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창제하고도 역사에 숨겨진 신미 스님 조명
훈민정음 창제하고도 역사에 숨겨진 신미 스님 조명
  • 박선영 기자
  • 승인 2019.07.1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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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랏말싸미’ 7월 24일 개봉

1443년 세종25년 12월 30일, 숭유억불 정책이 한창이던 때 훈민정음 창제가 전격 발표되었고 몇 달 후 집현전의 부제학 최만리는 훈민정음을 반대하는 상소문을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 억불 정책을 한 것으로 알려진 세종 대왕은 훈민정음 창제 후 신미 스님을 위해 경복궁 안에 26칸의 내불당을 짓고, 완공하자 세종이 직접 찬불가를 지어 불보살을 찬탄한 기록도 있다. 세종을 이어 문종이 즉위해서도 신미 스님에게 ‘혜각존자’라는 존호를 발표하고 이후 세조대에도 내불당에 주석하게 하며 대장경 인경 사업을 맡겼다. 그러는 와중에도 성균관에서 “요망한 신미의 목을 끊으소서”라는 상소를 올리고 당대 명문장가인 박팽년이 “신미는 간사한 중”이라며 상소를 올리는 등 유학자들의 지속적인 음해가 이어졌다.

이 분야의 전문가이며 《훈민정음의 길-혜각존자 신미 평전》의 저자 박해진 씨는 “이렇게 훈민정음 창제와 보급에 지대한 공을 세운 신미 스님이 옛 문헌이나 사료에서는 발견하기 어려운데 일본에 남아있는 《선종명가집언해》에는 ‘세조 구결, 혜각존자 등이 번역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며 “신미 스님의 비문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고 복천암에 부도 한 개만 남아있다”고 2015년 한 강의에서 울분을 토했다. 그로부터 4년 만에 지금까지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의 업적으로 알려진 훈민정음에 ‘신미 스님’이라는 인물의 지대한 공로가 있었음을 알린 영화가 나왔다.

숭유억불 정책을 했다고 알려진 세종대왕이 신미 스님과 어떻게 만나 한글 창제의 위업을 달성했는지 그 과정을 엮은 영화 〈나랏말싸미〉가 24일 개봉한다.

영화는 지식을 독점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권력 또한 독점하고자 했던 유신들에 맞서 ‘모든 백성이 문자를 읽고 쓰는 나라’를 꿈꿨던 세종의 이상이 어떻게 현실로 구현되었는지, 가장 높은 곳의 임금과 당시 가장 낮은 신분인 스님의 인연과 협업, 충돌의 과정을 그렸다. 또한 소헌왕후, 신미 스님의 제자이자 도반 스님들, 새로 태어난 문자를 익혀 퍼뜨렸던 궁녀들까지 한글 창제 과정에서 자신의 역할을 해나가는 모습을 보인다.

영화는 훈민정음 서문의 첫 마디인 ‘나랏말싸미’를 제목으로 했으며, 개인의 업적이 아닌 ‘모두’의 성취였던 한글 창제의 이면을 전한다.

세종대왕 역은 송강호, 신미 스님 역은 박해일, 소헌왕후 역은 전미선 배우가 맡아 열연한다.

그러나 전미선 배우는 영화 개봉을 앞둔 지난달 29일 운명을 달리했고, 제작사는 《훈민정음의 길-혜각존자 신미 평전》의 출판사와 저작권 소송을 하고 있다.


※ 이 기사는 제휴매체인 <불교저널>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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