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氣)가 펄펄 솟는 건축유산 그리다
기(氣)가 펄펄 솟는 건축유산 그리다
  • 박선영 기자
  • 승인 2019.04.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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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이름 딴 화법 완성한 펜화가 김영택

사위가 조용해지고, 사각사각 가는 펜 소리가 숨소리마저 삼킨다.
김영택 화백은 펜촉을 깎아 머리카락보다 가는 0.03mm의 펜에 먹을 묻혀 선을 긋는다. 수많은 선이 모여 사찰의 장대석이 되고 대들보가 되고 서까래, 지붕이 된다. 펜은 점점 날아다니며 손이 펜을 움직이는 게 아니라 펜이 손을 움직이고 나무와 바위, 그리고 숲이 점차 모습을 드러낸다. 한 작품을 완성하는데 평균 50만 번의 펜선이 모여야 한다. 면으로 된 세상을 선으로 세분화하고 다시 면을 이루는 작업.

펜선을 통해 배운 인생

김 화백은 일찌감치 홍익대 미대 출신 산업 디자이너로 관련 회사를 창업해 성공을 이뤘다. 국내 최초로 세계 그래픽디자이너 54인으로 선정돼, 디자이너와 사업가로 남부럽지 않았다. 하지만 다시 등장하는 ‘운명’, 1995년 비엔나에서 열린 세계디자인비엔날레에 참석했다가 프랑스에서 본 펜화에 매료된 것이다.

50대에 펜화작가로 전업하면서 어려움도 많았다. 돌보지 않은 회사는 문을 닫고 일간지에 연재를 하며 전업작가로 이름을 알린 후에도 쥐꼬리만한 고료만으로는 경제적으로 어렵고 그로 인해 주변과의 관계가 원활하지 않았다. 그런 고통에서 그가 떠올린 것은 ‘업장 소멸’이었다. “타인이 나를 핍박하더라도 그것은 나의 업장에 의해 생긴 거니, 업장을 없애면 핍박이 없어지겠지”라는 생각으로 대항하지 않았다. 상대방이나 관계를 흐트러뜨리지 않고 자신을 다스리며 시간을 견뎠더니 결국 핍박은 없어졌다.

2004년 첫 전시회가 당시 전시회장으로는 이름이 드높았던 학고재의 3개 층에서, 4주간 ㅏ열렸다. IMF 이후라 작품판매는 어려울 거라는 게 중론이었다. 하지만 그는 본인의 그림에 자신이 있었다. 작품은 물론 도록과 엽서까지 모두 판매돼 주변에서 모두 놀랐지만 정작 그 자신은 예상했던 결과였다.

그의 그림은 건축유산을 주제로 한다.
우리나라의 사찰을 비롯한 궁궐, 서원, 정자 등 건축유산 곳곳을 안다닌 곳이 없다. 또 건축물의 설계를 이해하기 위해 내부구조까지 사진 찍어 남겼다.

그러던 중 경남 함양에 풍광 수려한 정자 ‘농월정’이 2003년 방화로 인해 소실이 됐다. 김영택 화백은 농월정이 불에 탔다는 소식을 듣고 예전에 그림으로 옮기기 전 찍어놓은 슬라이드를 살펴봤다. 그런데 농월정의 내부 모습이 아주 세밀하게 담겨져 있었다. 본인도 그 정도일 줄을 몰랐다. 그는 함양군에 사진을 제공했고 2015년, 농월정이 복원됐다.

“오래된 건물에는 영(靈)이 있다고 하던데 정말 그런 것 같더군요. 농월정이 스스로의 운명을 알고 제게 사진 찍어 남기게 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 미황사, 종이에 먹펜, 36×48cm, 2005

기운까지 전하기 위한 노력 

김영택 화백은 보이지 않지만 건축유산의 기운이 세기 때문에 기(氣), 힘, 혼(魂)이 있어야 문화재를 화폭에 옮길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특히 몇 군데 바위산 앞의 건축물은 기운이 어마어마하다. 합천의 영암사터는 그가 아주 사랑하는 곳이다. 뒤에 펼쳐진 바위산인 황매산을 그릴 때 원근을 표현하기 어려워 펜촉을 갈아가며 그렸는데 뒤로 갈수록 점점 펜촉을 얇게 갈아야 했다. 어려운 작업을 마치고 바라보는 그림일수록 기가 펄펄 샘솟는, 뛰어난 작품이 되었다.

하지만 막상 그림 작업에 들어가면 무념무상, 무색무취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빨간 안경을 끼면 빨갛게 보이고 파란 안경을 끼면 파랗게 보이듯, 문화재를 왜곡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그리려면 자신의 사고가 개입하면 안 된다는 거다. 그는 펜화를 시작한 즈음부터 채식을 해오고 있는데 덕분에 맑은 기운의 작품이 나온다고 했다. 또 불가에서 말하는 오계(五戒)를 지키려고 노력한다.

그런 생활 덕인지 통도사에서 2002년부터 1년 반 동안 살던 시절, 통도사 영산전 팔상탱을 그린 유성 스님이 자신의 전생이라는 말을 들었다. 우리나라 불화 중 가장 세밀하고 색이 좋은 작품으로 그는 통도사 팔상탱을 꼽았다. 그런 세밀함이 손에 익어 지금의 펜화를 그리게 된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했다.

건축유산을 그대로 옮겨놓는다면 사진과 다를 바가 없을 텐데 그는 사람의 눈이 인식하는 모습과 직접 볼 때의 감흥을 살릴 방법을 고심했다. 사람의 눈은 중심만 고해상도의 화소를 가졌기 때문에 현장의 감흥을 제대로 표현하려면 사람 시각으로 원근법을 표현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김영택 화백은 그런 자신만의 도법(圖法)을 완성해 ‘김영택류’를 탄생시켰다.

그는 앞으로 목조건축물이 제일 많은 일본에 자신의 펜화를 보급할 생각이다. 그리고 자신의 작품을 기증해 세계 유일의 ‘세계펜화박물관’을 세우고 싶어 했다.

작년에는 스스로에게 안식년을 주어 잠시 휴식을 취했지만 이제 다시 펜을 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4월 10일부터 16일까지 자신이 회장으로 있는 펜화작가협회전이 경인미술관에서 열리며, 5월 1일부터 7일까지 펜화가로 산 30년을 기념해 같은 곳에서 개인전을 개최한다. 그때 신작 50점을 선보일 예정이다.

※ 이 기사는 제휴매체인 <불교저널>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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