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인과 노스님] 내가 좋아하는 깨침의 말들
[젊은 시인과 노스님] 내가 좋아하는 깨침의 말들
  • 이홍섭
  • 승인 2006.10.02 11: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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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을 보거나 선사들의 어록을 읽다 보면 가슴을 저미거나, 번개 치듯 번쩍 정신이 나게 하는 구절을 발견하곤 한다. 나는 이 구절들 때문에 억수로 술을 퍼마시기도 했고, 이 구절들을 비빌 언덕 삼아 삶의 곤궁함을 훌쩍 뛰어넘기도 했다. 때로는 한없이 비정하고, 때로는 따뜻하게 삶을 감싸는 이 깨침의 말들을 모아보니 언뜻 지나온 삶의 한 자락이 잡힐 듯하다.

- 질질 땅에 끌려 다니지 말라.

임제 선사의 말이다. 이 말은 한문으로 읽어야 제 맛이 난다. 불수위위지不隨萎萎地. 불수不隨는 끌려 다니지 말라는 뜻이고, 위위萎萎는 시들시들한, 즉 생명이 없는 모습을 일컫는다. 지地는 우리가 밟고 다니는 대지란 뜻 외에 어떤 경지, 상황, 사태, 대상 등등을 가리킬 때 쓰이는 말이다. 즉 산송장처럼 살지 말라는 뜻이다.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라(隨處作主)는 가르침이다.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이 말을 얼마나 되새겼던가.

- 변소에 단청하지 말라.

원래 한문 구절은 '여측옥如厠屋 도단확塗丹확'이다. '변소에 단청하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선림보훈>>에 나오는 말이다. 서산대사의 <<선가귀감>>에도 수록되어 있다. 공부가 도를 이루기 전에 남에게 자랑하거나 한갖 말재주로써 서로 이기려 하는 어리석음을 경계할 때 쓰이는 비유이다. 공부 좀 했다고 남을 무시하는 사람을 만나거나, 내 입에서 폼 잡는 말이 튀어나오려 할 때 늘 이 경구를 떠올린다. '너는 지금 변소에 단청중!'

- 표주박 한 개, 누더기 한 벌이면 어딜 가나 거침이 없다.

원래 한문 구절은 '일표일납一瓢一衲 여박무루旅泊無累'로 <<선가귀감>>에 나오는 표현이다. 마음을 단정히 하여 순박하고 올바른 것을 근본으로 삼으면 이러한 경지에 오른다는 것이다. 이 구절을 떠오리면 세상사 인연을 놓고 어디론가 훌훌 떠나고 싶어진다. '표주박 한개, 누더기 한 벌'의 삶은 얼마나 거침없는 삶인가.

- 성성력력(惺惺歷歷) 밀밀면면(密密綿綿)하라

'오직 또렷이 깨어 역력하고, 은밀하게 끊임없이 하여야 한다'는 뜻으로 역시 <<선가귀감>>에 나온다. 공부工夫는 여조현지법如調絃之法처럼 해야 한다는 표현 다음에 나오는 말로 공부를 거문고 줄 고르듯이 팽팽하고 느슨한 정도가 알맞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너무 조급하거나, 그렇다고 반대로 너무 안일하게 하면 공부를 그르치게 된다는 경책이다. 선수행 뿐만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공부에 해당하는 말이리라.

- 닭이 알을 품듯 하고, 고양이가 쥐를 잡을 때와 같이 하고, 주린 사람이 밥 생각하듯 하며, 목마른 사람이 물 생각하듯 하고, 애기가 엄마 생각하듯 해야 한다.

공안(화두)를 참구할 때 이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해야 한다는 비유로 사용된다. 지극한 정성과 털이 곤두서는 집중, 그리고 애간장이 녹는 간절함이 이 구절 속에 다 들어 있다. 나는 시를 쓸 때나 연애를 할 때, 그리고 공부를 할 때도 늘 이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우스갯소리로 '삼 년 된 과부가 남자를 그리워하듯'이라는 비유를 덧붙이기도 한다. 언젠가 내 경험에서 우러나온 비유를 하나 덧붙이리라.

-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숫타니파타>>에 나오는 말이다. 어느 작가가 소설의 제목으로 삼는 바람에 조금 김이 빠지고 말았지만 언제 들어도 가슴을 저미는 말이다. <<숫파니파타>>에는 이 비유가 여러 구절을 통해 등장하는데, 내가 제일 좋아하는 구절은 다음과 같은 부분이다.
"숲 속의 사슴이 사슬 없이 자유롭게 먹이를 찾아 여기저기 다니듯이 지혜로운 이여, 독립과 자유를 찾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살아 있을 때는 삶, 이 자체가 되어 살아가야 한다. 죽을 때는 죽음, 그 자체가 되어 죽어야 한다.

<<벽암록>>에 나오는 말이다. 더하고 뺄 말이 없다. 그저 열심히 사는 수 밖에.

- 사람에게는 네 가지 고독함이 있나니, 태어날 때는 혼자서 오고, 죽을 때도 혼자서 가며, 괴로움도 혼자서 받고, 윤회의 길도 혼자서 가는 것이니라.

<<근본설일체유부 비나야잡사>>에 나오는 말이다. 슬프지만 어찌겠는가. 이 세상에 올 때도 혼자서 왔고, 죽을 때도, 윤회의 길을 갈 때도 혼자서 가는 것이다. 외할머니를 화장할 때 어머니는 얼마 뒤 불 속으로 들어갈 외할머니의 관을 잡고 조용하게, 그러나 참으로 서럽게 우셨다. 일찍이 외할아버지도 가시고, 외삼촌도 가시고, 마지막 남은 외할머니도 가신 것이다. 홀로 가신 외할머니도, 홀로 남으신 어머니도 모두모두 고독했다.

- 밥을 먹을 때는 몸과 마음 전체가 밥이 되어 밥을 먹어라.

<<십이시법어>>에 나오는 말이다. 선사들은 늘 강조한다. 밥 먹을 때 밥 먹고, 공부할 때 공부하고, 쉴 때 쉬라고. 매 순간을 지극 정성으로 최선을 다하라는 뜻이다. 말이 쉽지 행동으로 옮기기는 참으로 어렵다. 우리네 삶이라는 게 사랑하는 사람을 옆에 두고도 다른 여자에게 곁눈질하는 짓의 연속이 아니던가. 밥 먹을 때는 밥 먹는 것에 최선을 다하자. 머리띠라도 두르고 나 자신에게 외치고 싶은 말이다.

- 눈을 뜨자. 아니, 누가 내 눈을 감겼단 말인가.

<<아함경>>에 나오는 말이다. 이어서 다음 구절로 연결된다. "사물을 내 스스로 보지 못하고 남의 눈으로 보아 온 그릇된 버릇에서 벗어나야 한다. 활짝 열린 눈에는 한 티끌도 없다. 내 눈이 열려야 세상을 받아들일 수 있다." 눈을 떠야 하는데 자꾸만 눈이 감긴다. 그게 편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것은 눈꺼풀이다.

-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

<<보왕삼매론>>에 나오는 말이다. 이어서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나니, 병고病苦로써 양약을 삼으라"고 말한다. 병에서 벗어나려 하면 할수록 병은 더 깊이 몸을 파고든다. 병을 잘 모셔서 약으로 삼을 일이다.

- 일체 중생이 병들었으므로 나도 병들었거니와, 만약 일체 중생이 병이 나으면 나의 병도 나을 것입니다.

유마거사가 한 말이다. 나는 이 말을 통해 '대자대비大慈大悲'니 '보살도'니 하는 불교사상의 정수를 가슴으로 느낀다. 더 나아가 시란, 시인이란 이 경지로 나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이 세상이 병들었는가, 아니면 내가 병들었는가. 잇 세상의 병은 다 나았는가, 아니면 내가 병이 다 나은 척 하고 있는 것인가, 물어 보고 또 물어볼 일이다.

- 가도가도 본래의 그 자리요, 왔다 왔다 해도 출발한 그 자리다.

의상대사의 말이다. 한자음대로 읽으면 묘한 울림이 난다. 행행본처行行本處 지지발처至至發處라. 깨달음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뭐라 단정지을 수 없지만, 이 구절 속에는 끊임없이 자기귀환自己歸還하라고 등 떠미는 자가 숨어 있는 듯하다. 환장할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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