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광과 ‘연합맹약 7개조’
이회광과 ‘연합맹약 7개조’
  • 불교저널
  • 승인 2019.07.10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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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은 연합, 내용은 조선불교의 조동종 예속
▲ 일본 승려 복장 차림의 이회광.

원흥사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화계사 홍월초, 봉원사 이보담 등이 설립한 불교연구회는 한국불교를 일본 정토종에 합병시킬 계획을 세우는 등 친일 성향이 강했다. 왜색을 탈피한 교단 통합기구의 필요성이 대두되자 각 도 사찰 대표자 52명은 1908년 3월 원흥사에 모여 최초의 근대적 종단인 원종을 창립했다. 이들은 교단 통합 기관으로 원종종무원(圓宗宗務院)을 설립하고, 해인사 강백 이회광을 대종정으로 추대했다. 이어 원종종무원은 전국 사찰에서 의무금을 걷어 서울 전동에 각황사를 창건하고조선불교중앙회무소 겸 중앙포교소로 삼았다.

이회광은 원종종무원을 공식기구로 인정받기 위해 한성 부윤에게 설립인가를 냈지만 8월 29일 경술국치를 당하여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회광은 일본불교의 도움으로 조선불교가 설 땅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일진회장 이용구의 조언을 받아들여 조동종 승려 다케다 한시(武田範之)를 고문에 추대했다.

이어 전국 72개 사찰로부터 위임장을 받은 이회광은 일본으로 건너가 10월 6일 조동종과‘연합맹약 7개조’를 체결했다.

맹약은 겉으로는 연합을 표방했지만 실제 내용은 예속이었다. 맹약은 △조동종종무원에 고문을 위촉할 것 △조동종의 포교에 편리를 제공할 것 △조동종종무원 포교사를 초빙해 일반 포교 및 청년 승려 교육을 맡기고, 조동종종무원이 파견하는 포교사에게 조동종이 지정하는 수사(首寺)나 사원에 숙사(宿舍)를 제공할 것 등이다. 이처럼 이회광이 맺은 맹약은 조동종이 조선에서 교세를 확장하는 데 원종이 협력해야 하고, 조동종 소속 고문을 통해 원종의 종무 제반사항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한 굴욕적 맹약이었다.

이회광은 귀국 후 전국 주요 사찰을 방문해 대등한 관계에서 맹약을 체결했다며 동의를 요구했다. 그러나 원종 종무원 서기가 조약 전문을 통도사에 전하면서 대중의 분노를 샀다. 맹약의 실체를 확인한 승려들은 “조선불교를 일본 조동종으로 개종시키려는 음모이며, 우리 불교를 일본에 팔아먹으려는 소행”이라고 분개하고, 일본불교에 복속시키려는 조동종과 이회광의 마수로부터 조선불교를 지키려는 보종(保宗)운동을 전개한다. 그 결실이 조선불교임제종 운동이다.

※ 이 기사는 제휴매체인 <불교저널>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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