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평화운동가에서 스님이 되었나”
“나는 왜 평화운동가에서 스님이 되었나”
  • 서현욱 기자
  • 승인 2019.05.27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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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신대승네트워크 등 치바나 쇼이치 스님 초청 평화 대화마당

일본 오키나와의 평화운동가 치바나 쇼이치(知花昌一) 스님 초청 평화 대화마당이 6월 3일 저녁 7시 불교환경연대 그린담마홀에서 열린다.

대화마당은 신대승네트워크, 실천불교전국승가회, 불교환경연대, 정의평화불교연대, 위드아시아, 합천평화의 집 등이 주최한다.

치바나 스님은 오키나와에서 일본 국민체육대회가 열렸던 1987년 요미탄촌에서 있었던 여자소프트볼경기장에 걸린 전쟁의 상진인 히노마루(일장기)를 끌어내려 불태운 사건의 주인공으로 유명하다. 당시 개막행사에 참가한 고교 악대는 기미가요(국가)연주를 거부하기도 했다.

치바나 스님은 오키나와에서 평화활동을 하다 정토진종으로 출가했다. 대화마당은 오키나와의 평화운동의 역사를 바탕으로 아시아의 공동체적 가치를 추구하고, 평화를 뿌리내리기 위한 길을 찾기 위해 자리로 마련된다.

주최 측은 “대화마당은 치바나 쇼이치 스님의 강연과 서승 교수의 대담, 그리고 참석자와의 대화를 중심으로 진행될 예정이며,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불교의 역할과 아시아 시민사회의 연대를 모색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신대승네트워크 등은 2016년 로카 미트라 법사를 초청 인도의 불가촉천민 불교운동과 한국불교시민사회의 협력과 연대의 필요성을 공유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2017년에는 태국의 세계적 참여불교 지도자인 ‘슐락 시바락사 박사’를 초청 아시아 평화를 위한 한국불교의 역할과 불교활동가와 불교시민사회단체의 역할과 활성화를 주제로 대화마당을 마련했었다.

이번 대화마당은 ‘아시아 평화․인권활동가 ‘치바나 쇼이치 스님’ 초청 평화 대화마당‘으로 “동아시아 평화를 말하다. - 나는 왜 평화운동가에서 스님이 되었는가”를 주제로 진행된다.

대화는 오키나와 평화운동 사례로 살펴본 동북아시아 평화를 위한 불교와 불자의 역할과 아시아 평화를 위한 아시아 국제 연대를 이야기한다.

▲ 치바나 쇼이치 (知花昌一 1948년 생) 스님

※ 치바나 쇼이치 (知花昌一 1948년생) 스님은 

- 오키나와 현에 거주하는 평화 운동가.

- 반전 지주, 정토진종 동본원사(淨土眞宗東本願寺)파 스님.

- 1998년 - 2010년 까지 요미탄촌의회 의원으로 12년간 의정활동.

- 치바나스님은 오키나와에서 일본 국민체육대회가 열렸던 1987년 요미탄촌에서 있었던 여자소프트볼경기장의 전쟁의 표상인 히노마루(일장기)를 끌어내려 불태운 사건의 주인공으로 유명하다. 당시 개막행사에 참가한 고교 악대는 기미가요(국가)연주를 거부하기도 했다.

- 요미탄촌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슈퍼마켓을 운영하면서 1984년에 오키나와전쟁 당시 마을에서 있었던 주민들 간의 학살사건(치비치리 가마)에 대한 조사를 한 것을 계기로 평화운동을 시작했다. 일장기 소각사건이 있은 후, 우익의 테러도 많았지만 현재는 슈퍼마켓을 정리하고 90년대 말부터 민박을 운영하고 있다.

- 치바나 쇼이치 스님은 반전 지주이기도 한데 반전 지주라는 것은 미군기지로 수용된 땅을 수용되기를 거부하고, 반환받기 위해 활동하는 지주들을 말한다. 대표적으로 1998년 주민들에게 반환된 소베(楚邊) 통신소 땅은 총 면적이 53ha에 달하는 곳으로 반환 전까지 450명의 지주들이 매년 군용지 사용료로 3억 5천만엔을 받았다. 치바나 쇼이치스님도 이곳에 선조 때부터 내려온 땅이 약 236평방미터(약 72평) 있어 매년 26만 엔을 받았다고 한다. 반환 후 군용지료라는 경제적 수입은 사라졌으나 오키나와 사람들은 돈보다는 미군기지폐쇄를 선택한 것이다.

▲ 서승 교수.

※ 서승 교수는

- 재일 조선인.

- 우석대학교 교수

- 1945년 일본 교토에서 태어났다. 도쿄교육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유학하던 중 1971년 4월 보안사에 불법 체포되었다. 고문을 당하다가 분신을 시도하여 온몸에 중화상을 입었다.

- ‘재일교포학생 학원침투 간첩단 사건’으로 동생 준식과 함께 기소되어 1심에서 사형, 2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1990년 2월 28일 석방될 때까지 19년간 갇혀 있었다.

- 1998~2011년, 리츠메이칸 대학 법학부 교수로 일했다. 감옥에 있는 동안 당국의 강제적인 사상전향 공작에 맞섰고, 석방 이후에는 고문 반대운동을 벌였다.

- 1995년부터 ‘동아시아 냉전과 국가테러리즘 국제심포지엄’ 운동을 주재했다.

- 야스쿠니에 반대하는 동아시아 공동행동과, 오키나와ㆍ대만ㆍ만주 -역사의 수난자와 함께하는 ‘동아시아 평화기행’을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 『서승의 동아시아 평화기행』, 『동아시아의 우흐가지 1, 2』이 있다.

문의:02)725-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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