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가장 많이 만드는 나라
영화 가장 많이 만드는 나라
  • 이상훈
  • 승인 2019.06.07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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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다람살라 방문기 4

인도 사람들은 영화를 많이 본다고 한다. 인도 전역에는 1만 2천 개의 영화관이 있으며 티켓이 싸서 영화 보러 가는 것은 가장 대중적인 문화 활동이라고 한다. 인도 영화 제작의 중심지는 인도 서쪽의 항구도시 봄베이(Bombay)인데, 미국 영화의 중심인 헐리우드를 빗대어 볼리우드(Bolllywood)라고 부르기도 한다. 식민지 이전의 도시 이름을 되찾자는 운동이 일어나 1995년에 봄베이가 뭄바이로 개칭되었다. 이 때에 인도 동쪽의 항구도시 캘커타 (Calcutta)는 콜카타로 바뀌었다. 인도는 매년 영화를 헐리우드의 10배가 넘는 1000편 이상을 만드는데 기네스북에 등재될 정도로 세계에서 영화를 가장 많이 만드는 나라이다.

인도에서 2016년 기준 자국 영화 점유율은 85%에 달할 정도로 매우 높아서 미국의 헐리우드 영화가 힘을 쓰지 못한다. 인도 사람들이 인도 영화를 사랑하는 이유는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도 독립의 주역 마하트마 간디는 1906년에 '스와데시 운동'을 시작하였다. 영국에서 수입한 옷을 사 입지 말고 물레를 돌려 옷을 짜서 입어야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간디는 스스로 물레를 돌렸다. 스와데시는 한마디로 영국 상품 대신 국산품을 애용하자는 운동이다. 1947년 독립 이후 70여 년이 지나면서 스와데시 운동의 정신은 흐려졌지만 아직도 영화는 인도에서 만든 것을 보자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다.

볼리우드에서 만들어지는 영화의 대부분은 마살라 영화라고 하는 뮤지컬 영화이다. 마살라(Masala)는 인도 음식에 빠져서는 안 되는 향신료로서 수백 가지가 있다. 인도의 대표 요리로 우리가 알고 있는 카레도 마살라의 한 종류이다. 여러 향신료의 조합으로 인도 요리의 독특한 맛이 완성된다. 마살라 영화는 인도 요리처럼 각종 요소가 섞여 조화를 이룬 영화라는 뜻이다. 마살라는 보통 3시간 넘게 상연되는데 신화, 복수, 청춘 남녀의 연애담, 얽히고 설킨 가족사 등의 통속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마살라 영화에서는 인도 특유의 음악과 선정적인 남녀 주인공의 몸짓이 어우러진 화려한 군무 장면이 수시로 연출된다. 영화 상영 도중 관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춤추고 노래하는 것이 인도에서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인도에는 아직도 문맹이 많다. 전 세계의 문해율은 약 84%인데, 언어 종류가 많은 인도의 문해율은 60%에 불과하다. 인도 여성의 문해율은 특히 낮아 30%에 불과하다. 자기 이름조차 쓸 줄 모르는 여성들이 많다. 인도에서는 TV가 늦게 보급되었기 때문에 온 마을 사람이 함께 모여서 보는 영화는 매우 중요한 오락 활동이라고 볼 수 있다. 춤과 가벼운 이야기, 그리고 긴 상영시간은 인도의 독특한 문화와 관련이 있다. 마땅한 오락이 없어 시간을 때우기 위해 영화를 길게 만들었고 통속적인 이야기여야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며 춤은 운동 겸 즐길 수 있기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추는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 이상한 인도 영화에는 나름대로 합리적인 이유가 숨어 있는 것이다.

인도는 지리적으로 매우 먼 나라이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우리나라와 관련이 있다. 인도와 관련된 우리나라 설화로는 현재의 김해시 일대에 있던 가락국의 시조 김수로왕의 왕비 허황옥 이야기가 있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따르면 허황옥은 인도 출신인데, 서기 48년 인도 아유타국에서 배에 석탑 등을 싣고 건너와 김수로왕과 혼인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제 결혼인 셈이다.

김해시는 최근 방한한 인도의 모디 총리가 ‘석가모니 보리수’ 후손을 선물했다고 밝혔다. 2000년 전 허황옥을 시작으로 한 한국과 인도의 특별한 인연을 강조한 것이다. 모디 총리는 지난 2월 21일 허성곤 김해시장을 서울 롯데호텔에서 만나 인도 보드가야 마하보디 사원에 있는 석가모니 보리수의 어린 묘목을 기증했다. 이 묘목은 기원전 6세기 석가모니가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득도할 때 주변에 있던 보리수의 직계 후손이다. 이런 연유로 보리수는 인도에서 불교의 3대 신성목(神聖木)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인도의 승려 마라난타는 백제 침류왕 원년(384년)에 동진에서 배를 타고 서해안의 법성포로 건너와 백제에 불교를 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라난타는 삼국유사 그리고 해동고승전에 이름이 나온다. 해동고승전에서는 천축의 말로 마라난타라는 이름은 동학(童學, 사미승)이라는 뜻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침류왕은 마라난타를 맞아 궁중에 머물게 하고 예로써 공경하였으며, 마라난타의 법문을 듣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마라난타는 이듬해인 385년 백제의 수도 한산주에 절을 지어서 승려 10인을 출가시켰다고 한다. 현재 서울의 몽촌토성이나 풍납토성 등 백제 유적에서 불교 유물들이 발굴되므로 침류왕 때에 백제에 불교가 전래되었다는 것 자체는 사실로 인정되고 있다.

전남 영광군의 법성포(法聖浦)는 마라난타가 온 뒤로 '성인이 오신 포구'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영광군의 불갑사와 군산 불지사, 나주 불회사도 마라난타가 와서 지은 절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1996년부터 영광군과 불교계에서 합동으로 법성포를 '백제 불교 최초 전래지'로서 기념하고 성역화 하는 사업을 추진하였는데, 마라난타가 처음 도착한 곳으로 추정되는 장소에 마라난타사와 간다라 유물관 등을 조성하였다.

나는 인도를 생각하면 세 가지가 떠오른다. 거지와 소 그리고 카스트이다. 내가 고등학교에서 세계사를 배울 때에 인도는 카스트 제도가 엄격해서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신분이 정해진다고 했다. 귀족으로 태어나면 평생 대접받으면서 풍요로운 삶을 살고, 천민으로 태어나면 사람 대접도 못 받고 아주 천한 일만 한다고 한다. 그런데도 신기한 것은 천민들이 불합리한 카스트 제도를 무너뜨릴 생각을 하지 않고 그저 운명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인도인들은 윤회를 믿기 때문에 천민들도 내세에는 좋은 신분으로 태어날 것을 기대하면서 현세에서는 불평없이 산다는 것이다. 인도에서 쿠데타나 촛불혁명이 일어나는 것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델리에서 다람살라로 가는 국내선 비행기는 아침 6시 30분 출발이다. 나는 1시간 전에 국내선 터미널로 가서 비행기를 기다렸다. 시간이 남았기 때문에 출발 게이트 앞 의자에 앉아 가져온 책 <사피엔스>를 읽기 시작하였다. 뒷 표지에 다음과 같은 의문문들이 쓰여 있었다.

왜 사피엔스 종만이 지구상에 살아남았나?
인간은 왜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동물이 되었는가?
과학은 모든 종교의 미래인가?
인간의 문명은 왜 발전하였고, 이런 발전은 우리에게 행복을 주었는가?
인간의 유효 기간은 언제까지인가?

이 책은 사회, 생물, 종교 등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인류 역사의 시간을 종횡무진 써내려간 문명항해기라고 한다. 책의 앞 표지를 보니 저자인 유발 하라리는 이스라엘 하이파에서 태어나 2002년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중세 전쟁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한다. 그는 1976년 생이니 나이는 43세에 불과하지만 벌써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다. 첫 장의 첫 구절은 “약 135억년 전 빅뱅이라는 사건이 일어나 물질과 에너지, 시간과 공간이 존재하게 되었다”라고 시작된다. 처음부터 흥미진진하게 이야기가 전개된다.

몇 쪽을 읽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앞 의자에 앉은 외국 사람도 책을 읽고 있다. 슬쩍 표지를 훔쳐보니 영어 제목이 SAPIENS 라고 뚜렷이 쓰여 있다! 나는 한글 번역본을 읽고 있고, 그는 영어 번역본을 읽고 있는 것이다. 우연이었다. 그리고 반가웠다. 그래서 내가 영어로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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