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뙤약볕에서 우리는 뭘했나"
"지난 여름 뙤약볕에서 우리는 뭘했나"
  • 이혜조
  • 승인 2008.11.19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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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총무원장 스님 "없던 일로.." 발언 불자들 납득 못해

덮어두고, 이해하고, 자비라는 이름으로 용서하고...언제부터인가 불교는 그랬다.

국고를 탕진해도, 삼보정재를 횡령해도, 청정비구 종단에 은처승이 득실거려도... 덮고 이해하고 용서했다. 그래서 문제다.

경향신문 김택근 논설위원은 도법 스님의 순례 이야기를 담은 <사람의 길>이라는 책에서 '10.27법난'을 언급했다. 그는 "총무원장이 끌려갔고, 돈을 숨겼나 해서 부처님이 더러운 손들에게 수색당했다. 계엄군들은 다짜고짜 승려들을 때렸다. 승려들은 심지어 바지를 내리고 성기를 내보이는 수모까지 당했다. 노승들은 수치심에 눈물을 흘렸다. 부처님을 불렀지만 응답이 없었다"고 서술했다.

그는 이어 "한국 불교는 숨 한번 제대로 쉬지 못했다. 권력의 눈치만 보았다. 이때 한국 불교가 죽었어야 했다. 그리고 다시 태어나야 했다. 그러나 적당히 타협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그는 1994년과 1998년의 종단 분규를 바라보며 "종단 내 파벌과 부패, 야합과 폭력 등 온갖 치부를 다 드러냈다. 언젠가는 터질 수밖에 없는 것들이었다. 그것은 불교가 죽을 때 죽지 않았기 때문이다"고 했다.

총무원장 지관 스님이 어청수 경찰청장에게 '다 없던 일로 하자'고 해서 불교계가 뒤숭숭하다. 수행 한 번 해본 적 없는 술과 담배, 온갖 욕망에 찌든 필자로서는 단박에 '또 덮고 넘어가자는 거군'이라고 해석된다.

이미령씨는 최근 "그러면 그 돌아버릴 정도로 무덥던 날/ 시청 앞 광장을 빼곡하게 채운 사람들은 대체 그 날 무슨 짓을 하였다는 말인가./시골에서 올라온 할머니 아줌마 보살들은/ 앞으로 '없을 일'에 무슨 생각으로 시청 앞 광장에서 햇볕을 온통 쬐며 앉아있었단 말인가./승가대학의 학인스님들은 뭣하러 종로 거리를 가로막고 행진을 했단 말인가./아니,/나는 그 날 에어컨 빵빵하게 돌아가는 거리의 멋진 커피숍에 들어 앉아/수다라도 떨면서 히죽거릴 일이지/대체 무슨 생각에 그 시청 앞 광장을 돌아다니며/불자들과 불자 아닌 사람들의 표정을 읽고 구호를 들었단 말인가./그리고 집에 돌아와서는 대체 범불교도 대회를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 고민하다가/밤새 원고를 작성해서 해인지(紙)에 보냈단 말인가./난 그럴 시간에 방바닥에 엎드려 잡지라도 뒤적이는 것이 차라리 낫지 않았을까."라는 글을 썼다.

그는 "결국 없던 걸로 하자는 총무원장 스님의 그 너그러운 말씀!!!/한 가지만 여쭙겠다./없던 걸로 한다면/그렇다면/지금까지 벌어졌던 그 일은 정말로 없는 일인가? 아닌 일인가?/그렇다면/없던 걸로 하자시는 데에 두 말 하지 않고 따르겠다."고 했다.

향산거사는 자신의 블로그(http://blog.naver.com/lestofilos)를 통해 지관 스님이 한 '수평불어, 수평불류'라는 말에 대해 "나는 총무원장이 썼다던 그 말을 이렇게 바꾸어 쓰고 싶다. "人平不語, 卽君專而民甚苦 水平不流, 卽其腐而不生命”"라고 했다.

"아니면 정말로 ‘인평불어(人平不語), 수평불류(水平不流)’하여 ‘국민들이 고통을 겪고 물이 아무런 생명도 살리지 못하는 세상’을 바라는 것인가?"라고 쓴 향산거사는 "사회에 ‘소금’이 되고 ‘목탁’이 되어야 할 분들이 이제 억지로 사람들을 이런 식으로 웃기는 일은 더 이상 하지 말았으면 고맙겠다"고 했다. 이미령씨의 문제제기에 화답하는 일종의 댓글이다.

종교자유정책연구원 박광서 공동대표는 19일 향산거사의 글에 대해 다시 지인들에게 이메일 형식을 빌어 화답했다.

박 대표는 "아무것도 얻어 낸 것 없이 스스로 지쳐 물러서려면 아예 시작이나 말지, 그렇게 다 뒤집어 놓고 혼자 "없던 일로..." 불교계를 밀어주려던 정치권에서도 답답하고 서운한 모양입니다. 몇 년, 아니 임기까지만이라도 긴장 관계를 유지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는데, 입법 분위기라도 유지했으면 하구요. 종단의 지도자들에 대한 신뢰가 또 한 번 흔들리는군요."라고 메일에 썼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자행된 일련의 사건들은 종교편향, 종교차별만이라서 불교계가 저항했던 것은 아니다. 공공의 영역에서 헌법에 명시된 종교의 자유를 잇따라 위배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헌법을 유린한 것이다. 기독교와의 싸움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근간인 헌법을 바로 세우자는 뜻이라고 속인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뙤약볕에서 외치고, 없는 돈에 호외 수만 부씩 만들어 뿌리고, 특별취재팀 꾸려 정부전자지도를 다 뒤지고, 서울시 교육감이 평일 예배하거나 복지시설 유아 카드에 세례명을 기입한 사실을 밝히고, 소송 위험을 감수하고선 지도업체와 청와대 비서관의 유착 관계를 추적취재했었다. 딱하게도 모든 게 '없던 일'로 되고 말았다. 

8.27 범불교도대회에서 내걸었던 4가지 요구사항은 단 한가지도 지켜지지 않았다. 가장 중요하다고 여긴 법제화는 시동도 걸어보지 못했다. 1,300만 명의 불자들의 외침은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스님들의 생각은 달랐나 보다.

총무원장 지관 스님과 어청수 경찰청장의 만남을 언론을 통해 접한 한 불자는 "참 지난 여름에 내가 뭔가 씌였던 모양이다"며 허탈해 한 뒤 "조계종 종헌에는 종단 구성원은 스님과 재가자라고 명시돼 있다. 그들끼리 결정한 것을 두고 불자들은 '이명박은 헌번 위반, 스님들은 종헌 위반'이라고 수근댄다"고 했다.

국고를 탕진해도, 삼보정재를 횡령해도, 청정비구 종단에 은처승이 득실거려도... 덮고 이해하고 용서해야 한다. '없던 일'로 하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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