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신도 인터넷 사용 멀지 않았다
전 신도 인터넷 사용 멀지 않았다
  • 윤남진
  • 승인 2009.07.07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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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과 비전을 담는 새로운 시스템의 설계_➂-2

지난 회에 교단과 국가권력과의 관계문제는 이들 양자관계에 긴밀히 결합되어 있는 시민사회와의 관계문제와 함께 분석, 고려되어야 하는 문제라는 점을 지적하고 마무리 한 바 있습니다. 사회적으로는 '87년 체제'(절차적 민주주의의 완성을 핵심으로 하며, 두 번의 정권교체를 통해 이 절차적 정당성이 공고히 된 87년 6.10민주화운동으로 성립된 정치체제의 뜻으로 사용)는 정치적으로 정상적인 선거에 의한 '평화적(!) 정권교체'를 통해 형식적으로 공고화됩니다.

이것은 우리의 사회역사에서, 물론 불교사에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이로써 우리의 정신과 문화의 영역에서도 비로소 정치권력이 불변의 억압적 권위체계가 아니라 시민의 선택에 따라 그 ‘권력을 주기도 하고 뺏기도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의 여유 공간’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최근에는 이마저 다시 사라지는 거 아니냐는 우려가 있습니다만 여기서 다룰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다만 저는 그렇게까지는 생각지 않는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87년 체제'의 이런 민주주의의 절차적 형식은 동시에 민주주의의 내용을 풍부하게 만드는 기능을 합니다. 그 상징적 현상이 시민사회의 성장입니다. 시민사회란 대체로 제1섹터인 정치사회(국가; 대표적 조직체로 '정부'), 제2섹터인 경제사회(시장; 대표적 조직체로 '기업')를 제외한 제3섹터를 의미하며 대표적으로 'NGO(비정부조직)' 또는 'NPO(비영리조직)‘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시민사회의 주도계층으로서 '중간계층(중산층)'을 '시민'으로 상정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시민이란 자유롭고 평등한 주권자로서의 국민 개개인을 의미하는데, 이것과는 구분되는 적극적인 생활세계의 주체로서의 '시민'을 이렇게 상정하는 것입니다. 시민사회영역의 성장은 2000년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의 제정을 계기로 해서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하에서 더욱 성장합니다.

시민사회의 성장이 ‘정치사회’(제1섹터)에 미친 영향은 지대합니다. 정치사회의 존립에 매우 중요한 개념이 ‘위임’ 또는 ‘대표성’이라는 것입니다. 시민으로부터 입법권 혹은 집행권을 위임받은 자에 의한 통치가 이루어지기 때문인데, 그 기반은 (위임의 과정이나 집행의 과정에서) 시민의 ‘참여’에 있습니다. 그런데 참다운 ‘참여’는 정보의 ‘투명한 공개’가 필수적 요소가 되어 성립합니다.

참다운 참여는 투명한 정보공개 '전제'

과거에는 통치에 관한 중요한 정책들이 평등하게 공개(접근)되지 않고 권력의 앨리트그룹과 그들에게 (혈연, 지연, 학연 등) 연고에 의해 연결된 이들에게 왜곡된 방식으로, 편향적으로 제공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연고는 연고를 더욱 강화시켰고 그것의 지역화에 따른 차별이 이른바 지역감정(대립)의 연원이 됩니다.

시민사회의 성장은 무엇보다 ‘통치(government)에 관한 정보의 투명한 공개’라는 매우 중요한 요소를 확장시켰습니다. 저는 이 점이 시민사회의 성장을 상징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앞으로의 성장을 또한 보장하는 핵심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정보의 투명한 공개는 인터넷과 관계 맺으면서 질적으로 다른 차원으로 변화됩니다. 정보에 대한 대중적 분석과 평가의 과정을 거쳐 그에 대한 반은 또는 대응행동에까지 순식간에 확장시킵니다. 이 상징적이면서 세계사적인 사건이 2008년도 여름의 ‘촛불문화’였다고 생각합니다.          

‘촛불문화’를 새로운 현상으로 주목한 것은 외국언론인데, 익히 영국언론 <가디언>이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을 알리며 ‘인터넷에 의한 웹 데모크라시(웹민주주의, Webocracy)로 탄생한 세계 최초의 대통령’이라고 표현한 바 있고, 프랑스의 뉴스전문 방송 <프랑스24>가 촛불시위를 분석하여“한국에 인터넷을 통한 새로운 형식의 민주주의가 등장했다.”(In South Korea, a new form of democratic expression has emerged via internet.)며 이것을 ‘브로드밴드(broadband· 광역 네트워크) 민주주의’라고 명명한 바 있습니다.
 
이들은 ‘브로드밴드민주주의’를 ‘어떤 행동을 취하기 전에 인터넷에서 사람들과 먼저 상의하고,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을 다시 인터넷에 전해 정보에서 소외되는 사람이 없도록 하는 것’이라는 친절한 정의까지 붙여서 설명합니다. 이런 종류의 민주주의는 ‘다양한 소스로부터 받은 데이터를 소비하고 재구성하는 것과 동시에 자신의 데이터와 서비스도 타인이 재구성할 수 있도록 제공’하는 ‘웹 2.0’의 개념이 사회정치적 문제와 그 대응행동 차원에서 구현된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시장의 영역, 마케팅의 영역 등에서도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시민사회의 성장과 인터넷에 기반한 지식정보사회의 새로운 문화가 사회정치적으로 이렇게 개화하면서, 우리 사회는 또 한편 우리사회를 지탱해왔던 ‘사회적 권위체계’가 흔들리게 됩니다. 이것은 세상에서 평가하듯이 노무현 대통령에 의해서라기보다 이미 생성되고 있던 새로운 문화에 의해서, 그에 민감할 줄 알았던 노무현 대통령이 빠르게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대통령의 권력은 제한적이지만 우리 사회의 거대한 권위 체계를 지탱하고 있는  이른바 ‘전문가사회’에 대한 대중적 도전상황이 대두되었다는 것은 그 영향의 폭이 비교할 수 없이 큰 것입니다.
 
특히 ‘전문가사회’는 면허 혹은 자격증 등과 같은 ‘배타적 독점권’에 의해 부여된 합법적 권위를 가지고 있음과 동시에 사회적 신뢰(신뢰사회)의 뼈대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 ‘배타적 독점권’이 ‘면허나 자격증’으로서는 유지 될지언정 곧바로 사회적 신뢰로 연결되지 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시민들은 ‘전문가(사회)’의 말을 덮어놓고 믿지 않고, 우선 인터넷에서 관련 지식을 뒤져보고 난 뒤에 신뢰를 줄 것인가 여부를 결정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종교에, 종교적 권위체계_특히 성직적 권위_에 미칠 영향도 고려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게 어떤 현상인지 간단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어떤 <1인 블로거>가 있습니다. 이 블로거는 환경문제 중에서 ‘쓰레기 시멘트’ 문제 하나에만 집중해서 기사를 올리고 있습니다. 시멘트제조과정에 대한 각종 지식과 정보는 물론이고 위험을 감수하면서 잠입취재도 감행합니다. 그렇게 계속 이 분야에 한 우물을 파다보니 대학교수들조차 이 블로거에게 연구논문의 자료를 요청하며, 국정감사에서는 증인으로 초대되어 나가 문제를 지적하기에 이릅니다. 이것은 간단한 하나의 예에 지나지 않습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나 인터넷 언론은 ‘블로거 뉴스(기자)’를 생성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고, ‘지식인’이나 ‘키워드가이드’ 같은 아주 미세한 분야의 ‘전문가’를 인터넷 상에서 조직하기도 합니다. 물론 이들 ‘웹상의 전문가’의 ‘면허(?)’는 인터넷을 이용하는 대중의 검증을 통해 획득되어지는 것이겠지요. 

공익단체와 집단이익단체의 갈림길
              
그러면 이제, 이상에서 설명한 것들이 종교일반, 불교와 교단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어떤 영향을 주고  받을 것인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기로 합니다. 먼저 앞서 설명한 세 개의 섹터 중에서 종교단체는 넓게는 제3섹터인 비영리영역에 포함됩니다. 그러나 비영리단체를 공익단체와 집단이익추구단체(직능단체, 친목단체 등)로 세분할 때, 종교단체는 그 경계선에 놓습니다. 즉 종교단체는 ‘비영리적 활동’을 힘으로써만 ‘공익단체’로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이며, 그렇지 않을 경우 대체적으로 ‘집단이익추구단체’로서의 성격이 짙다고 보는 것입니다. 서구사회에서도 종교단체에 대한 지원 및 면세 등 각종 혜택은 그들의 비영리적, 공익적 활동으로 인해 부여되는 것이지 무조건적인 것은 아닙니다.

유의할 것은 종교단체를 ‘공익과 집단이익 추구의 경계선’에 놓는 구분은 대체로 시민사회의 관점이자 시민사회단체의 종교단체에 대한 일종의 평가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입니다. 종교는 시민사회영역의 중요한 인적, 물적 자원의 제공자이기도 하지만, 언제라도 시민사회의 (감시와 비판의) 활동대상 영역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앞서 설명한 시민사회의 성장(정보의 투명한 공개의 촉진)과 인터넷에 기반한 지식정보사회의 새로운 문화가 종교영역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를 생각해 보면 우선, 종교단체의 활동 중에서 ‘이승(지상)의 문제’와 관련한 모든 것은 통치의 영역과 마찬가지로 ‘정보의 투명한 공개’가 필연적으로 촉진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어떻게 보면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한 보수개신교회의 여러 목회자들이 이명박 후보를 그들의 설교대로 ‘(선거법 위반으로) 감옥에 갈 각오’하고 신을 빙자한 협박의 수준으로 까지 강력히 지지한 이유도 이런 ‘새로운 문화의 질풍노도’를 권력을 이용하여 저지해 보고자 하는 몸부림이었을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 헌법과 정치이념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하는 ‘존 로크’가 (종교에서의 상호간) 관용이 가능한 조건 중의 하나로 ‘하나님을 위한다는 명분 뒤에 숨어있는 종교적 야심과 복수심을 벗겨내어...그 추함이 세상에 공개적으로 알려져 세상 사람들의 멸시를 받지 않을 수 없게 될 때’라고 언명하고 있는데, 저는 이것이 종교의 세속적 본질에 대한 참으로 정확한 안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교회나 종교단체가 영혼의 문제를 권력적 수단과 세속적 욕망을 미끼로 해서 다룬다는 것은 그 자신이 이미 세속적 욕망의 강력한 추종자임을 선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권력에 의존하여 언론을 통제하고 인터넷 공간에 권력을 앞장 세워 재갈을 물린다고 해서 시대의 물결을 막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현실교회의 진지한 변화 없이, 이미 대단히 많은 수의 회원을 둔 안티(반)기독교카페가 즐비한 현실을 권력적 방법으로 변화시킬 수는 없을 것입니다.

개신교, 2008년 조사서 불교에 우위

그러나, 기왕 개신교 얘기가 나왔으니 이 문제(세속적 정치권력의 지향과 정치권력의 선교수단화 문제)에 대해 우려되는 지점을 한 가지 지적하고 넘어가고자 합니다. 우선 한 가지 통계를 예로 들겠습니다. 2008년도에 실시한 ‘한국종합사회조사’ 결과를 보면 불교 23.8%, 개신교 25.9%, 천주교 9.0%로 개신교가 불교를 추월하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결과는 응답자의 직업에 따른 종교비율 중에서 관리/전문직의 경우입니다. 결과를 보면 불교인 중에서 관리/전문직은 7.1%인 반면, 개신교는 35.3%, 천주교는 11.8%에 달한다는 것입니다. 사무직/준전문직에서도 불교 18.8%, 개신교 26.9%, 천주교 7.2%로 나타났고, 반면 불교는 판매서비스직에서 31.2%로 전체 불교인구 비율 보다 높았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지표가 강남의 5대교회니 하는 경우와 연결되어 우리 사회에서 세속적 부와 권력을 가진 이들로 금단의 영역과 같은 귀족계급, 귀족사회를 배타적으로 형성하는 데에 종교가 그 중심적 역할, 예를 들어 교회가 (선민의식을 매개로 한) 도덕적 세례역할을 주선하는 것은 아닌지, 그로 인해 종교간 불관용과 배제 그리고 갈등의 골이 '정치사회(제1섹터)' 내에서 더욱 구조화되고 깊어지는 방향으로 치달아가는 것은 아닌지 염려된다는 점입니다. 즉 ‘1등 종교, 1등 국민’과 ‘2등 종교, 2등 국민’과 같은 넘볼 수 없는 확연한 장벽을 쌓아올리려는 의도는 아닌가 하는 점을 주시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끝으로 시민사회의 성장(정보의 투명한 공개의 촉진)과 인터넷에 기반한 지식정보사회의 새로운 문화가 불교교단(종단)에는 어떤 영향을 주고받을 것인지 하는 이야기를 할 차례인데 이는 앞에서 설명한 종교영역 일반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다만 현재 불교계 인터넷 언론이 다루고 있는 공개와 비판의 수준이 어느 시점, 어느 계기로 '비제도영역의 준전문가적 그룹'(이런 종류의 사람들을 그냥 '강호의 숨은 고수'라고 하는 게 편합니다.)과 만나 질적으로 한 단계 높게 전환될 것인가 하는 점이 남은 문제가 아닌가 합니다.

다만, 한 가지 꼭 확인하고 넘어가고자 하는 것은 불교인터넷 언론이나 인터넷 상에서 공개적으로 비판 혹은 제안되어 형성되는 여론이 종단정치 혹은 종단운영, 혹은 종단운영의 주도적인 인사들에게 무슨 영향을 미치겠느냐는 생각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비록 50% 이상이 인터넷을 이용하지 않는 50~60대(예;08년 현재, 인터넷을 이용하지 않는 비율은 50대 여성의 66.5%, 60세 이상 여성의 88.8%)가 주요신도층을 이루고 있어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연령대와 계층에서 인터넷을 이용하게 될 시기가 멀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공개와 비판에 대한 무반응과 무신경이 계속된다면 조만간 현재의 반기독교사이트와 같은 규모의 반불교사이트를 상대해야하는 상황을 스스로 불러들일 것이라는 점을 확언할 수 있습니다. 철저히 토굴과 선방울타리 안에, 산중사찰 울타리 안에 갇혀 지내지 않는 이상, 이 인드라의 그물을 벗어날 길은 없어 보이는 것입니다. ■

윤남진_불교시사 블로거

전국불교운동연합, 깨달음의 사회화운동, 조계종총무원과 포교원 등에서 일했다. 현재 참여불교재가연대 등에서 종교 및 NGO 분야로 특화된 사회통계 및 여론의 조사/분석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이 기사에 대한 반론 및 기사제보 newsrep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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