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불교예술인의 눈으로 본 불교예술 - 음악
[특집] 불교예술인의 눈으로 본 불교예술 - 음악
  • 성의신
  • 승인 2019.05.1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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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무형문화재 제17호 영산재 시연 모습.

 

시대에 맞는 찬불가를 잇기 위해

불교음악은 부처님을 예경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대중에게 전달하기 위해 작곡·연주되는 모든 음악으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음악은 종교적 행위에서 기원했다는 학설이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종교와 음악은 밀접한 관계에 있다. 불교음악은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 불교가 우리나라에 전래되면서 함께 유입되었을 것이다.

문헌에 전하는 우리 전통 불교음악 중 첫손에 꼽을 수 있는 것이 가곡, 판소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성악곡의 하나인 ‘범패’이다.

범패는 통일신라시대인 9세기 초 진감(眞鑑, 774~850) 선사가 당나라에 배워온 것으로 전하고 있다. 하지만 소수림왕 2년 전진(前秦) 왕 부견이 순도 스님을 보내 고구려에 불교를 전할 때 함께 들어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범패 이외에 기록으로 전하는 신라와 고려시대 불교음악으로는 원효 스님의 <무애가>와 월명 스님의 <도솔가>, 균여 스님의 <보현십원가> 등이 있다.

<도솔가>는 통일신라 경덕왕 19년(7602), 서라벌에 두 개의 해가 떠서 열흘 동안 사라지지 않는 변괴가 일어나자 재앙을 물리치기 위해 월명 스님이 산화공덕의 불교의식으로 지어 부른 노래이다. <무애가>는 귀족 중심의 불교가 기층 민중으로 전파되는데 일조한 문화포교의 효시인 작품이다. <무애가>의 노랫말은 ‘일체 걸림이 없는 사람은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보현십원가>는 고려시대 향가로 보현보살의 열 가지 큰 서원을 찬탄한 노래이다.

조선시대 불교음악으로는 세종대왕의 창작 불가(佛歌)와 <영산회상>을 들 수 있다.

세종대왕이 한글 창제 이후 부처님의 일대기인 《석보상절》을 읽고 감동하여 부처님의 공덕을 대서사시로 노래한 <월인천강지곡>과 직접 작사하여 《사리영응기》에 수록한 7곡 9장의 찬불가사를 보면 깊은 불심과 불교에 대한 이해를 짐작할 수 있다.

 

▲ 정간보.

지금은 기악곡으로 연주되고 있지만 <영산회상>은 원래 성악곡이다. 부처님이 영축산(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할 때의 법석을 영산회(靈山會)라 하는데, 영산회에 참석한 불보살의 공덕을 찬탄한 가사 ‘영산회상불보살(靈山會上佛菩薩)’을 노래한 성악곡이 ‘영산회상’이었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가사는 없어지고 기악곡으로만 남았다. 현행 <영산회상>은 가사를 노래한 상령산에서 파생한 중령산, 세령산, 가락덜이와 후에 추가된 삼현도드리, 하현도드리, 염불도드리, 타령, 군악 등 9곡의 모음곡이다. 불교음악에서 출발한 <영산회상>은 조선 후기 이후 선비나 부유한 중인 출신의 풍류객이 전승·발전시킨 곡이다.

이처럼 대략 소개한 전통 불교음악만 보더라도 불교가 우리 음악에 미친 영향이 매우 큼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 국가 차원의 행사로 봉행된 연등회나 팔관회 등에서도 여러 불교음악이 연주·설행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세종 때 악보인 ‘정간보(井間譜)’가 창안되기 이전의 음악은 체계적으로 기록되지 않아 음의 높낮이와 길이를 정확히 알 수 없다. 때문에 문헌에는 가사와 시대적 배경 등이 기록되어 있지만 어떤 선율의 음악인지는 알 수 없다. 예를 들어 원효 대사가 민중교화를 위해 부른 <무애가>의 경우, 노래를 부를 때 무애(목이 굽은 표주박)를 들고 추는 무애무는 후세에 재현되고 있지만 선율은 전하지 않는다.

현대와 같은 다양한 기록 수단이 있어서 조선시대 이전의 전통 불교음악이 이 시대에까지 보존될 수 있었다면 얼마나 다양한 곡을 연주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다.

1973년 국가무형문화재 제50호로 지정된 범패(1987년 영산재로 지정 명칭이 바뀜)도 옛 악보가 전하지 않는다. 하지만 현대에도 전승되고 있는 이유는 사찰에서 재(齋)가 지속적으로 행해져 구전으로 전승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범패도 시대의 흐름은 거스를 수 없는 모양이다. 재가 간소화되면서 72가지나 되던 짓소리가 13곡 정도만 불리는 등 전승·보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성악곡을 넘어 국악· 기악· 현대음악까지 다양하게 뻗어나간다

이 시대의 많은 불교음악가들은 앞서 언급한 전통 불교음악을 계승하고, 다양한 장르의 불교음악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찬불가이다. 찬불가는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불교음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찬불가란 용어는 일제 강점기에 처음 사용됐다. 권상로가 1925년 출판한 악보집 《부모은중경》 첫머리에 수록된 곡명이 ‘찬불가’이다. 이 시기부터 전통 불교음악과는 다른, 서양음악 기법으로 오선악보 찬불가가 작곡되었다. 운문 스님은 1960년대부터 서울 대각사와 조계사에 합창단을 만들고 직접 가사를 지어 작곡을 의뢰하는 등 찬불가 보급에 힘썼다. 1970년대부터는 여러 작곡가가 찬불가를 작곡했다. 1980년대에는 음악포교의 중요성을 깨달은 여러 사찰이 합창단을 잇달아 창단하면서 불교 대중화와 불교의식 현대화에 크게 기여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는 불교음악과 국악의 접목이 시도됐다. 1988년에는 김영동이 예불문과 의식음악 등에 신디사이저와 소금 가락을 입힌 <선(禪)>이란 음반을 출간하였고, 1991년과 1992년에는 박범훈이 국악관현악과 합창이 어우러지는 <붓다>와 <보현행원등> 등 국악교성곡을 작곡해 발표했다.

불교와 서양음악의 접목도 눈여겨 볼만하다. 강형진이 이끄는 니르바나 필하모니 오케스트라는 <칸타타 담마파다>를 무대에 올리고 정기 연주회를 갖는 등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이종만 좋은벗풍경소리 대표는 팝스 오케스트라를 이끌며 40여 장의 어린이 찬불가 앨범을 만드는 등 음악을 통한 불교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 이밖에도 많은 불자음악가가 다양한 색깔로 부처님을 찬탄하고 있다.

해금을 전공한 필자는 대학교 1학년 때 법당에서 처음 <영산회상>을 연주했다. 이후 KBS국악관현악단에 입단해 창작음악을 접하면서 국악과 불교음악의 접목, 다양한 음악적 실험을 꿈꾸었다.

 

▲ 불교와 서양오케스트라의 화음을 시도하는 ‘니르바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불교저널 자료사진>

1993년에는 KBS국악관현악단 소속 불자를 단원으로 ‘마하연실내악단’을 결성했다. 이때부터 필자는 이 시대의 불교음악, 한국적 불교음악을 뿌리내리는 것을 화두로 삼았다. 하지만 그 길은 쉽지 않았다. 어떤 때는 기악곡 위주의 불교음악 작곡을 위촉해 보았지만 작곡가가 곡을 쓰지 못해 연주장을 대관해 놓고도 연주를 못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했다. 또 어떤 때는 개인 음반을 제작하면서 마땅한 곡이 없어 해금으로 연주한 찬불가나 불교기악곡을 한두 곡 넣을 정도에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불교음악, 특히 해금으로 연주할 수 있는 기악곡에 대한 갈증이 심해질 때쯤, 필자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국악을 전공하는 사람에게는 교과서적인 음악이지만 “‘영산회상불보살’을 노래하던 불교음악이었다”는 설명 한 줄 뿐이던 <영산회상>을 해금으로 표현하고 싶어 9곡 모두를 이 시대의 음악으로 작편하여 연주했다. ‘미래회상’이라 이름 붙이고 연주회를 가졌으며, 4집 음반으로도 출시하였다.

이 연주는 불교계로부터 “불교음악의 미래가 보인다”는 과분한 격려를 받았을 뿐 아니라, 국악계로부터도 기획과 연주 공로를 인정받아 ‘2010년 KBS 국악대상’ 대상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필자는 불교음악의 화두를 풀어낼 희망을 가졌고 자신감도 얻었다.

마하연실내악단은 창단 20주년이 된 2013년 영산재 중 많이 쓰이는 9곡을 선정, 범패를 무대화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시대와 공감할 수 음악으로 작편하여 ‘마음으로 올리는 나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공연하고 음반도 발매했다. 지난해에는 《법화경》 주요 품을 음악으로 표현한 교성곡 <묘음으로 피어나는 하얀 연꽃>을 기획해 발표했다. 연주에는 800여 명의 합창단원과 국악관현악단원이 참여했다. 올해는 《법화경》 28품 전품에 서곡과 회향을 더한 30곡으로 이루어진 교성곡을 선보일 계획이다.

내가 지향하는 불교음악은 한국적이고 시대에 맞는 것이다. 세속을 향한 원효 대사의 포교와 세종대왕의 찬불음악 사랑은 내 마음 깊이 새긴, 나를 지탱해주는 정신이다. 두 분은 불교를 말하는 것에는 흔들리지 않는 심지를 가졌지만 그것을 세상에 내보일 때는 시대와 받아들이는 이를 고려했다. 음악은 시대의 흐름에 큰 영향을 받는다. 불교음악도 다양한 분야, 다양한 방식으로 변화하고 발전해 나갈 것이다. 그렇게 풍성해지고 수준 또한 높아질 것이라 필자는 믿는다.

이 시대의 불교음악인으로 살게 되어 참 행복하다.

성의신 | 해금연주자

※ 이 기사는 제휴매체인 <불교저널>에도 실렸습니다.
[이 기사에 대한 반론 및 기사제보 budjn200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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