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오신날, 유치원 살린 보살 이야기
부처님오신날, 유치원 살린 보살 이야기
  • 조현성 기자
  • 승인 2019.05.11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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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축특집] 해군 교육사령부 흥국사 부설 흥국유치원 김현자 원장

“사람으로 태어나기 어렵고 태어나도 생명을 유지하기 또한 어렵다. 세상에 부처님이 계시기 어렵고 부처님이 계셔도 그 가르침을 듣기 또한 어렵다 (得生人道難 生壽亦難得 世間有佛難 佛法難得聞)” <법구경> 가운데

대한민국 해군은 7만 정예병력이다. 해군 내 군법당은 모두 20곳, 이 가운데 부설 유치원을 가진 곳은 현재 진해 교육사령부 흥국사 부설 흥국유치원과 제주 해병 9여단 군법당 해봉사부설 해봉유치원 두 곳뿐이다.

한때 서울 김포 진해 포항 제주 등 해군 군법당 다섯 곳에 부설 유치원이 있었다. 이 가운데 세 곳이 사라졌다. 대부분 안타까운 사연으로 군당국이 폐쇄를 결정한 곳이다. 많은 사찰들이 유치원을 한 곳이라도 더 만들려고 애쓰는 가운데 일어난 비극들이다.

▲ 유아교육에 진력해 온 흥국유치원 김현자 원장

신도 소개로 유치원 운영 적임자 만나

진해 해군교육사령부 흥국사 부설 흥국유치원도 사라질 뻔했다. 이곳을 살린 것은 흥국유치원 김현자(법명 수경행) 원장의 희생과 헌신이었다. 5월 12일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오색 연등이 가람을 장엄한 때, 불자로서 평생 유아교육에 진력해 온 김현자 원장을 진해 흥국사 흥국유치원에서 만났다.

흥국유치원은 1993년 설립됐다. 흥국유치원은 2년 전까지만 해도 불미스러운 일들로 지역 학부모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었다.

흥국사 주지로 부임한 진승필 법사는 유치원 운영 적임자를 수소문했다. 흥국사 군법당 신도 가운데 유아교육기관 교사였던 해군 간부 부인이 김현자 원장을 추천했다.

진승필 주지법사가 김현자 원장을 만났다. 김 원장은 원장직을 쉽게 수락하지 않았다. 유아교육 기관에 오랫동안 근무하다가 휴식을 하던 김 원장은 개인 연구소를 열어 스스로 시간과 일을 조절하는 생활을 하고 싶었다.

▲ 해군 교육사령부 흥국사 전경, 1층이 흥국유치원 2층이 흥국사 법당이다


'쓰임' 고민하다가 다시 헌신 결심

당시 김 원장은 연구소 개원을 준비하면서 법륜 스님이 회주인 정토회 불교대학을 다니고 있었다. 마침 법륜 스님이 ‘쓰임’을 법문했다. 스님의 법문은 어린이집, 유치원 운영을 회향하고 쉬고 있던 김 원장 마음을 돌리게 했다.

김 원장이 흥국유치원 원장에 부임했을 당시는 원아모집이 마무리된 시기였다. 김 원장이 신학기 원아 현황을 파악했을 때는 원 운영자체가 불가능했다.

원 운영에는 재정이 필요하다. 사립유치원 재정은 원아당 지원되는 국가보조금과 부모부담금으로 구성된다. 적정 인원의 원아 구성이 안되면 유치원은 재정 부족으로 경영난을 겪을 수밖에 없다. 흥국유치원은 종교단체나 부대가 재정지원을 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김 원장은 일을 시작했으니 유치원을 정상화에 최선을 다 해보자고 생각했다. 초기 운영비 부족분은 김 원장이 개인 재원을 동원해서 운영하고 이후 부족분은 주지법사가 감당하기로 했다.

 

▲ 흥국유치원 원아들은 흥국사 법당 앞마당에서 수시로 야외활동을 한다


수영장 도색, 텃밭 가꾸기 등 직접

김 원장은 열악한 유치원 재정 극복을 위해 직접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수영장 도색, 텃밭 가꾸기 등 잡다한 일들을 스스로 했다. 남편과 아들도 김원장을 도왔다.

이제껏 어린이집, 유치원 등을 운영하면서 나름 명예롭던 자신의 삶을 지켜왔다고 자부하던 터라 김 원장은 끝을 부끄럽게 하고 싶지 않았다. 단 한 명의 아이라도 좋은 환경에서 제대로 바른 교육을 받게 해주고 싶다는 바람도 컸다.

김 원장이 흥국유치원 원장을 맡은 지 2년 6개월, 적자였던 재정이 정상화됐다. 입소문을 타고 흥국유치원에 아이를 보내고 싶어 하는 부모들이 늘었다.

▲ 김현자 원장은 나무가꾸기 등 여러 프로그램을 활용해 아이들에게 생명 존중과 더불어 사는 삶을 일러주고 있다


내 아이 돌보려 시작한 유아교육의 길

김 원장은 학부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미술학원을 운영하면서 결혼을 했고 자녀를 얻었다. 김원 장은 육아를 고민했다. 김 원장은 일과 육아를 함께 할 방법을 고민했다.

당시는 어린이집이 제도권 안으로 막 들어오기 시작하던 때였다. 김 원장은 자신처럼 아이 때문에 일 못하는 엄마들을 위해 어린이집 개원을 결심했다. 1993년의 일이다.

김 원장은 마산 월영동에 어깨동무어린이집을 개원했다. 김 원장은 자격증이 없던 터라 자격증이 있는 원장과 교사를 임용해서 운영했다. 동시에 유아교육을 공부하기 위해 일하면서 공부하기 좋은 방송통신대 유아교육과에 편입학해서 자격증을 취득했다.

김 원장은 기관에서 아이들의 좋은 기본생활 습관 등을 가르쳐 놓아도 집에까지 이어지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부모들과 대화하면서 아이뿐 아니라 학부모들에게도 도움을 줘야겠다는 생각했다. 학부모와 체계적인 상담을 위해 전문상담의 필요성을 느낀 김 원장은 상담심리를 공부해 석사학위를 받았다. 아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이의 성장 배경인 가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느껴 이어 가족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 흥국유치원 텃밭 첫 수확은 가정으로 가져가 부모에게 먼저 전달한다. 이같은 지도로 아이들은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효를 익힌다


사찰 부설 어린이집을 진해 최고로

김 원장은 불자이다. 대대로 불자 집안이었지만 사찰, 스님과 각별한 인연은 없었다. 1999년 동료 원장이 한 스님에게 김원장을 소개했다. 당시 통도사 마산포교당 정법사 주지 지태 스님이었다.

당시에도 김 원장은 (흥국유치원을 살리려한 진승필 법사 같던) 스님의 원력에 힘을 보탰다. 1999년 10월 15일 진해에 사찰이 운영하는 어린이집이 문을 열었다. 통도사 부설 도솔어린이집이다.

도솔어린이집은 진해 최대 규모였다. 김 원장은 답답할만큼 원칙론자라는 평을 들으면서 도솔어린이집을 규모에 걸맞는 최고의 시설로 키워냈다. ‘민원 제로(Zero)’. 담당 공무원도 김 원장이라면 믿었다. 김 원장이 마산에서 진해 도솔어린이집으로 자리를 옮길 때 지역공무원들끼리 “좋은 원장님을 보내서 아쉽다”고 말할 정도였다.

▲ 진승필 법사가 1층 유치원을 찾을 때면 아이들은 "스님이다" 하고 법사를 반긴다


아이들 걱정에 또 하나의 어린이집 지어 

김 원장이 도솔어린이집을 운영하던 때 일이다. 관련 법이 바뀌면서 부득이하게 정원을 축소해야 했다. 부모들 누구도 자기 아이를 다른 곳으로 보내고 싶어하지 않았다. 정해진 기간까지 원아를 전원 조치 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다른 곳으로 아무도 옮겨가려 하지 않으니, 김 원장도 담당 공무원도 답답했다.

“방법이 없어요. 새로 지어서 아이들을 데려가는 데리고 가는 수 밖에요.” 김 원장의 넋두리에 담당 공무원은 그 방법이 최선이라고 했다.

부동산업을 하는 학부모가 토지를 알아봤다. 건축업을 하는 동생과 그 친구가 설계 건축을 맡았다. 인근에 ‘느티나무어린이집’이 지어졌다. 도솔어린이집과 느티나무어린이집을 번갈아 운영하던 김 원장은 쉬고 싶었다. 2015년 10월이었다. 2017년 김 원장은 흥국사 진승필 법사의 간곡한 요청 끝에 흥국유치원 원장이 됐다.

▲ 김현자 원장은 절에서 지은 유치원에 보냈더니 아이가 달라졌다는 말을 계속 듣고 싶다면서 단 한명의 아이라도 더 행복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아침 7시 출근, 퇴근은 밤 11시도 잦아

지난 1년, 김 원장의 등원(출근)은 매일 아침 7시 20분이었다. 밤 늦게 퇴근한 적도 여러 날이었다. 김 원장이 아침 7시경 출근 하는 이유는 원생 한 명을 맞이하기 위해서였다. 이 아이는 부모가 맞벌이인 까닭에 아침 일찍 유치원에 와야 했다.

부산에 거주하는 김 원장이 매일 아침 7시 20분까지 유치원에 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당직을 정해 다른 교사와 돌아가면서 할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김 원장은 “누군가 실수로 아침에 늦으면 어떻게 될까? 그 생각을 하니 다른 사람에게 미룰 수 없었다”고 했다.

김 원장이 흥국유치원에서 아이들과 생활하는 것에 유별난 것은 없다. 아이의 눈높이에서 바라보고 생각하는 것은 기본이다. 나만이 아닌 더불어 사는 삶을 아이들에게 생활을 통해 일깨워준다.

흥국유치원 아이들은 텃밭에서 상추 등을 기른다. 첫 수확은 무조건 집으로 가져가 부모님을 드리게 한다. 두 번째 수확부터 유치원에서 친구들과 나눠 먹는다. 2층 법당에서는 아이들에게 명상을 지도한다. 야외활동 등에서는 늘 산목숨을 죽이지 않도록 가르친다. 갯벌 등에서 조개 게 등을 채집 관찰한 후에는 다시 그것들의 터전으로 놓아주기[방생]를 한다.“

"우리 아이 달라졌다"는 말에 큰 보람

김 원장은 “이제 겨우 흥국유치원이 제자리를 찾고 있다. 이곳에서 잘 마무리하지 못하면 내 지난 삶은 결국 실패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절에서 지은 유치원에 보냈더니 아이가 달라졌다는 말, 절에서 유치원 운영을 참 잘하더라는 말을 계속 듣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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