 읊조린다.
암자는 천 봉우리 속에 아득히 숨어 / 골이 깊고 험하여 이름조차 알 수 없네 / 창을 열면 다가서는 산 빛이요 / 문 닫으면 스며드는 개울물 소리네.
암자는 아득히 먼 곳에 있다. 구름만이 오갈 뿐 인적은 자취조차 없다. 창을 열면 산 빛과 만나고 문을 닫으면 개울물 소리와 만날 뿐 칩거한 스님의 마음에는 번뇌가 없다. 그리움도 바람도 모두 끊어진 마음의 평화가 엿보인다. 그 골의 이름을 알 수 없듯이 그는 어쩌면 자신의 이름마저도 버렸는지 모른다. 이름마저 버렸을 때 자연과 하나가 되고 자연과 하나가 되었을 때 만나게 되는 마음의 적요가 무척이나 아름답게 다가온다.
나는 지금 문을 열면 산 빛이 바라다 보이고 문을 닫으면 개울물 소리 들리는 곳에 있다. 그 곳에서 난 아침이면 좌선을 하고 해가 뜨는 오후에는 계곡에 나가 물에 발을 담그고 밤이면 하늘의 별을 헨다. 마음을 쉬면 이토록 편하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대중과 더불어 살 때는 느껴보지 못한 마음의 평화다. 옛 스님들이 왜 대중을 떠나 깊은 산으로 들어갔는지 알 것도 같다.
이름마저도 기꺼이 버리고 산에서 살다간 옛 스님의 그 마음이 나는 부럽다. 더는 아무것도 구하지 않기에 깊은 골짜기에서도 그는 자유로운 것이다. 산 빛을 만나면 산 빛이 우주가 되고 물소리를 들으면 물소리가 우주가 되는 그의 텅 빈 마음은 이미 구속을 떠나 있다. 외로움과 그리움은 마음의 구속일 뿐이다. 마음이 텅 빈 자유로운자에게 생은 어쩌면 구름처럼 자유로운 것인지도 모른다.
이 아침 옛 스님의 시 한 편이 내 마음을 움직인다. 그리고 눈부신 햇살과 흐르는 계곡과 햇살에 빛나는 나무들이 내 발길을 잡는다. 산 중에서 그냥 살라한다. 떠가는 구름과 흐르는 물처럼 그렇게 살라한다. 산 밖의 일은 모두 번뇌로 돌리고 산 빛 같은 마음으로 그냥 살라한다. 이름도 모를 골짜기에서 이름마저 버리고 자유롭게 살라한다. 그렇게 살 수 있을까. 그러나 그렇게 살고만 싶은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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