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과 가산불교문화연구원에 대하여
조계종과 가산불교문화연구원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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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5.25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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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피(相避)와 피혐(避嫌)

정치와 행정 등 나라의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었을 것만 같은 조선 시대에 ‘상피(相避)’라고 하는 특별한 제도가 있었다. 공적인 공간에서 일정한 범위 내의 친인척이 자리를 같이 하지 않도록 규제하는 제도이다.

첫째 일정한 범위 내의 친인척이 같은 관청 안에서 벼슬하지 못하게 하고, 둘째 재판[訟事]의 재판관이 원고나 피고의 일정 범위 내 친인척이거나, 과거(科擧)의 시험관이 응시생의 일정 범위 내 친인척이면 피혐(避嫌)케 하는 것이다. (‘피혐’이란 한 마디로 “논란 중인 사건에 연루된 사람은 혐의가 다 풀릴 때까지 관직을 떠나는 것”이다.) 이것은 조선 최고 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정부 각 부서나 관직에 따라 구체적인 규정이 명문화되어 있었다.

‘상피’를 제도화하고 실제 실행한 것은 “국가기관에 사사로운 마음[私心]이 끼어들어 공명정대함을 잃지 않게 하고, 부정부패를 막자”는 뜻이었다. 우리 모두 잘 알듯이 ‘사사로운 마음[私心]’은 ‘삿된 마음[邪心]’이고 ‘죽은 마음[死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근대’와 ‘민주주의’를 전면에 내세운 대한민국 정부가 들어선 이래 역대 정권에서 단 한 차례도 이 원칙이 지켜진 적이 없었던 것을 보면, 우리 정치와 행정은 오히려 조선시대보다도 훨씬 뒤떨어진 것이 아닐까 싶다.

이승만 정권에서부터 바로 앞의 노무현 정권에 이르기까지 친인척이나 최측근 인사 문제로 시끄럽지 않았던 적이 없었고, “헛소문에 불과하다. 음모이다”라고 발뺌하다 나중에 모두 사실로 밝혀졌던 것 또한 단 한 차례 예외가 없었다. [현재 돌아가는 모양새로 보아 MB 정권의 미래도 이점에서 별로 마음을 놓을 수 없음은 물론이다.]

바깥세상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으니 이쯤에서 그만 하고, 바깥세상에서 ‘성스럽게’ 여기는 불교계 내부에는 혹 이런 일이 없는지 살펴보자. 그 중에서도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대한불교조계종과  조계종 수반이 설립한 가산불교문화연구원의 관계는 어떤가? 물론 이 두 기관의 관계에 조선시대의 ‘상피’ ․ ‘피혐’ 제도와 똑같은 원칙을 적용할 수는 없겠지만 조계종 총무원장이 가산연구원 원장과 동일 인물이라는 사실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현 총무원장이 세운 가산연구원은 그 동안 아주 의미 있고 한국 불교사에 오래도록 남을 큰 업적을 많이 남겼다. 그 중에서도 『가산불교대사림(迦山佛敎大辭林)』과 『교감역대고승비문(校勘歷代高僧碑文)』편찬 등의 사업은 다른 어느 곳에서도 하기 힘든 중요한 불사이다. 그래서 이 사업을 발의하고 추진한 연구원장과 연구원들의 노고에 찬탄을 보내지 않을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고, 이와 같은 가산연구원이 펼치는 불사의 의미를 인정한 수많은 불자들이 성금과 후원금을 내고 조계종 교육원에서도 매년 거액을 지원해왔을 것이다.

후원회비는 아무리 많아도 문제될 것이 없고, 앞으로 후원회원이 더 많이 늘어나고 총 후원금도 많이 늘어나 가산연구원의 사업이 더 알찬 결실을 맺기를 간절히 바라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이 점에서는 나 또한 다르지 않다.

문제는 조계종 교육원의 지원금이다. 조계종 교육원 불학연구소의 외부 지원금 가운데 중앙승가대 운영 지원금 다음으로 많은 금액이 해마다 가산연구원으로 나간다. 물론 이것은 “현 총무원장이 취임하기 이전부터 계속되어온 것이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논리를 펴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이 주장은 합리적으로 비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오해를 사거나 혐의를 받을 위험이 있는 일은 피하는 것이 과거 전통시대 관료와 선비들에게 요구되는 도덕 기준이었음을 고려한다면, 최소한 그 시절 정부 관리나 선비에 비하여 더 높은 윤리 ․ 도덕 수준을 갖추어야 하고 또 그런 수준을 갖추었을 것으로 인정받고 있는 승단에서는 ‘피해야 할 일’이다.

조선 시대에 훌륭한 재상 중 한 명으로 인정받는 김육은 자신이 관련된 일로 논란이 일자 깨끗이 사직을 하고 난 뒤에 자신의 주장을 분명하게 밝혔다. 김육의 사직은 남의 강권이나 여론에 밀려서 억지로 이루어진 일이 아니고 100% 자발적인 것이었으니, 선비 관료의 ‘당당하고 의연한’ 행동이었던 것이다.

퇴계 이황도 안동의 도산에 머물 때 산 아래 국영 저수지가 있었는데, 개인이 사사로이 고기를 잡거나 할 수 없는 시설이었다. 퇴계는 여름만 되면 거처를 다른 곳으로 옮겼다. 혹시라도 “퇴계가 고기를 잡아먹었다”는 혐의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퇴계의 몸가짐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일화이다.

김육과 퇴계의 일화에서 보듯이, 현 총무원장 취임 이후 가산연구원은 조계종에 대한 지원금 신청을 중지했어야 옳다. 가산연구원이 하고 있는 불사가 아무리 뜻 깊고 중요하다고 할지라도 남에게 혐의를 받을 수 있는 자리는 피했어야 옳다. 그래야 총무원과 교육원 등의 실무자들이 다른 단체와 기관에 대한 지원금을 공평하게 심사하고 평가할 수 있었다. 현직 총무원장 명의의 지원금 신청을 엄격하게 심사할 배짱을 가진 실무자가 어디 있겠는가? 형식적으로 평가하고 심사하여, 요구한 금액을 지급하고 감사 또한 대충 이루어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렇게 되면 가산연구원 한 곳이 아니라 다른 기관에 대해서도 ‘형평성의 원칙’에 따라 정치적 ․ 형식적 평가와 심사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가산연구원은 지원금 문제뿐만 아니라 다른 몇 가지 사안에서도 혐의(嫌疑)를 살 만한 일을 하여, 조계종 중앙종회와 언론에 거론된 적이 있다. 그때마다 혐의를 부인하며 문제를 거론한 언론사에 제재조치를 취하곤 하였지만, 그 혐의가 사실인지 아닌지는 종권 이양 뒤에 다시 확인해볼 일이다.

앞으로 몇 달 뒤면 조계종 총무원장을 다시 뽑는다. 다음에 총무원장이 될 분은 혹 이번과 같은 혐의를 받는 일을 하지 않기 바란다. 현 원장 또한 스스로 “다시 원장에 출마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고 공언하였으니 그 말을 믿어야 하겠지만, 혹 상황이 바뀌어 그 약속을 번복하고 재출마할 경우에는 “임기 동안 가산연구원에 대한 종단의 지원은 한 푼도 받지 않겠다”는 공약을 해주기 바란다. 혹 재임에 성공할 경우 이 공약을 틀림없이 지켜야 한다는 사실은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 解憂

*이 글은 불교지도자넷(www.choice33.net)에 실린 글로, 필자와 불교지도자넷의 협조를 얻어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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