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남은 총무원장후보 원행 스님 욕망은"
"하나 남은 총무원장후보 원행 스님 욕망은"
  • 강행원
  • 승인 2018.09.27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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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분열 투쟁에 휩싸인 조계종단의 진면목은 어디에
대한불교조계종 제36대 총무원장 후보 넷 가운데 세 후보가 동반 사퇴했다. 특정세력의 입김 때문에 선거에서 종도들의 의견이 정상적으로 반영될 수 없다고 판단한 까닭이다. 한국화가로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인 강행원 작가가 기고 글을 보내왔다.

강행원 작가는 개인전 19회, 국제전 및 그룹전 400여 회, 민족미술협의회 대표와 문화예술 자정 NGO 대표, 한국불교미술인연합회 대표를 역임했다. 현재 동아시아 인문화중심 미학포럼 대표이다.

분열 투쟁에 휩싸인 조계종단의 진면목은 어디에
-결코 오역죄 보다 가볍지 않는 허물을 짓는 기득권승들의 행렬-

1.계(戒)를 지키고도 자유로운 것이 참 자유이다.

세상의 모든 옳고 그른 일로 하여금 갈등과 반목으로 다툼이 일어난 전쟁, 그 현장보다 비참한 불행은 없을 것이다. 집단적인 이데올로기, 사사로운 이권으로 결부된 싸움도 모두 다 마찬가지 이다. 하지만 우리인류의 삶은 그 곳이 어디라도 갈등과 반목의 모순을 짊어진 고통이 모든 곳에 두루 잠재하기 마련이다. 붓다의 가르침은 수행을 통해 이러한 모순을 잠재우고 상락아정(常樂我淨=<열반경>에나오는 불교의 이상세계인 열반사덕)한 세계를 얻고자 하는데 있다.

그러나 붓다의 가르침을 이어온 한국의 승가집단인 조계종단의 스님들이 사부대중과의 불 화합으로 반목과 갈등의 구렁에서 오랜 세월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 한국불교의 통합조계종단 56년사를 돌아본 결과 13대 종정, 16대 종회, 35대의 총무원장이 선출되어온 동안 단 한 번도 이판승과 사판승의 정상적인 승가의 도(道)가 지켜진 바가 없다. 교세가 확장 되면 될수록 사부대중과의 반목과 갈등은 심화되어 왔다. 종정과 의회, 총무원장이 선출된 횟수 년대가 일정치 못한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35대총무원장이 도중하차하고 또 36대 총무원장이 될 간선적폐가 심히 우려된다.
 
평화와 화합의 본디에서 출발한 평등무차별한 붓다의 사상은 인류가 지켜야 할 최고 가치이념의 당위이다 인류문화사상사에서 이보다 값진 것은 없기 때문이다. 붓다의 사상은 인간만이 아니라 삼라만상 그 일체의 생명에 대하여 유정 무정을 막론하고 모든 생명자체가 차별이 없음을 교설 하였다. 다시 말하면 우주가 하나의 대 생명임을 천명한 것이다. 여기에 더불어 살아갈 출가 사문들께는 비구250계 비구니 348계가 주어졌다. 그러나 사미(니)나 사부대중이 더불어 반드시 지켜야 할 기본적인 오계, 십계 등에서는 첫 번째로 드러난 계명이 불살생이다. 모든 생명에 대한 연민의 마음을 일으켜 죽이지 말 것을 지키게 한 것이다.

오계 만의 지계를 순서대로 나열한 내용은 1.불살생(不殺生=생명을 죽이지 말지어다.) 2,불투도(不偸盜=남이 주지 않는 것을 훔치지 말지어다.) 3.불사음(不邪婬=삿된 음행, 간음하지 말지어다.) 4.불망어(不妄語=거짓말, 속이지 말지어다.) 5.불음주(不飮酒=정신을 흐리게 하는 술이나 약물을 먹지 말지어다.) 물론 불교의 기본적인 이 다섯 가지 지계는 불교도가 아니더라도 세상을 사는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지켜야 할 자리이타(自利利他)로서 나와 남이 함께 행복하게 사는데 있어서 s[세간의 법보다 우선한 기본적인 사회의 안전망이기도 한 것이다. 이와 같이 붓다의 가르침은 모순이 없는 세상을 구현하는 대법왕이기도 하다.

이러한 붓다의 찬연한 법은 팔만사천을 헤아리는 가르침을 통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붓다의 법을 구성하는 '불(佛)•법(法)•승(僧)'이라는 삼보의 진면목을 보면 ‘佛’은 교주인 붓다를 지칭한 말이며, ‘法’은 붓다께서 설한 교리이다. 동시에 붓다 후대의 정각을 이룬 조사나 학자들의 교의까지 포함된다. ‘僧’은 붓다가 설립한 교단으로써 교리를 전파할 승려집단의 승가를 의미한다. 또한 여기서의 승은 집단이 되어 살아가야 할 수행자들에게 절대 필요한 덕목은 화합이었다. 그래서 승은 화합을 상징하는 큰 의의를 지니고 있다. 

종단을 장악해온 역대의 기득권스님들이 불협화음을 화쟁으로 승화해내지 못한 독선은 화합을 깬 붓다의 법에 피를 흘리게 하는 큰 허물이 아닐 수 없다. 불교신앙의 지주인 삼보가 지진을 만나고 있다. 원인은 종도들이 삼보에의 간절한 귀의, 그대로 '계(戒)•정(定)•혜(慧)' 삼학의 동력을 이끄는 통로가 이 큰 허물에 가로막힌 탓이다. 스님 자신들이 더 더욱 삼학에 접근할 발원을 놓칠 수 없는 원행임에도 불구하고 세욕의 그림자 허상에 가린 무명한 눈이 안타깝다. 문제는 삼보의 승(僧)은 곧 승단을 의미한 것이지만, 자신들의 우월한 신분 계급인양 스님들이 아무나 오체투지의 삼배를 받게 된데서 종도들을 하시하는 아상이 곧추세워진 결과이다. 
                               
붓다의 평등무차별한 권리가 가승들의 권술에 짓밟힌 종도들의 신심은 진흙탕에 떨어져 교세를 위축시켰다. 조선시대에는 인간으로서는 가장 천민으로 살았던 스님들이 오늘 이 시대에서는 숯물 옷만 두르면 모두 큰스님 대우를 받고 있다. 또한 머뭇거리면 정좌하고 앉아서 삼배를 요구한다. 난처한 경우가 없지 않다. 이는 종도와 스님간의 계급적인 의무로 생각하는 잘 못된 관습이다. 여기서부터 그 교만한 세속적인 삼독오욕이 더욱 기승하여 부정과 권모와 대립으로 교단이 정치화되어 이권의 난장으로 변질 되었다. 종도들은 붓다의 법을 흠모하여 승단운영을 돕는 고마운 도반이다. 하시나 부림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 왜곡하지 말았으면 한다.

사문이 되어 승가를 지탱하는 것은 종도들께 곧추세워 보여 온 아상이 아니다.  지엄한 지계로부터 삼학을 얻은 환희의 길이다. 또한 삼학은 그대로 지계로부터 자유로운 삶이다. 다시 말하면 자유로운 삶은 지계를 어기거나 버리고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지계를 지키고도 자유로운 삶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동시에 법좌에 오르는 사다리이기도 하다. 지금 교단을 움직이는 가승들께는 가엽게도 삼학도가 있을 리가 없다. 붓다의 진정한 도는 척하는 행색의 모양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가 누구라도 법을 회통하는 자가 있거든 법상에 모시고 존경의 예를 갖추어 설법을 청하는 것이 불가의 본래 법도이다.

2. 수행자의 진정한 양심으로 돌아가자.

출가자의 최종 목적은 성불에 있다. 쉽게 말하면 성자가 되는 길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성불을 목적으로 발심한 출가자는 드물거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인연에 의해 출가를 했더라도 스님이 되기까지는 사미(니) 십계와 비구(니)가 되는 구족계(具足戒)를 거처야 승단의 성원이 된다. 이들은 승가의 일원이 되기까지 앞에서 말한 비구(니)가 지켜야할 250~348개의 계목은 성불의 목적에 해당하는 성현(보살•성문•연각•불)에 이르게 하는 법도이다. 물론 현대 과학문명의 시대적인 문화적 변화가 장애요인이 될 수는 있다. 그렇지만 진리의 빛은 과학문명을 관통하고 있다.

팔만장경을 헤아리는 붓다의 가르침 그 각각의 경전 어디에도 비유가 다를 뿐, 12인연의 근원인 갈애를 벗어나야 탐•진•치 삼독오욕이 쉬게 된다는 뜻은 한마디로 경전마다 설파한 세뇌의 수준이다. 세뇌된 이데올로기는 육신이 부서저도 그 정신은 변질되지 않는다. 지계는 곧 이러한 근본욕을 쉬게 하는 초석이며, 결국 번뇌까지도 쉬게 하여 상락아정한 길로 인도하는 탁마이다. 그러나 근기에 따라서 행이 미치지 못하는 경우에는 지계를 갖는 그 마음에 선근의 종자라도 심어지기 마련이다. 사문의 본분을 어기고 출세간의 욕망을 법의와 페이퍼(papers)로 너줄하게 단장한 권술무리들이 종단역사 반세기를 농단하고도 교권수호의 명분을 든 기치는 그대로 훼불이며 교세가 쇠멸하는 이유이다.
 
종교의 가장 숭고한 가치는 성자나 현자의 삶에 얼마나 접근 하느냐이다. 특히 출가자들은 이에 대한 가치관의 개념정립이 절대적이어야 한다. 교단을 지탱하는 승가의 도가 세속인과 다른 점은 성현을 향한 개념정립과 지엄한 지계이다. 하지만 스님들이라고 해서 절집 살림을 사는 일이 세속인들과 다를 리는 없다. 생산적인 특업이 없는 사찰살림은 교도들의 보시와 모연으로 교단을 운영하고 불사를 이어가기 마련이다. 해서 승가를 지키는 고마운 공양의식에 대한 감사의 게송이 오관게(五觀偈)이다. 다섯 문장의 본문 내용은,

첫째, 계공다소량피래처 (計功多少量彼來處=이 음식이 여기까지 오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수고로움이 모여 있는가.) 둘째, 촌기덕행전결응공(村己德行全缺應供=내가 과연 이 공양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 셋째, 방심이과탐등위종 (防心離過貪等爲宗=허물을 짓지 않으려면 과욕을 끊어야 한다.) 넷째,  정사양약위요형고 (正思良藥爲療形枯=이 음식을 약으로 삼아 몸이 마르지 않을 정도로 절재 해야 한다.) 다섯째, 위성도업응수차식 (爲成道業膺受此食=이 음식을 받는 것은 오직 육신을 부지하여 도업을 이루기 위함이다.) 이상의 게송 내용은 수행자들이 도업에 오를 지계와도 같은 촌각도 잊어서는 안 될 고마움을 늘 관하는 도업성취를 위한 서약이다.

수행자들은 두 번째 항목에서 말하는 공양 받을 자격을 갖추고 있는가를 헤아려 봐야한다. 문제는 공양 받을 자격이 없는 스님들이 작지 않을 것이다. 법의를 입었다고 모두 진정한 스님일 수가 없다. 더욱 가관인 것은 요즈음 그 숯물 옷에 가사만 두르면 모두가 큰스님이다. 당(唐)대의 고승인 백장회해선사의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하루일하지 않으면 하루먹지 않는다.)이라는 청규는 출가자의 할 일은 오직 수행을 게을리 말라는 절규를 자신의 몸으로 보인 설법이다. 선사의 가르침은 시대적인 문화는 달라도 수행자의 본분은 조금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기득권 스님들이 사는 방식은 종단소임 말고도 말로는 토굴이지만 고대광실이 무색한 욕망의 불집에서 무애의 삶을 길이고 있다.

한국불교 1700년사에서 오늘에 이른 조계종단의 반세기는 기득권 승들의 낙원이었으며, 역으로는 가장 타락한 일로였다. 1962년 출범이후 징계 멸빈자가 230명이라고 불교닷컴은 밝히고 있다. 이는 종단이 얼마나 부패했는가를 드러낸 명증한 증거이다. 그 이유는 밝히지 않았지만 지금껏 이 부패의 기득권에 반기를 든 사문들이 포함된 것이라면, 부패의 원인은 모두 종단을 장악해온 기득권 세력들이 음모한 부패일 것이다. 심지어는 직무비위 등 53명에 이른 탈종 개종자들까지도 끊임없는 불 화합과 부패한 비리들로부터 종단을 장악하고 있는 세력들에 대한 염증과 반감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붓다께서는 “이 세상에 탐욕처럼 ‘건너기 어려운’ 강은 없다”고 설하였다. 아무리 강조해도 해도 지나치지 않는 교설이 아닐 수 없다. 종단이 조용한 때가 별로 없었다. 권력에 편승한 무리들이 욕망으로 얽힌 담합의 강에서 노니는 아우성일 터이다. 율장에 의하면, 승가는 본래 대중 소임자 한명을 선임하는데도 승가구성원 전원의 뜻을 물었다. 후보자에 대한 승가구성원 전원이 그 소임에 적임자라고 동의 해야만 소임을 살 수 있었다. 부적절한 행동이 있었거나 대중 스님들의 신망을 잃은 스님은 소임자가 될 수 없다. 이와 같이 대중공사를 통해 적임자를 선출하는 방식이 승가 본래의 기본 원칙이다.

조계종단은 청정승가를 운운하며 계속 새로워지겠다는 개혁과 쇄신을 외쳐왔지만 지금껏 망언과 타락으로 얼룩진 모습 말고는 없었다. 율장에도 미치지 못한 종헌 종법의 선거법은 전두환 독재의 체육관 선거를 선호한 기득권자들의 여의주와도 같은 큰 무기였다. 총무원장을 뽑는 간선제는 반세기의 적폐임을 이제는 인정해야 할 것이다. 교권수호를 내세워 선출 일정을 당긴것부터 무리수를 두고 있다. 역대 총무원장들이 연루된 한결같은 반세기 적폐를 보고도 그 자리를 넘보고 선거인단에 뛰어든 내분 스님들 중 혜총·정우·일면 스님 세분이 이제야 들러리임을 알고 동반사퇴를 결행한 것은 다행이 아닐 수 없다. 남아있는 원행 스님 한분의 욕망을 지켜보고자 한다.
 
종회의원과 교구본사에서 지명한 구성원만의 적폐로 뽑힌 총무원장은 그가 성현이라도 사부대중의 불 화합을 더 큰 불집으로 만들 뿐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당장 그 음흉한 무기를 버리고 직선제를 수용하는 것만이 종단을 살리는 길이다. 평등한 붓다의 도를 거역 하는 것은 붓다의 법신에 피를 강제하는 오역죄를 범하는 훼불이며 쇠멸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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