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뿌리 깊은 곳을 꿈꾸며
[기고] 뿌리 깊은 곳을 꿈꾸며
  • 김형남/참여불교재가연대 공동대표, 변호사
  • 승인 2019.04.27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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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깊은 곳을 꿈꾸며

1. 매몰차게 조계종을 떠났다.

김형남/참여불교재가연대 공동대표, 변호사
김형남/참여불교재가연대 공동대표, 변호사

조계종 법률책임전문위원으로 있던 2006년 말이었다. 사표가 두 번 반려되었다...

일 년 반 전 법장 총무원장 스님 입적하시기 전에 사표를 냈어야 하는데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그때 그만뒀으면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텐데.. 종단 곳곳에 어설픈 초보 법률가의 흔적이 남아 있고, 무엇보다 지관스님에게 정이 많이 들었다.

뭐하나 제대로 마무리하지도 못하고 지관스님께 결별을 고한다는 것이 무척 힘들었다.

그러나 밥부터 먹자고 종회를 대충 마치며 낄낄거리는 종회의원들의 소리가 귀를 맴돈다. 내가 이렇게 어찌해 볼 도리 없이 나태해진 곳에서 오래 머물며 같이 게을러진다면 부처님께 죄를 짓는 일이라 생각하며 이를 악물고, 사표 들고 지관스님께 면담을 신청했다.

다짜고짜 맨 바닥에서 삼배부터 드리고 울었다... 종단에 거의 몇 안 남으신 어른 스님의 어깨는 꾸부정했고, 목덜미는 너무나 가늘었다. 사지에 홀로 남기고 떠난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미 두 번의 사표를 반려하고도, 죽자 살자 떠나겠다는 나를 또 잡을 요량은 없으셨나 보다. 떠나도 조계종을 도와달라고 하신다. 대답은 안하고 자리를 떴다. 뭘 어떻게?

조계종에 들어가 불교를 통해 대한민국을 다 함께 사는 세상으로 만들겠다는 철없는 실험은 그렇게 끝났다.

2. 그땐 뿌리가 필요한 줄 몰랐다.

그 후로 지관스님은 내가 개업한 법률사무실로 2번을 찾아오셨다. 아무 용건도 없이 편하게 스님께서 사주시는 밥을 얻어먹었다. 그리고 본인을 상대로 한 총무원장 당선무효소송을 나에게 맡기셨다. 스님은 소송 진행 내내 한 번도 어떻게 되냐고 물으신 적 없었다. 2심까지 끝나고 또 밥 한 끼 얻어먹었다.

2008년 캄보디아에 분사무소를 만들었다. 우리나라 강남개발 때처럼 부동산 투기 광풍이 캄보디아에 밀어 닥치던 시기였다. 도로가 뚫릴 만한 토지를 파악해서 투자를 권유하고 법률적으로 안전하게 투자자들이 토지를 보유하고 처분할 수 있게 하는 게 그 나라에 간 목적이었다.

인맥을 만드는 것이 급선무였다. 훈센정권의 핵심관료들과 친분을 만들면서 텝퐁 왕사(왕이 스승)스님에게도 욕심을 내었다. 사진기를 들고 왕사스님을 뵈러 갔다. 왕사스님은 대뜸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는 국제투기자본 때문에 곡물 값이 너무 뛰어서 아이들 급식이 중단되었단다. 그리고는 눈물을 글썽거리신다. 김변호사는 캄보디아를 떠나지 말고 도와달라고 하신다.

투기자본이 문제라면 내가 투기를 하러 온 것이 아닌가? 그 당시는 조계종을 떠나면서 약간의 복수심과 돈이 있으면 이리 저리 하자는 내 말을 불교계도 듣겠지 하는 치기가 있었다. 조계종을 그만두면서 집에는 직장을 그만둔다는 얘기를 차마 하지 못했다. 매일 양복 입고 출근하는 척 집에서 나가 길과 산을 거닐면서, 들었던 비참했던 기억이 그런 맘을 먹게 된 원인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렇게 독하게 먹었던 마음도 텝퐁스님의 눈물자국에 한 방에 무너졌다. 난 노스님께 약한 가 보다. 지관스님과 텝퐁스님은 조계종과 캄보디아에 양분을 섭취할 뿌리가 있었고 난 없었다. 그저 꽃만 피우자고 했다. 돌아가야 할 초심이 뭔지 잠시 잊어버렸던 것이다. 미련없이 캄보디아에서 철수했다. 뿌리와 초심을 찾아야한다는 맘으로....

3. 냉소적인 것이 잘난 줄만 알았다.

그리고 그냥 직업에 충실하며 민주와 소통을 외면하는 이명박 대통령을 미워하며 참 열심히 살았다.

명진스님이 주지고 진화스님이 부주지를 맡을 당시의 봉은사에 대해 희망을 가진 적이 있다. 투명하고 민주적이며 승속의 구별없이 소통을 하는 사찰이 도심 한 복판에 딱 버티고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며... 잠시 조계종 중앙이 어떤 상황인 지를 잊어버린 것 같다.

2011년 봉은사 사태가 터졌다. 봉은사에 자문을 했으면서도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다. 나름 잘나가는 변호사로 착각하고 있던 나로서는 종단과 싸우는 모난 변호사로 비춰지기 싫었다. 그리고 명진스님이라는 한 성직자에 반한 신도들만으로는 종단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봉은사를 통해 한국불교를 바꿀 수 있다는 착각이 깨지면서, 조계종에서 당연히 벌어질 일이 벌어진 것이라는 냉소가 앞섰다.

4. 위선에 뿌리가 모두 썩었다.

2012년 백양사 도박 동영상 사태와 표충사 토지 횡령 사건이 일어나고, 표충사 문제의 법률적 뒤처리를 맡았다. 그 당시 조계종의 지독한 위선을 보았다.

불과 몇 사람의 사리와 물욕이 앞선 사람들이 법과 제도를 방패삼아 지배하는 조계종, 선방과 강원 그리고 원로스님들을 쇼윈도우 진열장 마냥 홍보하면서, 그냥 그냥 똑 같이 줄 세우기 하면서 포장지만 바꾸어 대고 있었다. 그냥 불자라고 보기에도 어설픈 두목들에 불과한 이들이 조계종의 거창한 직책들로 명리까지 차지하고 있는데도 누군가는 그것이 불교인 양 분칠을 해대기 바빴다.

물론 조계종만 그랬던 것이 아니다. 사회 곳 곳 특히 종교단체에서는 이러한 위선이 똑 같이 넘쳐났고, 사람들을 타락시키고 있었다. 이러한 위선은 내가 국민이기를 포기하지 않은 이상 반드시 바꾸어야 했다. 그 때 지관스님이 말씀하신 조계종을 도와달라는 말씀이 무엇인 지 알게 되었다.

이래서는 고사될 것이 뻔한 당신의 뿌리같은 뿌리를 조계종에 만들어달라는 말씀이고, 나에게도 스스로의 뿌리를 만들라는 말씀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위선을 걷어내지 않으면 안되었다.

김 종 전 차관과 조계사 주지 지현 스님, 창희건설 황호영 대표를 고발한 종교투명성센터와 불교계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검찰청 입구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 종 전 차관과 조계사 주지 지현 스님, 창희건설 황호영 대표를 고발한 종교투명성센터와 불교계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검찰청 입구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5. 새 뿌리가 나오기 위해서는 갈라진 상채기가 필요하다.

부처님이 체현하신 민주성과 공유 그리고 소통이 불교의 본 모습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참 오랫동안 초심을 잃은 종교지도자들과 싸워왔다. 종교 서로 간에 악영향을 주고받는 것을 막기 위해 이웃종교의 지도자들과도 가리지 않고 싸웠다.

그들은 바꾸고자 하는 이들에게 훼불, 해종세력 타령을 시작했다, 부처님 모습이 자신들에게 터럭조차 보이지 않고 국법과 계율을 무시하면서 뭔 훼불인 지, 돈과 권력을 동시에 잡고 있는 몇 몇 사람에게 머리 조아리고 사는 모습을 부처님이 체현하신 공동체로 바꾸자는 것이 뭔 해종인지...

서설이 길었다. 몇 사람의 지배권력자 조차도 쫓아내려고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공동생활을 하면서 같이 나누고 의논하면서, 누구의 얘기에도 귀기우리라는 것이다.

6. 이제 밑바닥까지 다 내려왔다

그러나 배후 권력자들과 그들이 내세운 이들은 여전히 거의 밑바닥 수준의 대응을 계속 하고 있다.

그들은 종무원 노조가 생수판매 로얄티를 자신의 특수수관계회사에 지급하게 하였다며 배후권력자를 고발한 것을 나쁜 노조와 노조원 문제로 만들고 있다. 중요한 것은 고발한 내용이 진실인가, 그리고 그러한 고발이 종단을 위해 바람직한 가이지 고대생이 했던 연대생이 했던, 경상도사람이 했던 전라도 사람이 했던 무슨 상관인가?

노조가 언제 자신만이 절대 선이라고 정의라고 주장한 적이 있는 가? 종교단체에 속한 노동자인만큼 종교단체의 도덕성이 노동의 질을 보장하는 것이고, 노조가 이를 위해 나선 것에 불과한 것이다. 이 와중에 그들의 인권감수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본인이 노동자로서 자각하고, 노동을 하고 있으면 노동자다. 본인을 노동자로 알고 있는 사람에게 종교단체에 근무한다는 이유로 넌 노동자가 아니라고 주장한다고 될 일인가? 노조가 설립되었으면 당연히 대화해야 한다. 총무원장 스님이 노사협상 자리에 참석해서, 영 어색해 하면서 옆의 도움을 받으면서 열심히 노조를 설득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인가?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는 왜 만들었는가? 세속과 열심히 소통하기 위하여 만든 것이 아닌가? 총무원장 스님이 진정한 의미의 세속성을 갖으셨던 부처님의 모습을 보여 주면 안 되는가?

노동인권과 관련한 헌법은 무시하면서 전통문화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해달라고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외부 제3자 개입 운운은 전두환 시절의 노동인권 탄압에 있어서 제일 앞세웠던 주장이다. 자기 능력이 부족하면 동일한 처지의 다른 이에게 도움을 받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이것이 사회적 부조이고 우리 헌법이다.

국민 세금의 사용처는 철저히 감시받으면서 제 용도에 사용되어야 한다. 그것이 세금을 내는 국민들이 나라를 주인으로써 통치한다는 국민주권주의다. 외국인 전용 템플스테이관을 짓는다면서 조계사 종무소와 공양물 판매점, 찻집을 그대로 옮겨놓으면 안 된다. 마찬가지로 명분이야 어떻든 조계사 땅 사는데 나랏돈 받으면 안 된다. 일반 국민들도 생각하기 힘든 일을 한국불교 중심지에서 무욕이 직분인 스님들이 해서는 아니 될 일이다. 그러나 잘못한 것을 지적해 주는 사람을 고마워하기 보다는 공격하기 바쁘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불교를 공격한다? 부처님오신날이 다가올수록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살고 있는 지 더욱 점검할 일이고, 교단이 구설수에 오르는 일이 없도록 평소에 잘 살아야 한다. 그리고 부처님은 “부끄러움의 옷은 모든 장식 가운데 가장 으뜸가는 것이고, 부끄러워할 줄 아는 사람은 곧 착한 법을 가질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짐승과 다를 바 없다.”라고 하셨다. 조그마한 터럭이라도 있을 때는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먼저 보이는 것이 무엇보다 부처님 오신 날을 기리는 것이다.

역설스럽게도 이런 밑바닥 대응이 최고조에 이르는 것을 보면 이제 불교에 새로운 뿌리가 내려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주변의 다소 맹목적이었던 사람들조차도 이런 대응을 피곤해하는 것을 보면.....

7. 이제 뿌리를 내리자.

뿌리가 생길 시기가 된 지금쯤. 지관스님이나 과거의 어른스님들은 대중스님들에게 당연히 이런 말씀을 하셨을 것이다.

문화재 관람료는 잊어라. 성역화도 잊어라. 본분대로 안채의 문을 걸어 잠그고 공동생활을 하며, 수행하지 아니하는 일반인들의 경내 출입은 시간을 정해서 하도록 해라. 공동생활을 하는 곳이 바로 성역이다.

매년, 매시기의 목표를 정해놓고 공부를 하고, 서로 간에, 서로간이 부족하다면 재가자라도 청해서, 공부를 점검하고 소통하라.

적어도 스님이 된 후 3년간은 사회에 나가 봉사하고 스님이 된 이유와 공부의 동기를 찾아라.

멍하니 앉아 있거나 세속의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공부에 집착 하지 말고, 스님의 자세와 몸가짐부터 매시기 점검해라.

무엇보다, 지금부터 입적할 때까지 승속을 구별하는 발언을 한 마디도 하지 말고, 총무원 주변을 떠나지 못하면서 허물을 지적하는 사람들에게 도리어 버럭대는 이들을 접촉하지 말라.

가끔 술과 고기를 먹는 허물보다도, 입에 들어가는 생명을 준 이들을 생각하지 못하고 생명을 희생하면서 생명을 잉태하는 의미를 매끼니 생각하지 못하는 허물을 더욱 부끄러워하라.

아니꼽고 무식하다고 생각하더라도 노인을 공경하고 노인이 자신을 가르칠 기회를 주어라.

분소의를 입고 돈을 싸 짊어지고 남을 조정하면서 사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우스운 그들에게 행여나 조정받고 살지 않도록 하라.

마지막으로 당부한다. 스님으로써의 삶이 자신 있고 행복하다면 남을 행복하게 해줄 것이고, 저절로 존중받을 것이다. 국가는 문화재와 전통사찰을 지키기 위하여 매년 조사·관리하고 보수하여 스님들의 걱정을 덜어 줄 것이며, 신도들은 스님들의 공동생활에 부족함이 없도록 헌신적으로 지켜 줄 것이다.

[이 기사에 대한 반론 및 기사제보 mytrea7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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