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
  • 배길몽
  • 승인 2018.11.26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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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배길몽의 ‘지피지기’ 14

종교는 문화의 한 종류다. 그리고 문화는 유행처럼 사람들의 생각에 따라서 변한다. 그러므로 종교가 진실인가 아닌가는 중요하지 않으며 다만 사람들이 어떤 종교를 좋아하고 따르면 그 종교의 정당성이 성립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따르는 사람들의 숫자에 의해서 그 종교가 정통(주류)이냐 아니면 이단(비주류)이냐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정치에서도 오직 따르는 숫자에 의해서 여당과 야당으로 분류된다. 과거 왕권제도에서는 물리적인 힘이 사회를 지배했지만 현대사회에서는 숫자(유권자)가 정권을 창출한다.

형태만 다를 뿐 우주는 언제나 힘에 의해서 지배된다. 그리고 오늘날 사회를 지배하는 네트워크를 작동하는 힘은 진리보다는 대부분 돈에서 나온다. 정치도 음성적으로 돈이 지배하지만 드러내놓고 양성적으로 돈이 지배하는 시스템이 바로 자본주의 꽃인 주식회사다. 그러므로 현대사회에서는 돈이 하나님이나 부처님보다 더 존경받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은 단순히 세태를 비꼬는 말이 아니라 깊이 살펴보면 우주의 원리를 매우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말이다. 왜 조물주가 건물주보다 힘이 없는 존재인지 기독교의 모순을 통해서 이해해보자.

기독교의 핵심은 예수의 부활이다. 예수의 부활이 없었다면 기독교는 성립기반이 사라지게 되므로 사람들이 기독교를 좋아하고 따르기 어렵게 된다. 그런데 필자의 탐구에 의하면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게 예수의 부활은 예정되어 있지 않았고 그리고 실현되지도 않았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는 의학적인 증거가 성경 내부에 있으며 십자가 사건의 전후에 예수가 한 행동과 정황을 살펴봐도 예수가 부활하지 않았다는 것이 저절로 드러난다.

예수를 반역죄로 처형하는 십자가 사건의 전후에 나타난 제자들의 행동을 보면 제자들은 예수를 존경하거나 신뢰하지 않았음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예수가 자신이 붙들려갈 위험을 간파하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와 땀을 흘리며 간절히 심야기도를 하고 있을 때에도 제자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잠을 자고 있었으며, 예수가 붙들려갈 때 모두 도망쳤고(마태복음 26:56, 마가복음 14:50) 예수의 사형장에는 가보지도 않았으며 부활 예정일의 새벽에도 예수의 무덤에 가보지 않았다. 제자들은 예수가 부활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계속 믿지 않았고(마태복음 28:17, 누가복음 24:11) 심지어는 예수의 옆구리 상처를 보고서야 믿었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예수는 제자들에게 신뢰받지 못했다.

제자들은 예수가 로마로부터 이스라엘을 구할 정치지도자(구약이 예언한 메시아)가 될 것으로 생각하고 추종했는데 아무 권능도 발휘하지 못하고 무력하게 로마군에게 잡혀가는 예수에게 실망해서 제자들이 모두 흩어졌다. 왜냐하면 예수가 종교지도자라면 그가 잡혀가도 구원(부활, 영생)이 있으므로 제자들이 흩어지지 않고 기다리지만 정치지도자가 잡혀가면 모든 것이 끝이기 때문에 제자들은 오히려 허탈감 내지는 배신감마저 느끼고 흩어졌을 것이다. 정승의 개가 죽으면 문상을 가지만 정승이 죽으면 문상을 가지 않는다는 옛말을 되새겨보면 그 상황을 이해하기 쉽다.

그런데 제자들이 예수에 대한 신뢰나 믿음이 아무리 약했다고 하더라도 왜 3년 동안 예수를 추종하던 제자들이 겨우 3일에 불과한 부활의 시간을 기다리지 않고 서둘러 흩어졌을까? 그것은 예수의 부활이 실제로는 예언돼있지 않아서 제자들이 그것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3일 후에 부활할 것을 제자들이 미리 알았다면 그들은 예수에게 실망해서 도망가거나 흩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성경에는 예수의 장례를 준비했을 뿐이며 어디에도 예수가 부활할 것을 알고 그것에 대비했다는 기록이 없다.

예수가 3일 만에 부활한 것은 사형 집행자의 실수로 예수를 완전히 죽이지 않아서 다시 깨어난 사고에 불과하다. 정말로 부활이 예정돼있었다면 여인들이 예수의 무덤에 갈 때에 장례용품을 가져갈 것이 아니라 갈아입을 옷과 먹을 음식을 가지고 갔어야 했고 또 예수가 살아난 것을 보고 예정대로 부활한 것을 반가워했어야 하는데 예수를 귀신이라고 생각하고 놀라 떨며 무덤에서 도망치지(마가복음 16:8) 않았을 것이다. 여인들이 예수를 보고 도망쳤다는 것은 부활이 미리 예언되어 있지 않았으므로 죽지 않고 살아있는 예수를 사람이 아닌 귀신으로 오해했기 때문이다.

부활뿐만 아니라 십자가 사건 자체가 하나님과 합의 하에 사전에 예정돼있었던 것이 아니라 단순한 사고였다는 것이 예수의 사건 전후의 언행과 상황을 보면 쉽게 확인된다. 예를 들면, 예수가 제자들에게 자금과 무기를 소지하게 해서 자신이 로마군에게 잡혀가지 않게 보호하려 했다는 것(누가복음 22:36), 마지막 까지 ‘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피하게 해주소서!’라고 잡혀가지 않도록 기도했다는 것, 예수를 잡아갈 때에 제자들이 잠을 자거나 무방비 상태로 있었다는 것, 예수가 십자가에서 ‘아버지여 왜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원망했다는 것 등인데, 이러한 사실들은 예수가 붙잡혀 가고 싶지 않았으며 또 잡혀가는 시기도 정확히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고 그것은 십자가의 사형과 부활이 전혀 예정되어 있지 않았음을 짐작하게 한다. 예수가 잡혀갈 때는 예수를 잡으려고 하는 소문이 이미 예루살렘에 퍼져있었기 때문에(요한복음 11:57) 예수도 십자가 사건에 대해서 어느 정도 예측은 했겠지만 적어도 그것이 하나님과의 합의하에 미리 예정돼 있던 것이 전혀 아니라는 것은 너무나도 명백하다.

그리고 예수가 로마군에게 붙잡혀 간 것은 불의의 사고였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 십자가의 형벌은 사형수를 즉시 죽이는 것이 아니라 고통과 굶주림으로 여러 날에 걸쳐서 서서히 죽게 하면서 사람들이 죄를 범하지 말도록 교육하기 위한 것이다. 예수는 40일간을 금식하는 대단히 건강한 신체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십자가에서 몇 시간(제 3시부터 9시까지 약 6시간)을 고생했다고 해서 쉽게 죽을 사람이 아니며 로마 총독인 빌라도가 그것을 의심했다(마가복음 15:44). 요한복음에 따르면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리고 겨우 몇 시간 만에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으므로 죽었다고 판단되어 십자가에서 끌어내려 병사가 사망을 확인하려고 창으로 예수의 시체를 찌르니까 피가 쏟아져 나왔다고 했는데 그것은 예수가 그때까지 아직 죽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서 정말로 죽었다면 사망 원인은 오직 하나뿐이며 그것은 과다출혈인데, 많은 양의 피가 이미 몸 밖으로 나왔고, 십자가 형벌은 교수형이나 총살형처럼 죽은 직후에 검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사망하고 상당한 시간이 흐른 다음에 하므로 남은 피도 이미 굳었을 것이기 때문에 창으로 찌른다고 멀리서 눈에 띌 만큼 많은 피가 나올 수 없다. 더군다나 온 몸에 매를 맞아서 피가 옷에 묻어 있었으며 십자가에 못 박은 곳에서도 피가 흘러 내려 이미 피투성이가 돼있었을 터인데, 찔러서 피가 나오는 것이 멀리서 쉽게 확인될 정도면 피가 창에 묻어서 나온 정도가 아니라 많은 양의 피가 나왔다는 것이며, 그것은 죽은 자의 피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예수는 십자가에서 독한 술을 먹고 혼절했을 뿐이며 죽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창으로 옆구리를 찔렀을 때에 몸에서 많은 피가 흐른 것이다.

성경 기록에 의하면 예수의 사형을 집행하기 직전에 독한 포도주를 먹였다고 되어있다. 그런데 로마군에게 붙잡혀서 고문과 굶주림으로 치쳐있던 예수가 독한 술을 많이 먹고 기절한 것인데 그것을 사망으로 착각한 것이다. 기절했다가 깨어난 예수가(성경에서처럼 3일 만에 부활 한 것이 아니라 정확히는 금요일 밤에 혼절해서 일요일 새벽이전에 깨어났으므로 최대로 계산해도 하루 반이다) 다시 잡히는 것이 두려워서 공식 석상에는 나타나지도 못하고 일부 제자와 친한 여인들만 은밀히 만나보고 멀리 안전한 곳으로 피신(망명)했다.

예수가 다시 안 잡히려고 얼마나 조심스러웠는지는 누가복음에 잘 나타나 있다. 제자들이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예수가 슬쩍 나타나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대화하고 또 그들이 함께 있기를 권했으나 떡만 먹고 말도 없이 사라져버린다. 나중에 다시 제자들 앞에 나타나서 자신의 상처를 그들에게 만지게까지 하면서 부활을 확인시키려고 애썼던 예수가 정말로 신적인 능력을 가진 자였다면 뭐가 두려워서 자신을 죽인 빌라도총독과 제사장들 앞에 당당히 나타나서 그들에게 자신의 부활을 보여주지 못했겠는가?

예수가 부활 후에는 단 한 번도 공식 모임이나 행사를 하지 않았으며 제자들을 만날 때도 남몰래 조용히 만나보았다는 것은 붙잡히지 않으려고 숨어 다녔다는 것이고(예수는 붙잡히기 전에도 숨어 있었다. 요한복음 12:36) 또 슬며시 나타난 예수를 제자들이 처음에는 몰라봤다는 기록들이 여러 곳에 있는데 그것은 예수가 잡히지 않으려고 변장(다른 모습, 마가복음 16:12)을 하고 다녔기 때문이다. 예수가 부활한 후에 남의 눈을 피해서 숨어 다녔다는 것은 사형집행의 미숙으로 요행이 죽지 않았을 뿐이며 신적인 능력으로 부활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외부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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