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에 목말라 하는 젊은이가 산길을 힘들게 올라간다. 문득 계곡물을 보니 배춧잎 한 장이 떠내려 온다. “이 절도 틀렸구나” 하는 탄식과 함께 발길을 돌리려는데, 노승 한 분이 허겁지겁 내려온다. 노승은 배춧잎을 건져 산길을 되돌아 간다. 젊은이는 기꺼이 그의 제자가 된다. 오래 전에 읽은 글의 한 대목이다.
문학 동네에서는 시(詩)를 ‘말(言)의 절(寺)’로 풀이하기도 한다. 언어의 사원이라는 의미 부여는 시에 대한 지고의 헌사가 될 것이다. 또한 절의 정신성에 대한 커다란 신뢰가 깔려 있다.
모든 종교 사원은 고단한 영혼을 의탁하여 위로 받고, 새로운 삶의 에너지를 충전 받는 공간일 것이다. 최근 월간 '불교와 문화’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산중이나 도심의 불교사찰을 찾을 때 가장 기대하는 것으로 ‘정신적 휴식과 여유’가 꼽혔다(53.9%).
절에 대해서는 ‘조용하고 엄숙함’ ‘마음의 안정과 평화’ ‘아름다운 자연환경’ 순으로 긍정적 이미지를 떠올렸다. 그러면서도 사찰 내 휴식공간의 부족을 가장 큰 불편함으로 지적했다. 이어 ‘안내와 설명의 부족’ ‘종무원의 불친절’ ‘화장실의 불편’ 등을 꼽았다.
비탈길을 숨차게 올라 산사에 닿으면, 막상 다리를 쉬며 땀이라도 들일 곳이 마땅찮다. 그러나 어느 추녀 밑에 엉거주춤 엉덩이를 붙이고 있어도, 풍경 소리는 귀에 정겹고 마음은 마냥 평화롭다.
산사의 말 없는 베풂이 고맙다. 주로 외교관 가족 등 이방인을 위한 템플 스테이도 불교적 넉넉함이 마련해 주는 하룻밤의 정신적 거처다. 비교해 보자면 어느 종교기관이 절만큼이나마 나그네에게 쉴 자리를 베풀고 있는가. 잠시 들어가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성소는 얼마나 되던가.
절이 설문조사를 통해 휴식공간의 부족을 깨닫고 방문객에게 여유 있는 공간을 제공하려는 것은 고마운 배려다. 그러나 또한 절이 풍경 좋은 곳에 위치한 상업 카페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
자칫 불사를 명분 삼아 시설을 마구 개량화ㆍ현대화해서는 안 된다. 선의에서 출발한 조사결과가 절이 불교적 근본주의에서 벗어나는 기화로 작용될까 걱정된다. 무념무상한 스님의 표정, 검소해 보이는 요사, 그런대로 이용할 만한 해우소 등 지금의 모습이 결코 나쁘지 않다. 지나친 것은 모자람만 못하다.
박래부 수석논설위원 parkrb@hk.co.kr
/ 기사제공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