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무문관: 달마안심(達磨安心)
신무문관: 달마안심(達磨安心)
  • 박영재 교수(서강대)
  • 승인 2019.02.09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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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선도회 박영재 교수와 마음공부 37.

성찰배경: 최근 공직에 계신 분이 요즈음 국내외적으로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본래 그런 의도는 아니었다고 했으나 대한민국을 혐오하는 ‘지옥조선[헬조선]’이란 용어를 좀 더 신중하게 언급하지 못하고, 실업 증가에 불안不安에 떠는 젊은 층과 노후자금이 부족한 장노년 층을 더욱 자극한 일이 일어나 매우 시끄러웠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시의적절하게 이번 글은 ‘신무문관’ 제창의 순서상 <무문관(無門關)> 제41칙인 ‘달마안심(達磨安心)’ 공안을 다룰 차례로, 먼저 본칙을 다루고 ‘행복조선’, 즉 ‘고마운 나라’를 포함해 ‘안심安心’에 대한 주제에 대해 부연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본칙(本則): 보리달마(菩提達磨, ?-528) 대사께서 면벽을 하며 (대꾸도 않고) 있으니 이조혜가(二祖慧可, 487-593) 스님이 눈 위에서 팔을 자르고 말하기를, ‘제자의 마음이 편안하지 않으니 부디 대사님께서 제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십시오.’ 그러자 달마 대사 가로되, ‘그대의 불안한 그 마음을 나에게 가져오너라! 그러면 내가 그대를 위해 편안하게 해 주리라![장심래위여안將心來爲汝安]’ 그러자 혜가 고백하기를, ‘저의 불안한 마음을 아무리 구하려 해도 구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자 달마 대사 가로되, ‘그대를 위해 가져올 수도 없는 그 마음을 편안하게 하였노라!’

평창評唱: 무문 선사 가로되, 이빨 빠진 ‘늙은 달마[老胡]’가 십만 리를 항해하여 중국까지 일부러 온 것은 가히 바람도 없는데 파도를 일으킨 격이로구나. 또한 뒤늦게 한 제자를 얻었으나 육근이 성치 않은 불구로구나. (게다가) 피식!(참지 못하고 튀어나오는 비웃음) 사씨네 셋째 아들처럼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구나[不識四字]!

송頌: 게송으로 가로되, 서쪽에서 중국으로 건너와 (‘사람의 참마음[人心]’을) 바로 가리켰는데,
(번잡한) 일은 (혜가에게 법을) 부촉한 것이 원인이 되어 일어났네. (그 결과 ‘달마가 서쪽에서 온 뜻은 무엇인가?’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대는 등) 총림이 시끄럽게 되었는데, 원래 (그 장본인이 바로) 달마 당신이셨구려! [西來直指 事因囑起. 撓聒叢林 元來是爾.]

군더더기: 사실 달마대사의 ‘그대의 불안한 그 마음을 나에게 가져오너라!’란 응답 자체가 무슨 심오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고, 성불(成佛)에 목말라 하던 혜가가 이 한마디[一轉語]에 즉시 편안하다느니 불안하다느니 하는 이원적 분별에서 자유로운 평등적 차원의 세계를 온몸으로 체득했던 것입니다. 한편 선종(禪宗)이 중국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음을 선언한, 달마대사가 혜가 스님에게 내린 전법게는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본래 이 땅[중국]에 온 것은/ 석가세존의 가르침을 전해 미혹한 중생[迷情]을 구제(救濟)하기 위한 것으로/ 한 송이의 꽃에 다섯 꽃잎이 피어/ 열매가 저절로 익을 것이네.”[오본래자토吾本來玆土 전교구미정傳敎救迷情 일화개오엽一花開五葉 결과자연성結果自然成.] 참고로 ‘일화(一花)’는 중국 선종의 초조(初祖)인 달마대사를 뜻하고 예언적 성격이 강한 ‘오엽[五葉]’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는데 일설은 2조혜가, 3조승찬, 4조도신, 5조홍인 및 6조혜능을 의미하기도 하고, 또 다른 일설은 선종의 갈래인 오가(五家), 즉 위앙종僞仰宗), 임제종(臨濟宗), 조동종(曹洞宗), 운문종(雲門宗) 및 법안종(法眼宗)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덧붙여 이 화두의 경계와는 별개로 수행자라면 팔 하나를 잘라 스승께 제시할 정도의 굳건한 도심(道心)을 갖지 않으면, 제대로 수행을 지속할 수 없다는 교훈도 주고 있습니다. 참고로 종달 선사께서 1965년 재가수행단체인 선도회(禪道會)를 조직하시고 1990년 입적(入寂)하실 때까지  25년 동안 문하에 1000명 이상이 입문했었으나 ‘무(無)’자(字) 화두 초관(初關)을 투과한 사람이 65명이었으며 그 가운데 끝까지 화두 입실점검 과정을 모두 마친 분이 10인(입적 등으로 현재 4인만이 법사직 수행 중)이었다는 것도 그 증거 사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혜가면죄(慧可免罪)

한편 ‘달마안심’ 공안을 좀 더 명료하게 파악하기 위해 <조당집(祖堂集)> 가운데 ‘혜가장’에 들어있는 다음 대목도 함께 살피면 좋을 것 같아 소개를 드립니다. 한 거사가 혜가 선사께 와서 예배를 드리고 이름도 밝히지 않은 채 묻기를, ‘제자는 (천벌天罰인) 문둥병을 앓고 있는데, 청컨대 부디 화상께서 제자를 참회(懺悔)하게 해주십시오.’ 그러자 선사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대가 죄를 가지고 오면, 내 그대를 위하여 죄를 참회하게 해 주겠네.[여장죄래위여참회汝將罪來為汝懺悔]’ 거사가 답하기를, ‘죄를 찾으려 해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선사 가로되, ‘내 지금 그대를 위하여 (찾아 가져올 수도 없는 그 죄를) 참회하게 하였노라.’

군더더기: 사실 혜가 선사의 ‘그대의 죄를 가지고 오면, 죄를 참회하게 해 주겠네!’란 한마디에 승찬 역시 죄를 지었다느니 죄를 짓지 않았다느니 하는 이원적 분별에서 자유로운 평등적 차원의 세계를 온몸으로 체득했던 것입니다. 한편 이조혜가(487-593)와 삼조승찬(三祖僧璨, ?-606) 사이의 이 ‘혜가면죄’ 일화가 그 대상이 ‘안심’에서 ‘면죄’로 바뀐 것 이외에는 ‘달마안심’ 일화와 패턴이 똑같기 때문에, 후대에 만들어진 일화라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겠지요. 사실 선종사(禪宗史)는 후대에 깨달은 선사들이 한 사람이라도 더 깨우치게 하기 위한 의도를 가지고 정립한 것이니 역사적인 사실과 반드시 일치할 필요는 없겠지요.

아유대죄(我有大罪)

천주교 예수회의 마테오 리치 신부가 편찬한 <이십오언(二十五言)> 가운데 우리 모두로 하여금 ‘죄(罪)’에 대해 깊이 성찰하게 하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전할 말이 있다고 하면서 당신을 헐뜯고 당신의 어떤 과실을 지적한다면, 당신은 ‘나는 오히려 (그 사람이) 아직 알지 못하는 더 큰 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아직 알지 못하고 있는 그것을 알게 된다면, 어찌 나에 대한 비난이 이것에 그치겠습니까?’라고 말해야 합니다. 나의 큰 죄를 인정하면, 진실로 그 지적하는 다른 과실을 말다툼하며 변론하지 않을 것입니다. 서양의 성인聖人 프란치스코(방지거)는 항상 자신에 대해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악한 사람입니다.’라고 말하며 살았습니다.

군더더기: 앞에서 언급한 동양의 스승들이 평등적(平等的) 차원의 세계에 초점을 맞추어 출세간(出世間) 속에서 제자들로 하여금 대자유인의 삶을 누릴 수 있음을 자각하게 했다면, 서양의 스승들은 스스로를 겸허하게 가장 낮은 밑바닥까지 낮추면서 차별적(差別的) 차원의 세계에 초점을 맞추어 세간(世間) 속에서조차 무분별지(無分別智)의 대활약이 가능함을 몸소 보이셨음을 잘 파악할 수 있습니다.

행복조선(幸福朝鮮)

끝으로 필자는 늘 이원적 분별을 일으키면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가끔 불쑥 ‘지옥조선(地獄朝鮮)’을 떠올리기도 하며 불안(不安)해하는 ‘청년(靑年)’들을 위하여, ‘달마안심’이란 주제를 강의 때마다 한 번은 꼭 언급하면서 지난 수 년 간 매년 2학기마다 ‘우주와 인생’이라는 서강대 정규 교양수업을 진행해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강의의 진행방식은 수업을 시작할 때마다 행하는 10분간의 ‘수식관(數息觀)’ 실습을 기본바탕으로, 일련의 성찰 글쓰기 과제를 이어가며 4달 간 일상 속에서 성찰태도를 온몸으로 익히게 합니다.

심지어는 기말시험까지도 부정적인 이원적 분별 태도를 반성하게 하는 성찰의 기회로 활용하곤 합니다. 이제 그 보기로 지난 2018년 2학기 기말시험에서 인간과 짐승을 구별하는 척도로 쓰이는 ‘네 가지 고마움[四恩]’의 하나인, ‘나라의 고마움’에 대해 답하라는 물음에 대한, 한 수강생의 진솔한 답변을 소개드리며 이번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나라의 고마움은 나를 초라하게 만드는 주제 같다. 치안도 좋고 살기도 좋고, 의료지원 제도도 잘되어 있고, 놀 거리도 많은 이 나라에 살면서 일어나는 평상시의 일들에 대해 당연시하며 고마워하지 않고,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 실업률 증가와 같이 부정적인 자료들에 대해서 나라를 비판하며 우리나라를 싫어했었다. 다른 나라들이 우리나라의 교통시스템, 인터넷 인프라와 같은 선진 기술들에 대해 부러워하며 이야기할 때, 그때 잠시만 우쭐하며 좋아하다가도, 금세 ‘헬조선’이라며 나라를 비판하곤 하였다. 인간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의 고마움을 너무 쉽게 잊는 것 같다. 나는 한 번도 나의 팔다리가 존재함을 감사한 적이 없었으나, 수업시간에 시청했던 ‘로봇다리 세진이’로 널리 알려진 장애인 수영선수 김세진은 나를 반성하게 해주었다. 익숙함에 속아 있는 것을 놓치지 말라는 말처럼, 앞으로는 이런 좋은 시스템, 좋은 환경이 잘 구비되어 있는 우리나라를 고마워하며 살겠다.”

[기사제보 cetan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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