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승 검증 임하고, 정념 등 자신들 정당성 확보를"
"자승 검증 임하고, 정념 등 자신들 정당성 확보를"
  • 윤남진
  • 승인 2009.09.26 16: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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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윤남진] 집행권력의 정당성은 어떻게 확보되는가?

집행권력의 정당성은 어떻게 확보되는가?

박정희 정권의 정적이었던 장준하는 7.4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자 설레는 마음을 다음과 같이 썼다. ‘모든 통일은 다 좋은가? 그렇다. 통일 이상의 지상명령은 없다.’ 제33대 총무원장 선거를 한 달 정도 앞두고 있는 지금, 우리는 어느 후보를 선호하느냐 여부를 떠나 모두가 이렇게 말해야 할 것이다.

‘모든 경쟁은 다 좋은가? 그렇다. 정당성을 확립하는 수단으로서,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 이상의 것은 없다.’고.

물론 출가수행자에게서 총무원장이라는 감투는 닭벼슬만도 못한 것이며 한낱 세속적 이권다툼에 지나지 않는다며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 계신 분들에게 이 말은 성립되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그것이 지저분한 밥그릇으로 보일진대 어찌 다투기까지 하겠는가.

따라서 우리가 논해야 할 문제는 총무원장이라는 자리가 어떤 것이냐 하는 것이 아니라, 총무원장이라는 자리(집행권)의 ‘정당성’은 어떻게 확보될 수 있는가 하는 실용적 문제인 것이다. 적어도 통합종단으로서 조계종이 성립된 이후 역대의 크고 작은 숱한 분규는 대체로 ‘정당성’의 문제였다. 물론 명분이나 최종적 지향이 고귀한 불교정신과 승가공동체의 본질과 무관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시발과 종착은 특히 ‘절차적 정당성’ 의 문제로 귀결되었다.

이상종단(理想宗團)이 아니라 현실종단(現實宗團)에서 정치과정은 인류가 발견하고 창안해낸 최선의 운영원리라고 하는 민주정치제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민주정치제도의 골격은 대체로 ‘대표와 책임’의 원리가 한 기둥을 이루고, 과정의 공정성과 질(수준)을 보장하는 ‘공개와 참여’의 원리가 다른 한 기둥을 구성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민주정치는 시민이 민주적 절차에 따라 대리인을 선출하여 그에게 통치(집행)을 위임하고, 민주적 대표는 자신에게 위임된 권력을 수단으로 통치(집행)하며, 그 결과에 대해서 자신을 선출해 준 주권자(시민)에게 책임지는 원리에 의해 이루진다. 이것이 ‘대표-책임’의 원리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문제는 ‘대표-책임’의 질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 하는 문제인데, 이는 결국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시민의 참여를 통해 가능하다.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참여를 위한 전제조건은 ‘공개’가 바탕이 된다고 할 수 있다. ‘공개’없는 ‘참여’는 필연적으로 우민정치로 흐를 개연성이 높다.

정보의 공개는 참여를 위한 전제이자, 소통의 출발점이다. 공개된 정보가 고도의 지식으로 집적되는 과정은 토론 혹은 논쟁을 통해 촉진된다. 누구든 합리적인 논증과정을 통해 정보를 해석하기도 하고 판단하기도 하며, 또 새로운 정보(근거)를 제시하여 자신의 주장을 합리적으로 설득한다. 중요한 민주정치의 절차인 선거에서 이런 논증과 설득의 과정을 ‘검증’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따라서 민주적 절차인 ‘검증’의 과정을 통해서야 비로소 (집행)권력의 절차적 정당성은 확보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건강한 상식을 가진 시민들이 그의 재임시절 숱한 오류와 실패들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대통령을 쾌남아로 추억하는 이유 중 한 가지는, 그가 과거 ‘3당합당’에 대해 ‘이의 있습니다!’하고 손을 치켜들어 절차적 정당성을 따졌던 그런 정신을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줄기차게 추구했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제33대 조계종총무원장 선거를 앞두고 검증 논란이 쟁점이 된 것으로 보인다. 선거라는 민주적적 절차에서 검증은 필수적인 요소이다. 비록 그것이 불명확하고 확인되지 않은 문제들에 대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상대방을 헐뜯기 위한 네거티브전략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은 검증 대상으로 된다.

왜냐하면 항차 그 검증과정, 자신의 주장의 정당성을 논하는 과정을 통해 ‘네거티브 전략’의 부당함 또한 검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와 반대로 합의, 화합, 추대 같은 전략적 프레임으로 선거를 이끌어가고자 하는 것도 부당하다고 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그런 선거전략 또한 중요한 논쟁의 대상, 검증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더욱 중요한 문제는 경쟁이다. 그리고 경쟁은 정해진 룰(규칙) 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다행히도(!!) 현재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법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경쟁하라는 규칙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 이것이 왜 다행인가 하면 명시적 규정이 없기에 여러 경쟁자들간의 합의, 대중여론, 시대적 상식 등에 비추어 적절한 규칙을 합의하여 진행할 수 있는 여지가 넓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 단계에서 중요한 의제는 첫 번째로 의미있는 지지를 확보할만한 경쟁자가 존재하는 것이고, 두 번째로 경쟁의 규칙 그 자체에 대해 우선적으로 논쟁하는 것이다. 이처럼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논쟁을 통해 (집행)권력의 정당성을 제고하고, 동시에 차후 출범할 집행부의 정당성의 수준을 대중적으로 확인해 둘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경쟁자가 서로 나서서 선거라는 절차를 통해 획득할 수 있는 최대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방안을 제출하고 그것을 통해 경쟁을 시작할 때이다.

중앙종회의원, 교구본사주지들로 다분히 한정된_합의, 화합, 추대 같은 방식이 ‘절차로서의 선거’를 통해 (집행)권력의 정당성을 최대한 획득할 수 있는 방식인가? 아니면 경쟁자들 사이의 열성적인 토론이나 논쟁, 나아가 불가피하게 객석에 있을 수밖에 없는 다수 종도들의 자발적 토론을 간접적이나마 이끌어 내는 방법이 (집행)권력의 정당성을 최대화 하는데 더욱 유용한 것인가? 이 문제가 현재 시점에서 토론되어야 할 중요한 의제이다.

예를들어보자. 현재의 4자(+1?)의 연대에 대해 한쪽은 ‘화합’이라 하고, 반대측은 ‘나눠먹기’라고 주장한다고 하자. 동이불화냐 화이부동이냐에 대한 논쟁이다. (군자는 서로 화합하나 같지 아니하고 소인은 서로 같으나 화합하지 못한다.󰡐君子는 和而不同, 小人은 同而不和󰡑_논어, 자로편, 23장) 주도세력이 공익을 우선으로 결합된 ‘군자종단’이 될 것인지, 아니면 사익으로 한덩어리가 되었으나 종국에는 화합이 불가능한 ‘소인종단’이 될 것인지 추측만이 있다.

따라서 이 문제는 앞으로 어떠어떠한 이유와 근거로서 ‘소인종단’이 될 것이라거나 혹은 ‘군자종단’이 될 것이라거나 하는 토론과 논증이 진행되어 대중을 합리적으로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양측 모두 기껏해야 중앙종회의원과 교구본사주지, 그리고 그들 세력에 의해 주도되어 왔던 선출직 선거인단에게서만 정당성을 획득하면 된다는 자세로, 그런 절차에만 한정되어 치러진다면, 이것은 좀 과장되게 말하면 94년 종단개혁 이전의 참종권 배제 상태로 퇴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의 결과로 될 것이다.

1994년도에도 종헌종법의 합법적 절차에 따라 총무원장을 선출하였지만 그 결과 (집행)권력의 정당성은 단박에 부정되었었지 않았는가! 우리가 알기로 현재 입법부(중앙종회의원)의 상당수, 특히 4자(+1?)의 연대의 주축이 되고 있는 정파 구성원의 상당수가 당시 참종권 확대를 외쳤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당한 토론의 과정이 진행된다면 이들 중 누군가는 쾌남아 노무현처럼 ‘이의 있습니다!’하고 손은 번쩍 들어 발언을 요청할 것임에 틀림없다고 우리는 믿는다.

왜냐하면 ‘네거티브’는 하나의 선거전략에 지나지 않을 수 있지만, 정당성의 훼손은 반드시 더 큰 분쟁의 씨를 뿌린다는 사실에 대해 우리 모두가 수백만의 불자를 실망시키는 값진 수업료를 내고 학습한 것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금번 총무원장 선거가 불교의 장래에 매우 중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생각하는 한명의 불자로서 고언을 한마디 하고자 한다.

유력후보인 자승스님은 의연한 모습으로 검증의 들판으로 나서주기를 기대한다. 지지자들의 장막을 과감히 떨치고 나와 검증의 험로를 헤치고 나가는 장부다운 용기를 보여줌과 더불어, 비록 선거권은 없지만 여러 사회적 악조건 속에서도 자신과 자녀들의 신심을 굳세게 하고자 고군분투하고 있는 불자대중 앞에 믿음직한 희망을 심어주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촉구한다.

더불어 정념스님 등을 비롯한 다른 후보자들도 ‘왜 상대가 총무원장이 되어서는 안되는가’하는 주장을 넘어 ‘왜 내가 총무원장이 되고자 하며 또 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사부대중에게 설득력 있는 이유를 내놓고 지지를 획득하기 위해 더욱 분발해 주길 기대한다.

우리가 총무원장 선거에 관심을 갖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그 무슨 정치적 계파들 사이의 이합집산에 흥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스스로 불자인 것을 드러내기에 불편한 현실사회, 스스로 선택하지도 않은 학교에서 강제로 성경을 읊조려야 하는 청소년에 대한, 우리의 자녀와 미래세대에 대한 ‘종교적 야만’을 하루빨리 종식시키기 위해 총무원장이라고 하는 ‘야전총사령관’에 지략과 용기, 덕성을 겸비한 유능한 지도자가 임명되기를 간절히 고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 이 글은 <참여불교> 9/10월 호에도 기고되었습니다.

/ 윤남진(NGO리서치 소장)

 

   

윤남진_불교시사 블로거

전국불교운동연합, 깨달음의 사회화운동, 조계종총무원과 포교원 등에서 일했다. 현재 참여불교재가연대 등에서 종교 및 NGO 분야로 특화된 사회통계 및 여론의 조사/분석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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