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사랑)는 선행이 아니다
자비(사랑)는 선행이 아니다
  • 배길몽
  • 승인 2019.01.14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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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배길몽의 ‘지피지기’ 21

모든 종교단체가 시간이 흐르면 권력 단체로 바뀌면서 부패하는 이유는 자금의 축적 때문이다. 자금이 있는 곳에는 권력이 생기고 권력이 생기면 부패하게 된다. 그러므로 거대한 자금이 있는 한 아무리 정화해도 또다시 부패한다. 거대한 자금이 있으면 부패하는 중요한 이유는 불투명한 회계 처리 때문이다. 정확한 회계를 통해서 재정이 투명해지면 종교가 저절로 정화될 것이다. 그러나 투명한 회계가 불자들의 수행 중에서 가장 어렵다는 무문관 수행보다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이 문제다. 무문관 수행을 거친 승려가 주지로 있는 절의 회계가 불투명한 것을 보면 투명한 회계가 무문관 수행보다 더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직자들이 아무리 많은 수행과 공부를 했을지라도 돈의 위력 앞에서 무너지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필자의 마음이 슬퍼진다. 가진 것이 몸밖에 없어서 몸을 파는 여인과 가진 것이 있으면서 더 많이 가지려고 영혼을 파는 성직자 중에서 누가 더 사회에 해악을 많이 끼치고 있는 것일까?

성직자가 존경을 받는 이유는 성직자가 남들보다 경전을 깊이 이해하기 때문이 아니라 경전의 가르침을 열심히 실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많은 성직자들이 종교의 계명(계율)대로 행하지 않으면서 헌금(보시)만 받아 챙긴다. 대부분의 성직자는 선행을 기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세를 보장받기 위해서 억지로 선행을 한다. 어린아이들이 공부가 기뻐서 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로부터 칭찬받으려고 마지못해서 하는 것과 유사하다.

학문의 목표는 진리를 밝히는 것이고 문화의 목표는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 종교는 학문이 아니라 문화의 일종이므로 종교가 인간의 삶에 도움이 된다면 그 목적을 충분히 달성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종교는 인간과 사회에 유익함을 별로 주지 않고 있다. 진실이 세상을 항상 평화롭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불편한 진실도 있고 위험한 과학도 있다. 종교가 진실이 아니더라도 종교를 믿어서 사회가 평화로워진다면 믿을 만한 가치가 있다. 그런데 지금의 종교는 평화보다는 혼란을 야기한다. 내부적으로는 서로 좋은 직분을 차지하려고 싸우고 외부적으로는 타종교에 테러를 가하거나 전쟁도 불사한다. 종교의 가치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원래부터 나의 것은 없다. 당신은 빈손으로 이 세상에 왔다. 당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모두 남에게서 획득한 것이다. 농부는 땅과 햇빛 그리고 바람과 비가 가꾸어 놓은 곡식을 자기 것이라고 하고, 사냥꾼은 동물을 무차별 살상해서 혹은 납치해서 자기 것이라고 하고, 장사꾼은 생산자에게서는 헐값으로 구입한 후에 소비자에게는 비싼 값으로 팔아서 생산자와 소비자의 이익을 가운데서 가로채서 자기 것이라고 한다. ‘나의 것’ 은 정확히 말하면 현재 ‘내가 관리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고 내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가지고 있는 것은 당신의 것이 아니므로 그것이 절실히 필요한 자에게 나누어 주도록 넓은 마음을 가지기 바란다.

자비나 사랑이라는 말을 깊이 들여다보면 가진 자의 교만함이 내재해있다. 마치 자기가 시혜를 베풀고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 구제 활동은 자기 것을 나누어 주는 시혜가 아니라 그들이 가져야 할 것을 가로채 와서 다시 돌려주는 것이므로 구제활동은 시혜의 마음이 아니라 사과하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 이런 일(구제 활동)이 좀 더 빨리 많이 이루어지지 못했음을 미안해하고, 또 이런 일이 없어도 되는 세상을 만들지 못했음을 미안해하는 마음으로 봉사해야 한다. 아픈 사람을 도와주면서 봉사라고 생각하지 말고, 아프지 않게 못 했음을 미안하게 생각하고 반성하라는 말이다. 그래야 진정한 봉사와 나눔의 마음이다.

돈과 자원은 강물과 같아서, 상류에 있는 사람이 너무 많이 차지했기 때문에 하류에 있는 힘없는 사람들에게는 다다르지 못한 것이다. 이제 봉사 행위는 자비와 사랑으로 나누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몫을 가로챈 것에 대해서 사과하는 마음으로 되돌려 주는 것이어야 한다. 자비와 사랑을 선행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또 다른 교만의 악행을 저지르는 것이다. 자신이 너무 많이 가지지 않았다면 모두 잘될 일을, 욕심으로 많이 가진 후에 남에게 나누어 주는 것은 선행이 아니라 회개다. 이제부터 ‘사랑과 나눔’의 운동이 아니라 ‘회개와 돌려줌’의 운동을 해야 한다. 자신이 갖고 있는 여분은 원래 다른 사람들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자비와 사랑은 선행이 아니라 회개(사과, 반성)임을 명심해야 한다.

종교인의 입장에서 해석하면 자비(사랑)를 행하라는 것은 부처님(하나님)의 가르침(명령)이다. 그러므로 자비(사랑)를 베풀면 자비(사랑)를 받은 자가 그 대가를 보상하지 아니해도 내세에서 보상이 있기 때문에 부처님(하나님)께서 그렇게 가르치신(명령하신) 것이므로 당신은 상대의 배은망덕을 전혀 서운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자비(사랑)는 성질상 두 가지로 분류해야 하는데, 자비(사랑)를 베푼 후에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되돌려 받은 자비(사랑)와 전혀 되돌려 받지 못한 자비(사랑)로 구분해야 한다. 왜냐하면 되돌려 받은 자비(사랑)와 그러지 못한 자비(사랑)는 내세에서 받을 보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예수가 사람을 구분할 때, 땅(현세)에서 상을 받은 자와 하늘(내세)에서 상을 받을 자로 구분하는데, 이는 두 가지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첫째는 일사부재리 원칙처럼 상을 두 번 주지 않는다는 것이고, 둘째는 땅에서 상을 받은 자는 천국에 가기 어렵다는 것이다. 선행을 하더라도 현세에서 상(대가)을 받으면 내세에서는 상을 주지 않으므로, 우리가 앞에서 분류한 두 가지 사랑 중에서 중요하게 생각할 것은 되돌려 받지 못한 사랑, 즉 대가없는 사랑이다. 나와 아무 연결이 안 되어 있는 사람에게 하는 사랑, 사랑의 행위(주체)가 밝혀지지 않은 사랑, 오른손이 한 걸 왼손이 모르게 한 사랑, 자랑 삼아 공개적으로 하지 않은 사랑, 배신당한 사랑, 원수에게 한 사랑만이 되돌려 받지 못한 대가없는 사랑으로서 하늘(내세)에서 보상하는 사랑이다. 그러므로 종교인이라면 누가 자신을 배신하면 섭섭하거나 화를 낼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고마워하거나 기뻐해야 한다.

필자가 산중에서 어렵게 생활하고 있을 때 필자를 많이 도와준 고마운 스님이 한 분 계신다. 그런데 이제 필자도 어느 정도 자립할 수 있어서 그 분이 후원을 중단하셨고 필자는 아직 여유가 없어서 그 분에게 은혜를 갚지 못하고 있지만 설혹 여유가 생기더라도 그 분에게 은혜를 갚지 않고 대신에 다른 어려운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 생각이다. 그리고 그런 것에 대해서 그 분이 서운해 하실 필요가 전혀 없다. 왜냐하면 진정한 자비는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에게 행하는 것이며 그것이 자신에게 되돌아오지 않고 다시 또 다른 없는 사람에게 베풀어져서 자비가 순환(윤회)해야 종교(불교)가 원하는 올바른 자비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자비(사랑)는 자비(사랑)를 받는 자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하나님)의 가르침(명령)으로 내세의 보상 즉 자신의 해탈(영생)을 얻기 위해서 하는 것이므로 자비(사랑)를 받은 자가 되돌려 주지 않을수록 본인에게 유리하다. 그리고 종교적인 해석을 떠나서 심리학적으로 분석해도 약한 자에 대한 자비(사랑)는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위안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약한 자를 도움으로써 잠재의식 속에서 자신의 우월성을 인식하게 되고 그로부터 마음의 위안을 받는 것이다.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들 중에서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봉사가 즐거워서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의 잠재의식 속을 들여다보면 봉사 행위 자체가 즐거운 것이 아니라 그들은 약한 사람들을 도움으로써 자신의 우월성을 즐기는 것이다. 기독교인의 대부분은 천국에 가려는 욕심으로 선행을 하고 불교인도 극락에 가기 위한 선업을 쌓으려고 자비를 행한다. 대가나 보상이 없는 진정한 봉사와 선행을 행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만약에 정말로 순수한 봉사활동을 즐거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천국에 가지 말고 스스로 자원해서 지옥에 가야한다. 왜냐하면 천국에는 질병도 배고픔도 없으므로 자신이 하고 싶은 선행이나 봉사활동을 할 수 없고 반대로 지옥에 가야 그런 일을 하면서 보람과 행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자비(사랑)는 선행이 아니라 회개이므로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아니라 누구나 행해야 하는 필수라는 것을 명심해야 하고 그리고 자비(사랑)는 시혜가 아니므로 교만하게 행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사과하는 마음으로 겸손하게 행해야 한다. 자비(사랑)를 시행할 때는 상대에게 반대급부를 기대하지 마라. 자비(사랑)는 그들의 것을 원래의 자리로 돌려주는 것이기 때문에 다시 돌려받아서는 안 된다. 그리고 설혹 자신의 것으로 자비(사랑)를 베푼다고 할지라도 자비(사랑)를 시행하면서 스스로 마음의 위안(보상)을 받은 것이고 내세가 있다면 하늘도 분명히 보상할 것이므로 되돌려 받지 마라. 그대가 종교인이라면 하나의 행위에 두 번의 보상을 중복해서 받을 수 없으므로 상대에게서 반대급부를 받아버리면 하늘(내세)에서는 보상이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자비(사랑)가 선행이 아니라면 무엇이 선행인지 추후에 설명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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