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는 권력암투로 피살됐다
유다는 권력암투로 피살됐다
  • 배길몽
  • 승인 2018.12.03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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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배길몽의 ‘지피지기’ 15

종교라는 단어를 글자 그대로 풀이해보면 ‘근본이 되는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는데, 종교를 철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올바른 삶을 위한 수단’이며, 문화적으로 생각하면 ‘같은 절대자를 다른 시각으로 섬기는 의식’이고, 의학적인 견해로는 ‘내세에 대한 불안을 치료하는 처방’이라고 할 수 있다.

등산을 할 때에 정상에 오르는 길은 동서남북 여러 곳으로 있다. 그런데 등산을 하고 있는 사람은 자신의 길만이 옳은 길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정상에 올라서 보면 반대쪽에도 오르는 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여러 자녀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효도하는 것을 거절할 이유가 없듯이 만약에 신이 존재한다면 여러 가지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섬기는 종교들을 용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목적은 같을지라도 그것을 이루기 위한 수단과 방법은 다양할 수 있으므로 특정 종교만이 정답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지구상에는 많은 종교가 있다. 각각의 종교가 섬기는 신의 이름과 교리가 다르지만 사실은 우주를 다스리고 있다고 믿는 하나의 절대자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섬기고 있는 것이다. 섬기는 신의 이름이 다른 것은, 백두산을 중국에서는 장백산이라 부르고 우리는 백두산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고, 교리가 다른 것은, 코끼리를 장님이 만져보고 한 사람은 기둥과 같다고 말하고 다른 사람은 벽과 같다고 말하는 것과 같이 우주 전체를 올바르게 파악하지 못한 결과다. 똑같은 절대자를 두고 민족마다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같은 신에 대해서 서로 다른 이름(여호와, 알라, 하느님, 옥황상제 등)이 붙은 것이고 또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각자의 경배 방식(교리)에서도 차이가 나는 것이며, 결국은 같은 신을 모셔놓고 서로 자기의 신이 옳은 신이라고 주장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불교는 일반 종교들과는 다르게 매우 과학적이어서 필자는 불교를 좋아한다. 엄밀하게 말하면 불교는 종교라기보다는 진리(연기와 무아)를 바탕으로 올바른 가치를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철학에 가깝다. 불교는 다른 종교들처럼 확인되지 않은 신을 함부로 주장하지도 않으며 오직 진리를 밝히려고 노력했고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기독교는 처음부터 인간을 신이라고 주장하며 고의적인 거짓말로 시작했으며 다른 종교와의 갈등으로 자주 전쟁을 유발하고 있다. 기독교의 목표는 인류의 구원인데 원래의 목표와는 반대로 오히려 기독교가 오랜 역사 동안에 수없는 전쟁을 일으키면서 인류를 멸망의 길로 몰아가고 있다. 인류 평화를 위해서 기독교를 철저하게 분석하고 모순을 지적해서 바른 길로 안내해야 한다.

불자들도 불교에만 신경을 쓸 것이 아니라 불교 밖에도 신경을 쓰는 것이 진정한 대승(大乘)의 길이다. 불교의 궁극적인 목표가 나만 구원하는 것인가? 아니면 불자만 구원하는 것인가? 좀 더 원대하게 인류 전체를 구원하는 것인가? 시작은 작은 것으로 출발했을지라도 좀 더 큰 목표로 발전해야 되지 않겠는가? 사회의 구원 없이 나만 구원할 수 없고 인류의 구원 없이 내가 속한 사회만 독립적으로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가히 큰 깨달음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이웃이 불행한데 나만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왜냐하면 우주의 모든 작용은 연기에 의해서 일어나며 이웃의 불행이 나에게 연기 작용을 일으켜서 나도 불행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웃을 사랑하고 자비를 베풀어서 함께 행복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예수는 종교 지도자가 아니라 정치가였다는 것은 제자들의 행동에서 저절로 밝혀진다. 기독교의 4대 복음서에는 예수의 제자들이 기도했다는 기록이 없다. 바리새인들은 금식하고 기도했는데 예수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기만 했다고 비난 받았다(누가복음 5:33). 예수가 새벽기도를 하러 산으로 갈 때도 혼자 갔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가 땀처럼 솟아나게 철야기도를 할 때도 제자들은 기도하지 않고 모두 잠을 잤다. 예수가 순수한 종교지도자였다면 제자들이 그렇게 행동할 리가 없다.

예수가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쳐주면서 그들에게도 기도하라고 권했다는 것은 역으로 제자들이 기도를 하지 않았음을 반증하며 또한 예수 혼자서 열심히 기도했지만 자신의 소망이 이루지지 않아서 제자들에게도 합심해서 기도하기를 원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처형된 다음에도 제자들은 다락방에 숨어서 앞날을 걱정했지만 기도를 했다는 기록은 없다. 제자들이 기도를 안 한 이유는 단순하다. 그들은 예수를 성직자로서 추종한 것이 아니라 정치인으로서 왕이 될 거라고 믿고 따랐기 때문에 기도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의 주기도문은 물론 예수의 새벽기도와 철야기도를 포함해서 예수가 한 모든 기도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한 유명한 말 ‘아버지여 왜 나를 버리시나이까?’라는 것은 아버지가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았음을 한탄한 것이다. 예수의 소망은 주기도문에 나타나 있는 그대로다. 여호와가 존경받고, 나라가 임하고(로마가 망해서 이스라엘이 독립하고), 하늘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고, 죄를 사해주고, 일용할 양식을 주고, 악에서 구해주는 것인데, 이 중에서 단 한 구절도 이루어진 것이 없다. 그런데 예수의 소망이 모두 이루어져도 좋지만 단 하나, ‘죄를 사해주는 것’은 이루어지면 안 된다.

죄는 죗값을 받아야 마땅한데 단순히 주기도문을 암송했다고 죄를 사해준다면 수많은 또 다른 죄를 양산하기 때문에 기도에 의한 죄 사함은 절대로 안 된다. 이해 당사자가 아닌 제3자에 의한 죄 사함의 부당함과 불가능함에 대한 것은 다음에 자세히 설명하겠다. 예수의 제자들은 기도에는 관심이 없었으며 오로지 예수가 왕이 되기를 기대하면서 권력 투쟁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고 그래서 나중에 들어온 유다가 예수의 총애를 받았기 때문에 유다가 권력 2인자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유다를 암살했으며 필자가 그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마태복음에서는 예수가 잡혀갔을 때에 유다가 후회하면서 은 30냥을 반환하고 목매어 자살했다고 기록돼있다(마태복음 27:3~5). 그런데 사도행전(1:18~19)에서는 유다가 돈을 반납하지 않고 그 돈으로 밭을 샀으며 목매어 자살한 것이 아니라 매수한 밭에서 넘어지면서 배가 터져서 창자가 흘러나온 채로 죽었고 유혈이 낭자해서 그 밭을 피밭이라고 불렀다고 했다. 그런데 사도행전의 이 기록은 마태복음과 상충되기 때문에 일부 성경에서는 삭제돼있던 내용이다. 이 상반된 기록과 당시의 정황과 증거들을 참고해서 분석해보면 유다는 피살된 것이 분명하다. 유다가 자살했다면 자살한 시기는 마태복음에서처럼 예수가 부활하기 이전이어야 하는데(예수가 부활했다면 후회하며 자살할 이유가 사라지므로) 예수가 부활한 이후에도 유다가 계속 살아있었다는 기록이 성경 곳곳에 있다.

유다가 자살했다면 먼저 자살의 원인이 된 예수의 인신매매가 성립이 돼야한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유다는 돈 궤를 관리했는데(요한복음 12:39) 이것은 예수가 유다를 매우 신임했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렇다면 유다의 입장에서는 예수가 정상적으로 계속 활동하면 은화 30냥(120 데나리온; 1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에 해당된다)보다 훨씬 많은 공금을 횡령 혹은 유용할 수가 있으며(요한복음 12:6) 더구나 예수가 왕이 되면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으므로 무리하게 목숨을 걸고 매우 적은 돈(은화 30냥)을 위해서 예수를 팔아야 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제자들 사이에는 예수가 왕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2인자를 위한 권력암투가 심했는데(마태복음 20:24, 누가복음 22:24) 예수가 나중에 된 자가 먼저 될 수도 있으며(마태복음 19:30) 큰 자가 되려면 젊은 자처럼 해야 된다고 하면서(누가복음 22:26) 나중에 제자가 된 젊은 유다를 총애하고 그에게 돈 궤를 맡겼으므로 선임 제자들이 분하게 여겼을 것이고 이를 뒤집을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다가 유다를 살해하고 오히려 유다가 예수를 팔고 자살하거나 징벌로 죽은 것처럼 소문을 냈을 것이다.

예수는 제사장들이 자신을 잡으려 한다는 소문을 들었으나(요한복음 11:57) 왕이 된다고 큰소리친 예수가 체면상 멀리 도망가지도 못하고 은밀한 곳에 숨어서(요한복음 12:36)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밤중까지 간절히 기도했는데 재정을 맡은 유다가 필요한 것을 구입하기 위해서 밤중에 외출했다가(요한복음 13:29) 돌아와서 스승에게 예를 표했으므로 유다를 미행했던 병사들이 그가 예수인줄 알아보고 붙들어 갔을 것이다. 천하의 바보가 아니면 겨우 은화 삼십에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이 배신자라는 것을 공개적으로 노출하면서 예수를 팔겠는가? 유다가 배신도 하지 않았고 또 자살도 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정황증거들은 매우 많으며 다음과 같다.

유다에 관한 기록을 종합적으로 분석해보면 그의 죽음은 마태복음에서처럼 예수가 붙잡혀 갔을 때가 아니라 예수가 부활해서 다시 잠적한 직후에 일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예수가 사라지고 오순절이 되기 전날 제자들의 공식 첫 모임에서 사망한 유다로 인해서 결원이 된 사도를 보충하는 것이 주요 안건이었는데 그 안건을 첫 모임에서 중요하게 처리한 것을 보면(사도행전 1:15~26) 그 일의 중요성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가 있다. 그런데 유다가 마태복음처럼 예수가 잡혀갔을 때에 죽었다면 예수가 부활한 후에 머무른 40 여일을 잠자코 있다가 예수가 잠적한 후에야 자기들끼리 신속히 유다의 후임 사도를 결정했다는 것은 정상적인 행동이 아니다. 그것을 뒤집어 해석하면 예수가 사라진 다음에 유다가 죽었다는 것이며 또 매우 중요한 안건을 아무런 분쟁도 없이 단번에 결정했다는 것은 유다가 죽을 것을 미리 알고 누구를 후임으로 세울 것인지에 대해서도 사전 정지작업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유다가 예수 부활 후에도 상당히 오랫동안 살아있었다는 증거들이 성경에 여러 곳에 나온다. 공관복음에는 예수가 부활한 후에 2명의 제자와 길에서 우연히 마주 친 것을 제외하고는 공식적으로 제자들과 만난 것은 한 번밖에 없으며 그 때에 11명의 제자들이 함께 예수를 만났다고 명시돼있는데, 요한복음 20:24절에 보면 제자 중에서 도마는 참석치 못해서 예수의 부활을 믿지 못했다고 한 것을 합해서 분석해보면, 공관복음의 11명의 모임에는 도마는 빠지고 대신에 유다는 참석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다는 마태복음에서처럼 예수가 잡혀간 직후에 자살한 것이 아니고 그 뒤에도 여전히 살아있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십자가에서 자신을 죽이는 원수도 용서했던 예수가 제자의 죽음에 대해서 아무런 말이 없었다는 것은 역으로 예수가 잠적하기 전까지는 유다가 살아있었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에는 예수가 자신의 부활을 베드로(게바)에게 먼저(무덤에서) 보여주고 그 뒤에 12명의 제자와 5백 명의 추종자들에게도 보여주었다는 명확한 기록이 있는데(고린도전서 15:4~6) 이것은 예수가 부활한 이후에도 계속 유다가 살아있었다는 확실한 증거다.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가 부활한 후에 정말로 예수가 왕이 되는 것으로 착각하고 어린 후배인 유다가 2인자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선임들(베드로, 요한, 마태 등)이 이심전심으로 뭉쳤을 것이며 이들이 뭉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베드로와 요한은 원래 동업자였으며(누가복음 5:10) 서로 2인자의 자리를 탐냈을 것이고, 그리고 세리 출신인 마태도 재정을 담당하는 유다의 자리를 노렸을 것이므로 유다를 제거하는 것에 동참했을 것이다. 그들이 동참했을 것으로 보는 근거는, 그 세 사람이 유다를 나쁜 사람으로 몰아가는데 앞장섰기 때문이다. 마태는 자신이 작성한 성경에서 유다가 자살한 것으로 조작했고, 베드로는 오순절 회의석상에서 유다의 죽음을 배신의 대가라고 공개선언 했으며, 요한은 유다가 제자로 택함을 받을 때부터 마귀였다고(요한복음 6:70) 유다를 원천적으로 비난했다.

유다의 죽음은 오늘날에도 발생하듯이 종교나 권력단체가 발생하는 과정에서 추종자들 사이에 세력다툼으로 살인이 허다하게 생기는 것과 유사한 현상이라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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