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시인과 노스님] 중광 스님
[젊은시인과 노스님] 중광 스님
  • 이홍섭
  • 승인 2006.09.12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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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불교의 중흥조인 경허 선사는 북녘땅으로 떠나며 제자 한암 스님에게 전별사를 남겼는데 그 시작은 다음과 같다.

나는 천성이 인간 세상에 섞여 살기를 좋아하고, 겸하여 꼬리를 진흙 가운데 끌고 다니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나는 이 구절에 매료되어 한동안 가슴에 품고 다녔다. 시끄러운 세속의 골목골목을 누비고 다닐 때에도, 적요한 산사에 머물 때에도 이 구절은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다녔다. 나는 이 단 한 구절 속에서 성聖과 속俗을 넘나드고, 미美와 추醜의 경계를 허물어 버렸던 '인간 경허'의 진면목을 느껴 볼 수 있었다.

'걸레스님'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중광 스님의 행적과 그림세계도 위의 구절에서 멀지 않다. 중광 스님의 행적과 그림은 성과 속, 미와 추의 경계를 일순간에 허물어 버린다. 그가 스님으로서, 화가로서 보여준 행적과 그림세계의 진면목은 단박에 이 경계를 무너뜨리는 파격과 힘, 그리고 그 파격 속에 숨어있는 자유, 혹은 해탈에의 열망에 있다.

내가 중광 스님을 처음 뵌 것은 고향 강릉에서이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바다로 이어진 남대천 강둑을 혼자 거닐고 있었는데 저 앞에서 괴이한 옷을 차려입은 한 사람이 걸어오고 있었다. 위에는 승복 비슷한 것을, 아래에는 한국전쟁때 중공군이나 입었을 법한 군복바지를 입은 그는 그 괴이한 복장으로 너무나 씩씩하게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그분이 바람처럼 내 곁을 지나간 뒤 묘하게도 금세 '중광스님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당시 화가 지망생이었던 나는 어디선가 중광 스님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다시 생각하면 허허롭던 그 강둑에서 단박에 중광 스님을 알아본 것은 훗날 스님을 다시 뵙게 될 인연을 예비해 둔 것이 아닌가 하여 세상살이의 인연에 대해 다시금 곱씹어 보게 된다.

그 인연의 골이 깊어진 곳은 내설악 백담사에서였다. 당시 나는 비승비속의 몸으로 무산 오현 스님을 시봉하는 지복을 누리며, 백담계곡의 물소리에 젖어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초겨울날 밤, 오현스님이 머무시는 만해당에서 귀를 쫑긋거리며 스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데 문밖에서 '형님, 저 왔습니다'라는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더니 이내 문이 벌컥 열리며, 찬바람과 함께 웬 거구의 스님 한 분이 불쑥 들어왔다. 그 모습은 마치 겨울 야산을 뛰어다닌 멧돼지 한 마리가 막 산막을 열어젖히고 들어오는 것 같았다.

그 이후의 풍경은 지금 생각해 보아도 마냥 웃음이 나올 정도로 유쾌하고, 아름답게 펼쳐졌다. 오현 스님과 중광 스님은 문밖에서 초겨울의 칼바람이 씽씽대며 날아가는 것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서로 형님, 아우 하며 밤새 이야기꽃을 피웠다. 중광 스님은 마냥 어린애처럼 그동안 겪은 일들이며 자랑거리를 늘어놓았고, 오현 스님은 그 이야기들을 빠짐없이 받아 주며 이따금 고개를 끄덕여 중광 스님을 더욱 신나게 만들어 주셨다. 나는 두 분의 그 어린애 같은 모습에 도취되어 '참 아름다운 만남'이라는 감탄을 절로 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두 해가 흘러간 어느 날, 중광 스님은 오랜 방랑을 접으시고 백담사로 들어오셨다. 오현 스님은 중광 스님을 위해 정성을 기울여 작업실과 전시관을 마련해 주셨다. 당시 오현 스님은 전시관에 너와지붕을 올리셨는데 마음에 드실 때까지 고치기를 거듭하셨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사찰 내에 자리잡은 그림전시관 '농암실'은 이러한 정성 속에서 탄생할 수 이썽ㅆ다.

마치 상처 입은 짐승처럼 기력이 쇠하신 채 백담사에 들어오신 중광 스님은 경내에 마련된 작업실과 전시실, 그리고 내설악을 거닐며 점차 기력을 회복하셨다. 나는 스님을 따라 경내를 거닐기도 하고, 오솔길을 오르내릭도 하면서 스님이 얼른 쾌차하시기를 마음속으로 빌었다. 스님은 그 아픈 와중에도 어쩌다 아는 분이라도 만나면 두 손을 번쩍 들어 '반짝반짝 작은 별'을 그려 보이곤 했다. 그러면 벌건 대낮인데도 금세 별들이 반짝거릴 것만 같았다.

한때 소설가 김성동 선생이 백담사에 머문 적이 있었다. 승려 생활을 했던 선생은 외로운 새처럼 경내를 낮게 비행하곤 했는데 어느 날 중광 스님과 마주쳤다. 불타오르는 예술혼을 어쩌지 못해 승가와 속가를 오르내린 두 분은 만나자마자 혈육을 만난 듯 반가워했다. 중광 스님과 김성동 선생(법명 정각)은 카랑카랑했던 수좌 시절 마곡사에서 마주친 적이 있었다. 김성동 선생은 그때 중광 스님이 옷깃만 스쳐도 살이 베일 정도로 성성한 수좌였다고 회고했고, 중광 스님도 당시를 떠올리며 어린애처럼 즐거워하셨다. 나는 그제서야 이 분들이 왜 불가를 떠나지 못하는 영원한 불제자인가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중광 스님은 이따금 내가 찾아가면 그림보다 시를 먼저 보여 주셨다. 스님을 붓을 놓고 있을 때면 늘 무엇인가를 끄적이고 계셨는데 대부분이 시였다. 지난 시절 스님이 쓴 대부분의 시들은 스님이 이따금 '저지르는' 퍼포먼스처럼 산으로, 들로, 자갈밭으로 마구 달음박치는 일종의 '퍼포먼스 시'였다. 그러나 그 중에는 극히 정련된 시들도 섞여 있어 나를 깜짝 놀래키곤 했다. 1979년 <<현대시학>>에 실린 작품은 특히 그러했다.

하늘에 초가삼간 묻어놓고
저녁노을에 까마귀
까옥까옥
- 시 <<삼십원>> 전문

처음 발표된 지 10년이 훨씬 지나 만난 이 작품은 제목, 내용, 시적 구정이 특이하게 조화를 이루는 수작이다. 나는 이 작품을 음미하면서 중광 스님의 또 다른 면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작품 속에는 천성적인 외로움, 떠돌이 의식, 비극적인 세계관, 음산한 광기, 그로테스크, 도저한 역설과 해학 등이 한꺼번에 혀를 내밀고 있다. 이 작품 속에 잠재되어 있는 이러한 성향들은 이후 스님의 그림세계에서 파도치듯 나타나곤 했다.

다음의 시는 중광 스님이 진정 가고 싶어한 고향이 어디인지, 그의 내면에 백담사가 어떻게 자리잡고 있는지를 잘 보여 주는 작품이다.

내가 마지막 돌아갈 고향이로다.
일 년에 한 번쯤 못 보면 몸살이 난다.
내설악 백담사 앞 시냇물 흐르는
물소리 조롱조롱.
물 속의 자갈들 옥수섬섬, 섬섬옥수.
참 아름다운 이 땅에서 표할 말이 없어서
말을 못 하고
물이 맑다가 지쳐서 검푸르다.
검푸르다 지쳐서 설악산을 돌아와서
다시 너무 차다.
무더운 여름날 옷을 홀랑 벗고
뛰어들어 여름날 옷을 홀랑 벗고
뛰어들어 미친 물개처럼 놀고 싶어도
끝내 죄송해서 못 들어가고
물속에서 청산 노루도 같이 놀고
산삼도 같이 놀고
백운(白雲)도 괴로운 세상 만사 물 속에
다 털털 털어 두고 살더이다
내가 마지막 돌아갈 고향이로다.
내가 마지막 돌아갈 고향이로다.
- 시 <<백담사>> 전문

중광 스님이 이처럼 마지막 돌아갈 고향으로 남겨 두었던 백담사에서 스님을 가까이 뵙게 된 것은 나에게 있어 행운이었다. 그 행운은 단순히 스님의 그림세계를 좋아해서 생겨난 것만은 아니다. 나는 스님을 가까이에서 뵈면서 승가와 속가, 성과 속, 미와 추, 그리고 예술가의 삶 등에 대해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생각의 시간들이 나에게는 행운이 되고, 힘이 되었다. 나는 그 시간들을 준 스님에게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 중광스님은 2002년 입적하셨다. 삼가 극락왕생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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