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무문관: 본래무일물
신무문관: 본래무일물
  • 박영재 교수
  • 승인 2019.07.16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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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선도회 박영재 교수와 마음공부 39.

* 성찰배경: 필자가 직전 글에서 장차 육조혜능(六祖慧能, 638-713) 선사가 되는 영남(嶺南) 지방 출신으로 나이가 32세인 노행자(盧行者)가 오조홍인(五祖弘忍, 601-674) 선사와의 첫 대면에서 선기(禪機)를 유감없이 드러낸 ‘불성(佛性)’ 문답을 다루었었는데, 이번 글에서는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에 얽힌 혜능의 인가(印可) 과정에 대해 <선가귀감(禪家龜鑑)>에 담긴 서산대사의 견해를 포함해, 보다 심도 있게 다루고자 합니다. 이어서 중국 선종의 실질적인 초조(初祖)라고 할 수 있는 혜능 선사의 가풍을 엿볼 수 있는, 인가 직후 쫓기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선사로서의 당당함을 갖추고 첫 제자를 깨우치게 한 일화가 담긴 <무문관(無門關)> 제23칙 ‘불사선악(不思善惡)’을 살피고자 합니다. 끝으로 물리학을 비유로 들며 신수 선사의 가풍도 함께 엿보고자 합니다.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는 역사서가 아닌, 후대의 주류(主流) 선승(禪僧)들에 의해 의도를 가지고 기술된 선종사에 따르면, 연로하신 홍인 선사께서 전법(傳法)을 위해 제자들에게 게송(偈頌)을 지어오라고 하자, 대통신수(大通神秀, ?-706) 선사는 다음과 같은 게송을 지어 바쳤다고 합니다.

‘몸은 진리[보리菩提]의 나무요./ 마음은 명경대와 같네./ (그러므로)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티끌이 묻지 않도록 하라. [신시보리수身是菩提樹 심여명경대心如明鏡臺 시시근불식時時勤拂拭 물사야진애勿使惹塵埃.]’

한편 혜능 선사는 신수 선사의 게송을 누르는 다음과 같은 게송을 지어 바쳐 홍인 선사의 법을 이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보리는 본래 나무도 없고/ 명경 또한 대가 없네./ (그러므로)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어디에 티끌이 끼겠는가? [보리본무수菩提本無樹 명경역비대明鏡亦非臺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하처야진애何處惹塵埃.]’

군더더기: ‘재출불이(在出不二)’를 제창하며 21세기의 흐름에 걸맞는 ‘관음선종’을 새롭게 창종(創宗) 하신 숭산행원(崇山行願, 1927-2004) 선사께서 “육조 선사는 ‘본래무일물’이라는 구절로써 신수 선사의 시를 눌러 홍인 선사의 법을 이어받았으나, 본래무일물이라는 구절에 때가 적지 아니하니, 혜능 선사의 시를 누를 수 있는 시를 지으면 석가세존으로부터 전해온 나의 법을 이어받을 것이다.”라며 제자들을 다그쳐 오셨습니다. 그런데 필자의 견해로는 숭산 선사께서 ‘우열불이(優劣不二)’, 즉 혜능 선사가 신수 선사보다 우월하다는 분별에서도 벗어날 것을 제창하셨다고 여겨집니다.

한편 필자의 경우 일제강점기에 일본 임제종의 묘심사와 남선사에서 수행하셨던 의현종달(의현宗達, 1905-1990) 선사의 문하에서 1987년 9월 점검을 모두 마치고, 선사께서 손수 써주셨던 ‘무일물중무진장(無一物中無盡藏)’이란 글귀를 늘 마음속에 새기곤 했었습니다. 그런데 종달 선사께서 입적하신 지 1년쯤 될 무렵 숭산 선사를 친견했으며, 그후 6개월쯤 지난 1991년 12월 말 필자를 되돌아보다가, 문득 ‘본래무일물’에 대해 떠오른 싯귀가 있어 일기장에 적어두었다가 종달 선사 입적 10주기 기념집인 <이른 아침 잠깐 앉은 힘으로 온하루를 부리네>(운주사, 2001)에 실었던 게송을 여기에 덧붙어 보았습니다.

‘본래 한 물건도 없다는 말/ 육조 선사께서 망발을 부린 것!/ 보리와 명경을 몽땅 내던져 버리니/ 티끌이 온 우주를 토하는구나!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육조망분별六祖妄分別 척보리명경擲菩提明鏡 진애토건곤塵埃吐乾坤.]’

<선가귀감> 불굴불고(不屈不高)

한편 필자의 34번째 기고글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서산대사께서도 신수 선사와 혜능 선사의 두 게송은 말할 것도 없고 선종(禪宗)과 교종(敎宗) 사이에도 우열이 전혀 없다는 ‘우열불이(優劣不二)’를 <선가귀감(禪家龜鑑)> 제27절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부디 바라건대 도를 닦는 모든 수행자들은 자기 자신의 마음을 깊이 믿을 뿐, 비굴(卑屈)해지지도 말고 뽐내지도 말라.[不屈不高] 비굴해지는 것은 경전(經典)을 배우는 자들의 병이고 뽐내는 것은 선(禪)을 닦는 자들의 병이니라.”

이어서 ‘주해(註解)’를 통해 신수 선사와 혜능 선사의 두 게송에 대해 이를 모두 지혜롭게 회통(會通)하는 탁견(卓見)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이런 마음은 모두 평등하여 (평등계에서 보면) 본래 범부와 성인의 구별이 없다. 그러나 (현상계에서 보면) 사람에 따라 미혹(迷惑)한 이와 깨달은 이, 곧 범부(凡夫)와 성인(聖人)이라는 구별이 분명히 있다. 따라서 스승의 다그침[격발(激發)]에 의해 참나[眞我]와 부처가 다르지 않음을 홀연히 깨닫는 것이 돈오(頓悟), 즉 단박에 깨닫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스스로 비굴해지지 말아야 하는 이유로 사실 ‘본래 한 물건도 없다.[本來無一物]’고 한 말이 이를 두고 한 것이다. (한편) 깨달음의 체험을 통해 나쁜 습관(習慣)을 철저히 끊고 범부가 성인으로 탈바꿈하는 것이 점수(漸修), 즉 차근차근 세밀히 닦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기를 뽐내지 말아야 하는 이유로 사실 ‘늘 부지런히 털고 닦는다.[時時勤拂拭]’고 한 말은 이를 두고 한 것이다.

혜능 선사의 가풍(家風)

이어서 홍인 선사께서 야심한 밤에 은밀히 혜능 선사를 인가하면서 전법의 상징인 의발도 함께 전한 다음, 질투하는 이들의 위해(危害)를 염려해 즉시 떠날 것을 명하고 강가까지 배웅했는데, 그 이후 쫓기는 과정에서 벌어진 혜능 선사의 첫 ‘입실점검’ 일화가 담긴 <무문관> 제23칙인 ‘불사선악(不思善惡)’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본칙(本則): 육조 그때 명상좌가 쫓아 대유령에 이르자 육조가 명상좌(明上座)가 다다름을 보고 바로 의발을 바위 위에 던지며 말하기를, “이 의발은 믿음을 표하는 것인데 힘으로 다툴 것인가? 그대가 가져가려면 가져가보아라!”

명상좌가 들려고 하니 태산처럼 움직이지 아니하니 깜짝 놀라 벌벌 떨면서 명상좌가 말하기를, “내가 법을 구하려고 온 것이지 의발 때문에 온 것은 아닙니다. 원하건대 행자여 내게 법을 가르쳐 주십시요.”

육조 말하기를, “선도 생각지 말고, 악도 생각지 말라. 바로 이때 어떤 것이 명상좌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인가?” 명이 이 말에 크게 깨닫고는 전신에 땀을 흘리고 눈물을 흘리면서 예를 올리며 묻기를, “위의 말씀하신 비밀한 뜻 외에 다른 뜻이 있습니까?”

육조 말하기를, “내가 지금 그대에게 설한 것에는 비밀한 것이 없다. 만약 그대가 자기 면목을 돌이켜 보면 비밀은 도리어 그대에게 있느니라.”

명이 말하기를, “제가 황매산의 홍인 선사 밑에서 대중과 함께 했으나 실은 아직까지 저의 본래면목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가르침을 받아 깨치니, ‘사람이 물을 마시고 나서 차고 더운 것을 스스로 아는 것과 같습니다.[如人飮水冷暖自知.]’ 행자께서는 저의 스승이십니다.”

육조 말하기를, “그대가 진정 이렇다면 나와 그대는 홍인 선사를 그대와 함께 스승으로 섬길지니 스스로 잘 지키기 바라네.”

평창(評唱): 무문 스님 가로되 육조 선사께서 잘도 점검했다. 이 일은 도망가다 급하게 나온 노파심이 절절한 이야기이다. 이를테면 갓 수확한 여지(열대 과일)의 껍질을 벗기고 씨를 발라서 그대의 입속에 넣어 주어 다만 그대는 꿀꺽 삼키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송(頌): 게송으로 가로되, 본뜰 수도 없고, 그릴 수도 없고/ 밝힐 수도 없다고 해서 (그냥) 씹지도 않고 꿀꺽 삼키지는 말라./ (그런데) 본래면목은 감추려고 해도 결코 감출 수 없으며/ 세계가 무너져도 그것만은 썩지 않으리라.
[묘불성혜화불취描不成兮畫不就 찬불급혜휴생수贊不及兮休生受 본래면목몰처장本來面目沒處藏 세계괴시거불후世界壞時渠不朽.]

군더더기: 이 ‘불사선악’ 화두는 화두의 경계와 무관하게 상식적인 차원에서조차 ‘선(善)’과 ‘악(惡)’에 대해 절묘한 대비를 이루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장군 출신의 혜명 상좌가 ‘악심(惡心)’을 품고 물질적인 의발에 집착해 마침내 추격에 성공해 혜능 선사로부터 이를 막 빼앗으려 할 때, 혜능 선사의 호통[一喝]에 정신을 차리고 의발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으며 회심(回心)한 후 드러낸 구법(求法)의 마음은 ‘선심(善心)’이었기 때문입니다.

신수 선사의 가풍(家風)

먼저 이해를 돕기 위해 과학적 지식을 언급하겠습니다. 거시세계의 현상을 다루는 고전물리학에 따르면 운동에너지 K와 퍼텐셜에너지 U를 합한 것을 역학적 에너지 E라고 부릅니다. 비유컨대 교도소는 누구든 뛰어넘을 수 없는 높은 장벽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교도소 안의 재소자의 E가 장벽의 높이인 특정한 Uo보다 작으면 재소자는 장벽을 뛰어넘어 교도소 밖으로 탈출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미시세계의 현상을 다루는 양자물리학에 따르면 입자의 역학적 에너지 E가 퍼텐셜에너지 Uo보다 작더라도 장벽을 뚫고 지나가 장벽 밖에 존재할 확률을 가지며 이 양자터널링 효과는 실험을 통해서도 철저히 확인된 사실입니다.

한편 혜능 선사에게 패배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지만, 역사적인 기록에 따르면 신수 선사 역시 측천무후의 귀의를 받으며 존경받는 선사의 삶을 살았기에 그의 가풍도 함께 엿보고자 합니다. 신수선(神秀禪)에서 선 수행의 방편으로 사용하였던 화두 가운데 ‘직입벽중과(直入壁中過: 바로 벽 속을 지나간다)’라는 화두가 있습니다. 사실 화두의 구실은 우리들로 하여금 모든 논리적인 사고를 멈추게 하며 동시에 한동안 진땀을 흘리며 어쩔 줄 모르게 궁지로 몰아넣는데 있습니다. 사실 옛말에 궁즉통(窮卽通)이란 말이 있듯이 진지하게 화두를 들고 씨름을 하다 보면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곳에 다다르게 되며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을 때 모든 의문은 일시에 다 풀리게 됩니다. 이 ‘직입벽중과’라는 화두도 마찬가지로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접근할 수 없기때문에 이런 구실을 하는 좋은 화두입니다. 그런데 미시세계의 현상을 기술하는 양자물리학은 우리의 상식의 폭을 상당히 넓혀주기 때문에 이 화두를 머리로 이해하는 데에 조금의 도움을 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과학의 개념을 통해 선의 화두를 조금 더 친근하게 대할 수 있을는지는 모르나 화두의 목적은 실참실구(實參實究)하는데 있기때문에 다리를 틀고 한동안 진땀을 흘려야만 제대로 그 경계를 체득할 수 있습니다.

군더더기: 참고로 혜능 선사의 제자 가운데 하택신회(荷澤神會, 684-758) 선사가 있는데, 이 분은 <신회어록>에서 신수 선사의 가풍을 돈오(頓悟)없는 점수(漸修) 수행 가풍이라고 몰아붙이고 있으나, 필자의 견해로는 신수 선사도 본래는 선 본질에 입각한 돈오돈수를 강조하였으나 중생교화의 한 방편으로 점수를 주장하였다고 보여지는데 신회 선사가 이 점을 격렬하게 물고 늘어졌던 것에 기인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따라서 이 점은 앞으로 신회 선사 이전의 여러 문헌을 통해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할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일 겁니다.

덧붙여 신회 선사가 육조혜능 선사를 등에 업고 평생토록 자기가 제7조라고 처절히 우겼지만 신회 선사의 법맥은 일찍이 끊긴 반면, 육조혜능 선사의 진짜 법맥은 혜능 선사의 다른 제자들을 통해 오늘날까지 법맥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으니 세상일이 다 자기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닌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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