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무문관: 해탈과 불성
신무문관: 해탈과 불성
  • 박영재 교수(서강대)
  • 승인 2019.04.08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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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선도회 박영재 교수와 마음공부 38

성찰배경: 필자가 ‘신무문관(新無門關)’ 제창을 시작할 때 <무문관>에 등장하는 선사들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순서를 바꾸어 다루되, 빠진 연결고리에 해당하는 선사들도 함께 언급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런 흐름에 따라 지난번 앞글에서는 중국 선종(禪宗)의 초조(初祖)인 보리달마(菩提達磨, ?-528) 선사와 이조혜가(二祖慧可, 487-593) 선사 사이의 선문답이 담긴 <무문관> 제41칙 ‘달마안심(達磨安心)’ 공안과 비록 <무문관>에는 빠져있으나 <조당집(祖堂集)> ‘혜가장’에 들어있는 혜가 선사와 삼조승찬(三祖僧璨, ?-606) 선사 사이의 유사한 형식의 선문답인 ‘혜가면죄(慧可免罪)’ 공안을 함께 살폈습니다.
이제 이번 글에서는 한 사람이라도 더 깨치게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편찬된 선종사 순서에 따라 <무문관>에 빠져있는 사조도신(四祖道信, 580-651) 선사, 오조홍인(五祖弘忍, 601-674) 선사 및 중국 선종의 실질적인 초조라고 할 수 있는 육조혜능(六祖慧能, 638-713) 선사까지 이어진 전법(傳法) 과정에 관한 문답들을 다루고자 합니다.

승찬해탈(僧璨解脫)

먼저 <조당집> ‘승찬장’에 승찬 선사와 도신 선사 사이에 역시 ‘달마안심’이나 ‘혜가면죄’와 유사한 형식의 선문답인 공안이 다음과 같이 들어있습니다.

“승찬 선사 회상(會上) 가운데 한 사미(沙彌)가 있었는데, 나이는 겨우 14세이고 이름은 도신(道信)이라 했습니다. 하루는 도신이 묻기를, ‘다만 간절히 원하오니 화상께서 저에게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탈법문(解脫法門)을 가르쳐 주십시오.’ 이에 승찬 선사께서 가로되, ‘누가 너를 속박(束縛)했는가?’ 도신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아무도 저를 속박한 이가 없습니다.’ 그러자 승찬 선사께서 가로되, ‘이미 아무도 너를 속박한 이가 없다면 그대가 바로 해탈한 대자유인(大自由人)인데, 어찌하여 다시 해탈을 구하려 하는가?’ 도신이 이 한마디 말씀에 크게 깨달았다.”

* 군더더기: <조당집> ‘승찬장’에 따르면 수(隋, 581-618) 나라 시절 어디 출신인지도 모르고 성도 이름도 모르는 승찬 선사가 혜가 선사를 만나 심법(心法)을 얻은 뒤에는 대중을 많이 모아놓고 정법(正法)을 두루 폈다고 합니다. 그런데 승찬 선사와 도신 사미 사이의 이 ‘승찬해탈(僧璨解脫)’ 일화도 그 대상이 ‘안심(安心)’에서 ‘해탈’로 바뀐 것 이외에는 ‘달마안심(達磨安心)’ 일화와 패턴이 똑같기때문에 초심자라도 후대에 만들어진 일화라는 것을 쉽게 엿볼 수 있겠지요. 참고로 비록 선 수행자들의 필독서 가운데 하나이며, 승찬 선사의 저작으로 알려진 <신심명(信心銘)> 또한, 전법계보의 연속성을 공고히 하기 위해 기록이 거의 없는 승찬 선사의 존재를 크게 부각시키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후대의 깨달은 선사에 의해 지어진 위작(僞作)일 가능성도 끊임없이 지적되어 오고 있습니다.

도신문성(道信問姓)

이어서 <조당집> ‘도신장’에 도신 선사와 홍인 선사 사이에 ‘불성(佛性)’이란 선어(禪語)가 담긴 ‘도신문성(道信問姓)’ 공안이 다음과 같이 들어있습니다.

“도신 선사는 승찬 선사의 법[心印]을 이어받은 뒤 뜻밖에 기주(蘄州) 황매현(黃梅縣)을 지나다가 한 사내아이[동자(童子)]를 만났다. 그런데 나이가 일곱 살 정도이나 말하는 것이 또래와 달리 특출(特出)났다. 도신 선사께서 곧 묻기를, ‘너의 성(姓)이 무엇이냐?’ 동자가 답하기를, ‘저는 성은 예사로운 성이 아닙니다.’[姓非常姓.] 도신 선사께서 가로되, ‘그게 무슨 성이냐?’ 동자가 대답하기를, ‘불성(佛性)입니다.’ 그러자 도신 선사 가로되, ‘너는 정말 성이 없단 말이냐?’ 동자 대답하기를, ‘그 성은 공(空)하기 때문입니다’.[其姓空故.] 이에 도신 선사께서 그 자리에 있던 대중들에게, ‘이 아이는 범상(凡常)치 않구나. 내가 입적[멸도(滅度)]한 다음 20년이 지날 무렵 불사(佛事)를 크게 이룰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다.”

* 군더더기: 참고로 무량종수 스님이 <무문관> 부록에 들어있는 ‘황룡삼관(黃龍三關)’에 덧붙인, ‘오조홍인(五祖弘忍) 선사! 어찌 아버지의 인연에 의지할 것인가?’[五祖豈藉爺緣]란 셋째 구는 홍인 선사에 관한 전설적인 이야기와 관계가 있는데, 남송(南宋)의 대천보제(大川普濟)가 엮은 <오등회원(五燈會元)> ‘도신장’에 다음과 같이 상세히 들어있습니다.

“전생(前生)에 홍인 스님은 파두산(破頭山)에 살았던 재송도자(栽松道者)로 불리었던 도가(道家)의 은자(隱者)였습니다. 전생의 어느 날 그는 산속에서 사조도신 선사를 만나 스님 밑에서 선(禪) 수행을 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도신 선사께서 그대는 지금 선 수행을 하기에 너무 늙었으니 다시 태어나 선 수행을 하라고 권했습니다. 그래서 재송도자는 주(周)씨 성을 가진 처녀의 배를 빌어 아버지 없이 다시 태어났습니다. 그 후 성장해 다시 도신 스님을 만나 마침내 그의 법(法)을 이어받았다고 전합니다.

덧붙여 이 무렵은 뒤늦게 점차 뿌리내리기 시작한 선종이 노자(老子, BC 571?-BC 471?)와 장자(莊子, BC 369-BC 289) 등의 걸출한 성인들에 의해 이미 중국에 깊이 뿌리내린 도교(道敎)와 경쟁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처녀 잉태라는 신비로운 이적(異蹟)까지 포함된 이 일화를 통해 선종이 도교보다 수준 높은 종교임을 드러내기 위한 의도도 숨겨져 있다고 여겨집니다. 더나아가 그리스도교의 경우 동정녀 마리아께서 처녀의 몸으로 예수님을 잉태하셨다고 하는데, 불제자로서 선종사에도 이와 유사한 일화(逸話)가 있다는 것을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네요.

홍인불성(弘忍佛性)

끝으로 <조당집> ‘홍인장’에 출가 직전의 혜능이 홍인 선사와 첫 대면을 하며 주고받은 ‘불성문답(佛性問答)’이 다음과 같이 들어있습니다.

”어느 날 중국의 변방인 영남(嶺南) 지방 출신으로 나이가 32세인 노행자(盧行者)가 도신 선사의 법을 이은 홍인 선사를 친견[예근(禮覲)]하였다. 홍인 선사께서 묻기를, ‘그대는 어디서 왔으며, 무슨 일로 왔는가?’ 노행자가 대답하기를, ‘영남 지방의 신주(新州)에서 왔는데 부처[佛]가 되기를 간절히 염원합니다.’ 그러자 홍인 선사께서 (노행자의 수준을 가늠하기 위해), ‘그대는 (오랑캐들이 사는) 영남 지방 사람이라 불성(佛性)이 없느니라.’라고 짐짓 홀대(忽待)하는 척하셨다. 이에 노행자가 당차게, ‘사람에게는 남북이 있으나 불성에는 남북이 없지 않겠습니까?’[人則有南北 佛性無南北.]하고 응대했다. 이에 홍인 선사께서 ‘그대는 어떻게 공덕(功德)을 지어 부처가 되려하는가?’[汝作何功德.]라고 물으셨다.

그러자 노행자가 당당하게, ‘있는 힘을 다해[갈력(竭力)] 돌을 나르고 방아를 찧어[용미(舂米)] 스승님과 대중들께 공양(供養) 올리는 일을 담당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

* 군더더기: 사실 도신 선사와 홍인의 첫 만남에서 ‘불성(佛性)’에 관한 문답을 하였었는데, 또한 홍인 선사와 혜능과의 첫 만남에서 거듭 ‘불성’에 관한 극적인 문답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미루어 이 역시 연속성 있는 전등(傳燈)을 분명하게 드러내기 위한 의도를 가지고 훗날 깨달은 선사들에 의해 편집되었다고 여겨집니다.

한편 맨 마지막 대목에서 노행자가 행자로서 날마다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책무를 충실히 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는데, 이를 통해 우리는 후대에 이 계보를 잇는 마조(馬祖)-남전(南泉) 선사에 의해 확립된, 조사선(祖師禪) 핵심가풍의 하나인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 정신을 잘 엿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삼독(三毒), 즉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에 중독된 우리들 대부분은 창살 없는 감옥에 구속된 채 하루하루를 허송세월하며 보내고 있습니다. 결국 이번 글에 등장하는 선사들을 통해 우리 모두 해탈, 즉 구속에서 벗어나 대자유를 만끽하기 위해 남녀노소 누구나 지니고 있는 불성을 머리가 아닌 온몸으로 체득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점임을 함께 새기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무문관> 48칙 가운데 두 번에 걸쳐 중량 있게 다루고 있는 중국 선종의 실질적인 초조라고 할 수 있는 육조혜능 선사를 중심으로 보다 심도 있게 살피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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