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에 ‘취한’ 외교통상부
양주에 ‘취한’ 외교통상부
  • 최재천 변호사
  • 승인 2009.10.13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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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시사큐비즘]
2008년 12월 말 늦은 시각 국무총리실 소속 공직윤리지원관실(암행감찰반) 직원 10여 명이 외교부 청사를 찾았습니다. 감찰반원들은 불과 30분만에 ‘4개’ 부서의 책장과 서랍 등에서 100여 병의 양주를 찾아냈습니다.

외교부가 경위조사에 나섰던 모양입니다. 한국일보를 그대로 인용합니다.
“조사 결과 직원들이 해외 출장을 오가면서 한두 병씩 사오기도 했지만 상당수는 주한 외국대사관에서 받은 선물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당신도 술을 즐겨 마시면서 술 가지고 구차하게 무슨 이 따위 글이냐’ 이렇게 비판할까 두렵습니다. 하지만 재미있는 분석의 대상이 될 것 같습니다.

첫째, 외교관을 꿈꾸는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화려하고 멋진 파티와 와인을 꿈꿉니다. 와인이 아니라 양주라는 것을, 솔직히 얘기하자면 양주도 아니고 폭탄주라는 것을 이제 알 수 있게 돼서 다행입니다.

둘째, 고작 4개 부서였습니다. 아마 과 단위를 말하는 것 아닐까요. 한 개 과라면 어느 정도 인원일까요. 짐작이 되실 겁니다. 그런데 양주 100병입니다. 한 개 과당 25병입니다. 연말이라 망년회 철이라는 것을 계산해 넣을 필요도 있을 것 같습니다. 대단한 술 실력 아닐까요. 외교관이 되기 위해서는 양주를 잘 마셔야한다고 얘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않다면 외교부는 회식이 참 많은 모양입니다. 과 단위 회식이 많은 모양이지요. 외교부가 아니라 외교회식부입니다.

셋째,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선물은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을 선물하기 마련입니다. 3만원 이상이 공직자 규정 위반이라는 것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습니다. 오죽했으면 주재국 외교관들이 우리나라 외교부 공무원들에게 그렇게도 술을 선물했을까요. 왜 선물이 하필 술이어야만 했을까요. 그분들은 어디서들 그렇게 좋은 양주들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외교관들은 늘상 술 선물을 받을 수 있는 공직이라는 것을 젊은이들이 알아차릴까 두렵습니다.

넷째, 출장 때 사온 술도 상당부분 있다고 했습니다. 공무상 출장일 겁니다. 그 출장길에서 귀국할 때 양주를 사온다는 겁니다. 물론 면세 양주라서 싼 것이겠지요. 저도 물론 술을 간간히 사옵니다. 회식 자리에 가지고 나가기 위해서입니다. 그 점에서는 저도 비판할 무기가 없습니다만, 왜 술을 집이 아니라 회사에다 보관했을까요. 공금으로 사왔을까요, 아니면 개인 돈으로 사왔을까요. 출장비에 여유가 있었을까요. 한번 검토해볼 일입니다. 출장이 잦을텐데 그때마다 술을 사오는 걸까요. 그것도 흥미롭네요.

다섯째, 외교부에는 통상부도 있습니다. 그래서 외교통상부입니다. FTA를 추진하는 목적이 아마 여기에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질 좋고 싼 양주를 맘껏 마실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주류통상부다, 이런 농담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물론 어느 과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비정상적인 통상방식 아닌가요. 출장길에 면세 양주를 사서 가지고 온다, 면세로 외교관 특권을 통해 들여온 양주를 외교부 공무원은 선물로 받는다, 지극히 비정상적인 통상행태입니다.

여기까지는 농담성 비판입니다. 나쁘게 말하면 코메디 핑계대고 한번 웃자고 한 이야기입니다. 농담처럼 제목에 술취한 외교부라고 했습니다.

증거가 있습니다.
첫째입니다. 얼마전 유명환 외교부장관은 북한이 “적화통일을 위해 핵무기를 개발했다”고 했습니다. 남한에 대한 적화통일입니다. 공산통일입니다. 무력통일입니다. 핵무기를 사용한 원폭통일입니다. 이것이 대한민국 외교부장관의 발언입니다.

둘째입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원자바오 중국 총리간에 정상회담이 있었습니다. 중국 정부와 일본 정부는 정확한 의미 파악에 고심하는 한편 긍정적인 성명을 내놓았습니다. 우리 외교부는 성명 한 장 없었습니다. 도리어 6자회담에 즉각 복귀하지 않는 이상 큰 의미가 없다는 식의 폄하성 비공개 발언을 내놓았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술취했다라는 증거입니다.
아직까지 지난 연말의 양주 숙취에서 깨어나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남아 있는 술이 100병 이었다면, 이미 마셔버린 양주는 몇 병이었는지, 그래서 새삼 궁금해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루빨리 미몽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주취명정(酩酊)상태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한반도의 급변하는 현실에 제대로 눈을 돌리고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동북아시아는 지금 미국을 사이에 두고 시간과의 경쟁 중입니다.
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이화여대 로스쿨, 영남대 로스쿨, 전남대 로스쿨, 광운대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이번 학기는 이화여대 법대에서 2,3,4학년을 대상으로 '현대사회와 법'이라는 교양과목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는 www.e-sotong.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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