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의 법문] ① 김대열/선시의 시각언어화
[미의 법문] ① 김대열/선시의 시각언어화
  • 서현욱 기자
  • 승인 2018.12.11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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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그음’에 뭇 존재의 근본을 담고저형상 밖의 형상(象外之象)의 알아차림 천착선시(禪詩)의 의미 ‘시각언어로 추상화’
▲ 김대열 작, 곳곳이 도량.

“획(‘한 번 그음’)이라는 것은 뭇 존재의 뿌리요, 온 모습의 근본이다. ‘한 번 그음’의 법은 오로지 도(근원 보질)를 체득한 주체 즉 나로부터만 생겨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한 번 그음’의 법을 세울 수 있는 자는 대저 법이 없음을 가지고 법이 있음을 창조하고, 법이 있음을 가지고 모든 다양한 법을 꿰뚫어 버릴 수 있는 것이다.”(도올 김용옥의 《석도화론》의 의역을 따름.)

중국 명말(明末) 청초 4대 명승의 한사람인 스타오(石濤 본명 朱若極 1642~1707)는 《고과화상화어록(苦瓜和尙畵語錄)》 ‘일화장제일(一畵章第一)’에서 자신의 화론(畵論)을 ‘무법(無法)’으로 규정한다. 도올은 스타오의 무법을 “단순한 부정으로서의 무(無)가 아닌 긍정과 부정, 유무(有無)의 인식을 넘는 본재(本才)로서의 무인 것이다.”라고 통석(通釋)한다.

“대저 획은 심(心)에 따른 것이다”

▲ 김대열 작, 뜰앞의 잣나무.

화가의 ‘‘한 번 그음’(劃)’은 그렇다면 어디에서 오는가? 스타오는 획의 출발은 ‘마음’이라 했다.

“대저 획이라는 것은 심(心)에 따르는 것이다. 산천인물(山川人物)의 수려함이나 광채로움, 조수초목(鳥獸草木)의 살아있는 느낌과 성향, 연못의 정자나 누각의 구도, 이 모든 대상이 그 본질적 이치에 깊게 들어가고 그 모습을 자세히 인식할 수 있는 화가의 능력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끝내 그 ‘한 번 그음’의 너른 작용이나 묘용을 깨달을 수 없는 것이다. 먼 길을 가고 높은 곳을 오르는 것이 모두 한치의 움직임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니, 이 ‘한 번 그음’은 거대한 우주의 저 밖까지도 모두 그 안에 수용하는 것이다. ”

결국 화가의 수많은 붓질과 먹장난이 ‘한 번 그음’에서 시작해 그 ‘한 번 그음’으로 끝나지 않는 것은 없는 것이니, 그 ‘한 번 그음’은 화가가 자기를 어떻게 파악하고 어떻게 활용하는 가에 자신을 맡길 수밖에 없다. 결국 ‘한 번 그음’의 시작은 화가의 눈을 통해 인지한 사물을 어떻게 ‘알아차림’하느냐의 문제이다.

좁은 캔버스나 화선지에 ‘한 번 그음’은 결국 그리고자 하는 대상의 전체, 즉 본질을 포용해 함축해야 한다. 화선지라는 제한된 공간에 시각을 통해 인지된 사물의 본질을 화가 자신의 의도성을 명료하게 드러내는 작업은 ‘알아차림’이 없고서는 가능치 못하다.

알아차림이 없는 붓은 투철함이 없는, 그저 붓질의 춤사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투철함을 잃은 화가의 팔뚝은 본질을 좇지 못하고, 동그랄 때 동그랗지 못하고, 모날 때 모나지 못하며, 반듯할 때 반듯하지 못하고, 우주의 시작과 끝을 수용하지 못한다.

‘한 번 그음’은 분별심에 드러나지 않아

하지만 스타오가 말하는 ‘한 번 그음’을 일반인이 알아차리기란 쉽지 않다. 뭇 존재의 뿌리이자 근본인 ‘한 번 그음’은 분별심이 고착화된 속인들의 상투적 인식에 그 속살을 드러내지 않는다.

김대열의 획은 스타오가 말한 화가의 ‘한 번 그음(획)’과 위빠사나 수행자의 ‘알아차림’과 다르지 않다. 김대열은 “내 작업이 ‘불구형사(不求形似)’를 위해서 ‘불사지사(不似之似)’의 묘미를 터득하기 위해서 형상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며 내 스스로의 법을 찾아 내가 나를 부릴 수 있는 무애의 경계, 창작성이란 속박까지도 벗어나고자 하는 돈오(頓悟)를 위한 점수(漸修)의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 김대열 작, 물이 급해2.

김대열의 선화는 선시(禪詩)의 의미를 ‘시각언어로 알아차린’다. 물소리는 귀로 알아차리지만 그 소리를 화폭에 담는 것은 결국 시각을 통해 파악된 본질적 언어로서 시각언어의 ‘한 번 그음’만이 가능하다. 김대열 선화의 ‘한 번 그음’의 시작은 시각을 통해 인식한 자연, 선승들의 발자취, 인간군상의 본질을 화선지에 ‘한 번 그음’으로서 시각화한다.

시각화된 알아차림은 추상(抽象)

이런 점에서 김대열의 화풍은 스타오의 화론을 좇는다. 스타오의 시각언어와 김대열의 시각언어는 달라 보이지만 ‘한 번 그음’에서 출발해 산천인물·조수초목의 본질을 꿰뚫는 안목을 좁은 화폭에 함축하는 작업은 그 맥이 통한다. 내용과 형식이 구상(具象)을 좇지만 화폭에 시각화된 알아차림은 추상(抽象)이다. 이는 김대열이 “드러나는 형상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밖의 형상(象外之象 山外之山)을 찾고자 한다”고 말한 바와 맞닿는다.

어찌 보면 김대열의 그림에서 스타오의 《고과화상화어록(苦瓜和尙畵語錄)》의 화론의 흔적이 보이는 것은 당연한지 모른다. 김대열 자신의 석사학위 논문이 〈석도 및 그 회화 연구〉이니 말이다.

▲ 김대열 작, 금강산 유람.

하지만 김대열은 소동파의 대나무를 그리고자 함도 스타오(석도)의 법을 따르려는 것도 아니다. 이는 스타오의 화론이 명말(明末) 화단의 고질적인 분파의식인 남종화와 북종화의 대립 즉, 북종은 정신이 빠지고 기교만 살아있고, 남종은 정교한 사경이나 묘사가 생략된 직관적 정신위주의 화풍을 표방한다는 분별의 오류를 타파하기 위해 ‘무법(無法)론’을 출발하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스타오는 “옛 사람의 법을 배우기 전에는 그 법이 어떤 것인지 몰랐다. 그 법을 배운 뒤에는 그 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림에 남북종이 어디 있는 가? 나는 내 스스로의 법을 쓴다. 내가 나 됨은 스스로의 내가 존재함에 있다.”고 말했다.

화론 구축 위해 선종사상 관심

김대열의 선화는 스타오가 말한 ‘내 스스로의 법’을 찾는, 자기화론을 찾기 위한 구도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포용하고 수용하기보다 분별하는 데 진이 빠지고, 진경에 집착하고 본질을 좇지 못하는 화단에 근원적 성찰을 묻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김대열은 “본질적 시각언어로서의 화론 구축을 위해 선종사상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예술창작을 통해 선적 체험을 바라고 있다”고 말한다. 김대열의 박사학위 논문이 〈선종이 문인화 형성에 미친 영향〉인 점은 다른 선화가들과 달리 불교선종사와 중국회화사를 천착하고 있음을 보여 그가 좇는 화론의 출발과 종착점을 짐작케 한다.

김대열의 화폭에 보이는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바람은 바람이며, 물소리는 물소리이다. 좁은 종이에 전달된 팔뚝의 놀림은 본질을 좇은 화가의 시각언어를 함축한다. 화폭을 지나간 자리의 획은 ‘한 번 그음’에서 출발해, 그 선은 이어지고 끊어져 연속하고 마친다. 이 같은 경향은 최근 작품일수록 두드러진다.

▲ 김대열 작, 중생상.

외부적 형상, 수행으로 시작적 추상언어화

김대열의 획은 선사들의 관법을 닮았다. 본질에 대한 관찰 특히 자연에 대한 관찰은 외부적 형상을 내적 수행을 거쳐 시각적 추상언어를 자유자재로 붓질한다.

그렇다고 김대열이 환상을 좇는 것은 아니다.

김대열의 획은 인간과 자연의 본질 즉 내제된 불성을 좇는다. 자연에로의 회귀, 원초적 세계를 좇는 불심이 화폭에 담기지만 비소유론적 욕망인 불성의 본원의미를 놓치지 않는다. 더불어 티없이 맑은 명경지수(明鏡止水)의 마음을 투영한 획은 과장되지 않고 현실의 모습을 담는다.

김대열의 획의 재료는 수묵이다. 선화의 본질을 화선지에 담는 데 그 맛이 고요하고 담백해 적합하기 때문이다.

김대열은 이렇게 말한다.

“부처를 구하면 부처를 잃고, 도를 구하면 도를 잃고, 조사를 구하면 조사를 잃는다. 도는 본래 도가 아니며(道本不可道), 그림 역시 그림이 아닌데(畵亦不可畵) 그림을 구한다고 지필묵(紙筆墨)을 달리고 책장을 넘겨보았지만 천성이 우둔하고 배움과 재주가 얕다보니 독서는 불구심해(不求深解)하며 그림은 호도난말(胡塗亂抹)이다.”

하지만 여전히 김대열은 불성을 드러내기 위해 붓을 던지고 뿌린다. 화선지를 달리는 획에 인간의 중생상을 담는다. 또 다른 획에는 번뇌를 쫓는 수행자의 고뇌를 드러낸다. 또한 이따금 독서를 통한 하나의 생각을 옮기고 형상 밖의 형상(象外之象)을 찾는 데 천착한다. 2009.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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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오(石濤)는 중국 명말(明末) 청초의 4대 명승의 한사람인 스타오(石濤 본명 朱若極)는 명황족 출신의 승려화가로 법명은 도제(道濟)이다. 양저우파(楊州派)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청나라 문인화의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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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열 교수.

김대열 교수

1952년 충남 청양에서 나서 동국대 미술학과를 나와 국립대만사범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단국대 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8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개인전 7회를 가졌고, 1980년 대한민국 국전을 시작으로 100여 회의 전시회에 작품을 냈다.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과 불교미술대전 운영위원을 지냈고 현재 동국대 예술대학미술학과 교수로 있으며 선시와 선화의 결합을 천착하고 있다. 전 수덕사 방장 원담 스님의 시를 선화로 시각화하는 작업도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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