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성 없는 의사결정, 3원체제 적합한가
대표성 없는 의사결정, 3원체제 적합한가
  • 윤남진
  • 승인 2009.07.23 10: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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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과 비전을 담는 새로운 시스템의 설계_④종결]

1.
이제 지금까지의 모든 논의를 마무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루한 분석적인 설명 이후의 만족스럽지 않은 결론이 될 것이 분명하지만은, 그것은 필자 개인의 두뇌작용이나 골방작업으로 이루어 질 수는 없는 문제라고 일단 퇴로부터 열어놓고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간 필자의 분석적 안목이나 논리적 설명능력이 부족했더라도 1994년에 설계된 교단운영의 골격이 다양한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히 주장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이 설계 당시로부터의 원초적 한계이건 시행단계에서의 운용상의 한계이건 설계시점 이후 급격히 변화된 내외적인 환경에 의한 것이든 간에 말입니다.  

이제 교단의 운영원리와 체제에 근본적 변화를 줄만한 발상(패러다임_생각의 틀, 또는 생각하는 방식)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발상의 전환에서 중요한 바탕은 변화된 환경과 주체적 조건으로부터 새로운 내용을 '발견'하는 것이 우선이겠고, 또 그것을 불교에서 고유하게 제공하고 있는 사유의 방식에 따라 ‘설명’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전제입니다. 그리고 물론 새로운 내용은 또한 그것이 담길 새로운 형식(구조나 체계)이 필수적으로 따라야 한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첨언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발견’과 ‘설명’의 입장 또는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달리 말하자면 ‘학습’과 ‘논의’의 자세입니다. 붇다나 공자 모두 그들 스스로가 ‘발견자’이고 ‘학습자(=공부인, 수행자)’이면서 후학들에게도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붇다는 방일하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라고 했으며, 공자는 배우고 제때에 익히는 즐거움과 절차탁마에 대해 말했습니다.

이들 성인의 존재를 중심으로 인간의 역사를 전사와 후사로 나눈다면 그 기준은 인간사회에 학습, 수행, 공부, 깨우치고 가르침을 통한 인간(사회)발전의 가능성과 중요성을 전일화, 전면화시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붇다는 인간이 수행을 통해 신(=신이라는 관념적 굴레를 넘어)보다 더 위대한 존재가 되는 길을 열었고, 공자는 학습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을 만들어냈습니다.

배움은 지식의 습득에서 멈추지 않으며 ‘새로운 발견’을 동반합니다. ‘발견’은 ‘찾기’의 영역이지 ‘만들어내기’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현대사회는 ‘네트워크가 곧 존재하고 있음의 증명'(네트워크 한다, 고로 존재한다.)인 듯 되었습니다. 따라서 '발견' 혹은 '찾기'는 과거보다 더 깊은 뜻을 함유한 '관계’의 문제가 아닌가 합니다. '관계'의 문제를 존재의 차원에서만 다루지 말고 특정한 '조직체'로 좁혀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붇다는 ‘자주 모여 법(진리)과 정의에 대해 의논하라’고 했고, 공자는 ‘벗(朋)이 멀리에서 찾아오니 기쁘지 아니한가?’ 했습니다. 여기서 벗(朋)은 무리, 즉 뜻을 같이하는 무리(조직)를 뜻합니다. 자주 모인다는 것, 멀리서(不遠千里) 찾아온다는 것, 그것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저는 그것이 ‘발견의 설명과 설명을 통한 공유체계’가 중요하다는 취지로 읽고 싶습니다.

요즘 대통령에서 시작해서 사회적인 화두의 하나가 ‘소통’입니다. ‘소통’이란 한마디로 ‘관계의 살아있음’이라고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관계'가 살아있다는 것은 결국 '상호배움을 통한 공동의 선택과 실천의 문제'가 핵심이 아닌가 합니다.

소통, 혹은 살아있는 관계를 위해서는 '상호배움'을 좀 더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것으로 구조화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조직체 내에서 정규적이고 공식적인 방식으로 ‘학습구조’는 필수적으로 고려되어야 하는 것이고, 비공식적이고 비정규적인 방식일지라도 ‘집단지성’을 형성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며 그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집단지성'에게 요구되는 내용은 무엇인지 이화여대 최재천 교수가 번역한 ≪통섭≫이라는 책의 다음과 같은 한 대목을 음미해 보았으면 합니다.

'과학 기술의 덕택으로 모든 종류의 사실적 지식의 단가는 내려가고 그 지식에 대한 접근은 훨씬 더 쉬워졌다...그러면 그 다음은 무엇일까? 대답은 분명하다. 종합이다. 우리는 정보의 바다에 빠져 있기는 하지만 지혜의 빈곤 속에 허덕이고 있다. 따라서 세계는 적절한 정보를 적재적소에서 취합하고 비판적으로 생각하며 중요한 선택을 지혜롭게 할 수 있는 사람들에 의해 돌아갈 것이다.'

2.
이제까지의 통론적인 이야기 중에서 새로운 교단운영의 원리와 체계를 설계할 때에 고려해야 할 중요한 요소로 '설명가능하며, 설명을 통해 공유할 수 있는 상호배움의 체계'를 정치적 조직운영 체계 속에 어떻게 결부 혹은 습합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재차 강조하면서 몇가지 갈래의 새로운 얼개를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①우선 정치적 의사결정 및 집행의 구조와 관계된 변화 설계입니다. 저는 내부적으로 다층적 또는 다원적 대의(의사결정, 공의)구조로 변화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교단 내적으로 적용하기 대단히 어려운 특수성이 존재하는 견제와 균형의 원리, 3권분립과 같은 종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의사결정의 대표성을 시급히 보완해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불교교단 고유의 유익한 전통들을 유지(=保守)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선적으로 현재의 (중앙종회)단원구조를 양원 또는 최적의 것으로 가능하다면 삼원구조로 전환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총무원(+교육원, 포교원)으로 대표되는 집행영역에 있어서는 구조화된 조직의 확대를 더 이상 고려하지 말고, 광범위한 '위임과 협동의 관계망'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하는 고민을 해야 할 것입니다. '작은 집행부'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라, '더 비대해지지는 말자'는 것이고 종무조직의 역할과 일의 스타일을 쇄신함과 동시에, 종무조직 이외에 (보호막 없는)시장에서 생존하는 조직체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그런 조직체들의 강력한 후원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②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정치권력 혹은 사회와의 관계와 참여의 문제입니다. 그 정신적 바탕이 어떤 것인지는 여기서 논할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 방식은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장 눈에 띄고 큰 성과를 보인 것이 이들 관계에서 '본보이기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삼보일배, 오체투지, 탁발순례 같은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새로운 행동양식으로서의 본보이기 방식'이라고 쓰고자 합니다.

이제 '새로운 규범 창출로서의 본보이기 방식'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 가장 중요하고도 불교교단 내적으로도 첨예한 문제를 하나 예로 들자면 '종교적 관용과 불관용(배타주의)의 문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제 불교종립학교에서 먼저 이 문제에 대한 시민사회적 규범을 먼저 제출하고 실행하는 능동적 방식을 채택할 때가 되었다고 봅니다. 이는 단순히 다른 종교에 대한 허용적 수준의 관용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 불관용(배타주의)의 단호하고도 엄격한 퇴출을 수반하는 시민규범적 논의와 실행이 추동되어 시민사회 일반으로 확산되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종교적 관용_불관용문제와 더불어 불교계에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 다문화세계와 관용의 문제입니다.    

③다음으로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것이 회향의 공식적 구조화입니다. 이 주장에 대한 이해를 위해 가장 최근에 이루어진 개신교계의 포럼과 관련한 기사를 한 대목을 간추려 소개하고자 합니다.

'2007년은 그동안 개신교를 안팎으로 대변해온 ‘랜드마크'들이 몰락한 시기였다. 이랜드 사태가, 아프간 사태가, 장로 대통령 만들기가 그랬다...예전에는 당연히 욕먹을 만한 일로 교회가 손가락질 받았다면, 이제는 그간 한국교회가 잘해왔다고 자신 있게 말해온 일들이 문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간 우리가 잘했다고 자부했던 일들이 문제의 핵심에 있다면 우리는 더 이상 하던 일을 '더 세게, 더 열심히' 하는 것을 상황 극복의 대안으로 삼을 수 없다. 근본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양희송_청어람아카데미)

진단이 상당히 진전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의 처방에 대해서는 (저의 생각과 거리가 크므로) 여기 인용하지 않았으니 독자들께서 후속 정보를 탐색해 보기 바랍니다. 저의 생각은 무엇이냐 하면 '현실'개신교와 '현실'불교의 차이가 '회향개념'의 유무의 차이 혹은 중생에게 돌리는 것과 하나님에게 돌리는 것의 차이, 출발지와 종착지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회향이란 필자가 거칠게 이해하기에 자신의 선행, 자신의 공덕을 자신 이외의 것으로 되돌려서 궁극적으로는 겨자씨 만한 것을 바위덩어리 만하게 키우는 마술입니다. 거꾸로 회향이 없다면 '길바닥에 버려진 물'과 같이 집채만 한 물도 길바닥에 버려져 마르고 마니 바다로 나가지 못하고 쓸모없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불교교단은 이 회향개념을 대단히 정교하게 조직운영의 원리와 체계 속에 반영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조직문화적 강점이 될 것이라는 점을 제언하고자 합니다.
 
④다음은 비제도적 영역, 비공식영역의 실천방식과 조직에 변화가 필요합니다. 교단의 제도화되고 공식화된 영역 밖에서 대안적 독자성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안적 독자성'이란 것에 대한 예를 들자면 '중앙종회의 대표성이 상실되었다'고 한다면, 가사 현행 교단제도(종헌종법)에 의해 선출된 절차적 대표성이 없다 하더라도 대중적 의제를 가지고 '대중공사', 또는 '대중회의' 같은 것을 정기적으로 개최하여 '대표성 없는 중앙종회'와 대조를 이루어가는 등의 실천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움직임에 인터넷 언론을 비롯한 인터넷을 통한 소통구조가 더해진다면 대중은 아마도 이 '대체상품'에 더 매력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비제도적 영역에서 강점을 가지고 실천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지점을 하나 더 지적하자면, 자연과학(생물학이나 뇌과학 등) 및 사회과학(특히 현상분석 분야)의 성과와 적극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구조 또는 인적네트워크를 다양하고 자유롭게 발전시켜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3.
마무리 인사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처음 연재를 시작하겠다고 할 때는 매주 글을 쓰겠노라 호기를 부렸는데, 결국 2주를 넘긴 것은 기본이고 어떤 때는 1개월도 넘게 걸린 듯 합니다. 결국 매번 서너 권의 책이나 자료를 추가로 탐독하거나 검토하고 나서야 글머리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끝으로 저에게도 개인적이지만 이 글을 읽어주신 모든 독자 개인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로 글을 마무리 하고자 합니다. 제가 이번 연재를 감히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지난해 12월 하순 경 위암수술 후 회복기에 일을 접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제가 이 연재를 시작하자 저의 건강을 걱정해 주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암이란 질병이 대개 알려지기를 일종의 스트레스에 의한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마음을 넓게 편히 가지고 만사를 좋게 생각하려고 애를 쓰라는 주문이 많았습니다.

우리는 평소에도 '척지지 말고 살아라'하는 말을 처세술로 자주 듣게 됩니다. 그러나 저는 우리 불교교단 구성원 개개인들에게 현재 특히 필요한 것이 앞서 ≪통섭≫이란 책에서 인용한 '적절한 정보를 적재적소에서 취합하고 비판적으로 생각하며 중요한 선택을 지혜롭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고자 하는 노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특히 '비판적인 생각의 능력'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와 관련해 논어 자로편 24장을 소개해 드리면서 글을 마무리 짓고자 합니다.

자공이 물었다
"한 고을 사람들이 모두 좋아하면 어떻습니까?"
"안된다."
"한 고을 사람들이 모두 미워하면 어떻습니까?"
"안된다. 한 고을 사람들 중에서 선한 자는 좋아하고, 선하지 아니한 자는 미워하는 것만 못하다."   

감사합니다.■ 

윤남진_불교시사 블로거

전국불교운동연합, 깨달음의 사회화운동, 조계종총무원과 포교원 등에서 일했다. 현재 참여불교재가연대 등에서 종교 및 NGO 분야로 특화된 사회통계 및 여론의 조사/분석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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