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선지식] 보조가풍 계승과 무의 사상
[한국의 선지식] 보조가풍 계승과 무의 사상
  • 이기창
  • 승인 2006.10.25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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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송광에 든지 10년인데 / 대대로 국사의 품안에서 편히 살아왔어라/
무엇 때문에 이 조계산을 떠나는가/ 인천(人天)의 복밭을 갈고자 함이라네.’

광복 이듬해 효봉이 송광사를 떠나면서 읊은 게송이다. 효봉은 이 때 합천 해인사 가야총림의 조실로 위촉 받았다. 효봉의 송광사 주석 10년은 그의 행장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다.

효봉은 이 기간에 보조(普照)의 선풍 계승과 더불어 자신의 무(無)의 사상을 체계화했다. 보조는 고려시대 송광사에서 불교의 타락상을 일신하고 독창적인 한국선을 일으켰다.

보조가 중국선 극복의 방편으로 내세운 구도관은 정혜쌍수였다. 한국선은 보조이후 비로소 독특한 수행공간을 확보하게 된다.

효봉은 자신의 오도적 삶과 수행을 보조에 접목시켰다. “계(戒)는 집을 지을 터와 같다. 정(定)은 그 재료이고 혜는 그 기술과 같으니라. 재료가 아무리 좋아도 터가 시원찮으면 집을 세울 수 없고, 또 기술이 없으면 터와 재료도 쓸모가 없다. 계가 없이 혜(慧) 만 닦으면 건혜(乾慧)이므로 생사을 벗어나지 못하니라.” 효봉의 구도관을 압축한 법문이다.

효봉의 깨달음의 세계에서는 무의 사상이 광활하게 펼쳐진다. 평생 무자 화두를 놓지 않았던 그는 무의 송곳을 갈고 닦아 마음의 상(相)을 뚫고 해탈의 대자유를 얻었다. 효봉은 특히 수좌들을 상대로 한 상당법어에서 수행의 주체인 마음, 더 나아가 무심(無心)을 유난히 강조했다.

“부처란 특별한 것이 아니라 바로 이 마음이로다. 마음이 인연을 따라 습관이 성품을 이루기 때문에 선하고 악함과, 지혜롭고 어리석음의 차별이 생기니라. 마치 여울물이 동쪽을 터 놓으면 동쪽으로 흐르고 서쪽을 터 놓으면 서쪽으로 흐르는 것과 같다.”

“마음과 짝하지 말라. 무심하면 마음이 저절로 편안하니라. 만일 마음과 짝하게 되면 움쩍만해도 그 마음에 속느니라.” 그의 구경설법(究竟說法ㆍ깨달음의 법문)은 이처럼 무심의 세계로 향하고 있다.

무심은 분별이 끊어진, 깨달음 그 자체이다. 흔히 사람들은 무심을 사심(死心)과 혼동한다. 그러나 죽은 마음에서 지혜의 꽃이 피어날 리는 없다. 효봉이 무의 사상을 전개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효봉의 수행가풍은 구산 석정 법정 법흥 보성 현호 등이 이어가고 있다.

한 때 효봉문하에서 수행을 했던 시인 고은씨는 “나같이 풀잎의 신세에 지나지 않는 사람에게도 폐허의 젊은 날 그런 스승을 만난 복으로서 내 운명의 궁핍을 메울 수 있었다”고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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