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수, 김앤장 고문에게 ‘전관예우’를 해드리자
한승수, 김앤장 고문에게 ‘전관예우’를 해드리자
  • 최재천 변호사
  • 승인 2009.10.30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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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수 전 총리는 자신의 총리 경력을 사유화하고 있다. 철저히 개인적 소유물로 착각하고 있다. 자신의 경험을 제멋대로 사용해도 되는 줄 오해하고 있다. 이는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오해요, 착각이다.

한 전 총리는 총리를 그만둔 지 30일도 채 되지 않아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 고문으로 취임했다.
공직자윤리법의 적용을 예상하겠지만, 법시행령은 ‘자본금 50억 이상의 영리사기업체’ 경우에만 취업이 금지되기 때문에 김앤장은 얼마든지 자유롭고 한 전 총리 또한 법적으로 문제는 없다. 일단은 그렇다.

그럼에도 남은 문제는 직무연관성일 것이다. 총리로서의 직무와 김앤장 고문으로서의 업무 사이에 과연 연관성을 부정할 수 있을까. 특히 김앤장처럼 대정부일이나 컨설팅 등 정부정책관련 업무까지 폭넓게 취급하는 곳이라면 이러한 연관성은 좀 더 엄격하게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물론 한 전 총리는 직업선택의 자유를 이야기할 것이다. 스스로의 양심과 윤리에 충실할 자신이 있다고 얘기할 것이다. 그럼에도 일반인들은 결코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부족해서 총리까지 지낸 분이 또 다시 사기업체 취업해서 비즈니스를 담당하고 변호사도 아니면서 고문으로 예우를 받아야 하는지, 보통 시민의 눈높이에서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임사하는 한승수 전 국무총리
(서울=연합뉴스) 도광환 기자 = 29일 오전 정부중앙청사에서 열린 이임식에서 한승수 전 국무총리가 이임사를 하고 있다. 2009.9.29dohh@yna.co.kr
세간의 이런 아우성에도 이들은 간다. 전직 총리, 전직 장관, 전직 고위관료들은 끊임없이 고문 자리를 받고 김앤장으로 달려가고 김앤장은 이들을 모셔간다. 김앤장은 로펌이지만 철저한 비즈니스 조직이다. 김앤장 입장에서는 이들을 통해서 비즈니스 효과를 올릴 수 있기 때문에 모셔가는 것이다. 자가용에, 사무실에, 비서에, 업무편의에, 그리고 결코 공개될 수 없는 보수를 통해 이들을 모셔가는 것이다.

더 이상 한 개인의 윤리에 맡기기에는 때 늦었다. 공직자윤리법은 멸치는 잡을 수 있지만 고래는 잡을 수 없다는 것도 이미 확인됐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이 있을까. 당사자들은, 나는 아직 젊고 일할 수 있는데, 그러면 뒷방 구석으로 물러나라는 말이냐, 이렇게 항의할텐데 말이다. 더구나 전직 총리는 외국에 나가면 수상으로서 의전을 받는 대단한 공직인데도 말이다.

아직은 거친 생각이지만, 대통령에 대한 전직 예우처럼 총리에 대한 전직예우법을 만들자는 것이다. 전직대통령예우법처럼 전직총리예우법, 전직국회의장예우법, 전직대법원장예우법, 전직헌법재판소장예우법 등을 만들 필요가 있다. 3부 요인, 혹은 4부 요인의 경우에는 좀 더 특별하게 예우를 하자. 그리고 국민들이 동의한다면 대법관들이 변호사로 개업하는 악순환을 막기 위해서라도 대법관과 국회부의장, 그리고 일부 전직 장관들에 대한 최소한도의 예우 규정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예우하자고 해서 무조건 돈 주고, 경호원 주고, 사무실 주자는 것이 아니다. 직무의 성격과 특성에 맞게 예우의 범위를 정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전직 대법관은 국립학교 로스쿨에 석좌교수나 명예학장으로 모시도록 하는 것이다. 대신 변호사로 개업해서는 안된다.

전직 경제 장관들은 사기업체나 대기업 고문으로 갈 게 아니라, 역시 공공적 성격을 갖는 연구소의 명예소장이나 상임고문으로 일하게 하는 것이다. 외교부의 특별대사 직함을 부여하는 것도 가능한 일이다. 대통령 특사로 끊임없이 활용해서 외교업무를 담당하게 하는 방법도 있다. 외교부 장관의 경우 각 대학 외교학과의 석좌교수로 임명하게 하고 국가가 이를 일정부분 보조하는 방식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자신들이 국가의 돈을 가지고 경험하거나 얻게 된 지식과 경륜을 다시 사회에 환원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 일에 충실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 정도의 산출에 보답할 수 있도록 국가는 전직에 대한 예우 형식으로 이들에게 투입을 하자는 것이다. 막연하게 도와주거나 예우하자는 게 아니라 은퇴 이후 이들에게는 국가와 사회와 후학들에게 다시 한번 봉사할 기회를 주고 국가는 이들을 동의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예우하자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일정한 의무를 부여하자. 외교관 요건을 부여해서 1년에 몇 회 해외강연 등을 요구할 수 있고, 공적인 특강을 요청할 수도 있고, 회고록 집필이나 또는 소프트한 논문을 요구할 수도 있고, 거기에 상응하는 의무를 부담시키면 된다. 얻어낼 수 있다.

물론 장관까지 지낸 사람을, 혹은 대법관까지 지낸 사람을 또 다시 예우해 주자고? 그 정도면 됐다, 반론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시민의 정책감정에 동의한다. 역설적이지만 이들이 국민의 세금을 통해 얻게 된 경험과 지식을 사회로 환원시킨다면 이것이 도리어 세금을 절약하는 일이 될 수 있다. 글도 쓰고, 강연도 하고, 싱크탱크도 이끌어 가고, 외교업무에도 종사하면서 사회에 환원하도록 하는 것이다.

한 전 총리처럼 어설프게 비즈니스 모델을 탐하는 것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한 전 총리는 분명 개인적 양심에 맡겨달라고 자신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셔가는 비즈니스 회사의 입장에서야 이런 개인적 양심은 사실 별개의 문제일 수 있다. 투자하는 만큼 거둬들여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김앤장의 이익과 한 전 총리의 이익과 시민의 이익이 일치하기는 쉽지 않다. 서로 모순될 가능성이 높다. 그럴바에야 국가가 직무의 순결성을 보전해 주자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전직 총리 등 3부 요인과 전직 고위 공직자들에 대한 예우의 의미가 될 것이다.

대신 철저히 청문회를 진행하고 전관예우를 받을 수 있을 정도의 직무의 충실성과 순결성을 유지했는지는 평가하는 시스템을 가져가야 될 것이다. 이 부분은 정부가 아닌 외부평가위원회를 두자. 대신 정부의 입장에서는 총리나 장관을 제멋대로 바꾸거나 방탄용으로 쓰는 습관을 고쳐야 한다. 직무의 독립성을 철저히 보장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대한민국에서 국무총리제도는 사실 헌법적 차원에서는 대단히 유명무실한 제도다. 물론 대통령과 총리의 역할분담 혹은 정치적 긴장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총리는 솔직히 결코 국정의 동반자나 책임자, 혹은 2인자가 될 수 없는 구조이다. 그럼에도 모든 언론은 총리를 ‘일인지상(一人之上) 만인지하(萬人之下)’로 표현한다. 이 말의 어원은 ‘육도’에서 비롯되는데, 더 이상 이 말이 사용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른 표현이 있다. 중국고전 ‘현문(賢文)’에 있는 말이다. ‘학재일인지하(學在一人之下) 용재만인지상(用在萬人之上)’이라고 했다. ‘배움이란 한 사람의 아래, 만인의 위에서 써 먹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비록 한 사람 아래에 자리잡았지만 배움은 만인을 위해서 쓰는 것이다라는 말이 될 것이다. 모름지기 학문과 경험은 그래야 되는 것이다.

한 전 총리가 자신의 경험을 사유화(私有化)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신의 능력으로 장관과 총리를 지냈기 때문에 그 능력과 경험이 자신의 것이라고 착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총리의 경험과 업무가 자신의 것이었기에, 그만 둔 다음에도 순전히 자신이 일신전속적으로 향유하고 사용해도 된다고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공직의 비극은 바로 공직을 사유화하는 데서 비롯된다. (그런 점에서 정운찬 총리의 가마꾼에 대한 비유 또한 지독한 비극이다. 총리가 가마꾼이고 국민이 가마 탄 사람인데, 정 총리는 이 점에서부터 어긋나고 있다. 비민주적이다. 국민주권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한 전 총리의 공직 생활과 경험은 온전히 시민의 머슴으로서, 시민의 부림에 의해 익혀진 일이고, 이것은 결코 사유화할 수 없는 공적인 것이다. 좁게는 한 전 총리의 개인적 양심에 기댈 수밖에 없겠지만, 이제는 공직자윤리법의 틀을 벗어난 새로운 제도적 부양이 필요한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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