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장에서 바라본 비구니 회장선거 역할
율장에서 바라본 비구니 회장선거 역할
  • 정원 스님
  • 승인 2019.09.07 19: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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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전국비구니 회장선거에 드리는 글
"소통" "공심" 실천하는 대표자 만나고 싶다
▲ 제12대 비구니회장 선거에 출마한 육문 스님과 본각 스님.

필자는 2011년에 처음으로 조계종 전국비구니회장 선거에 투표권을 행사했다. 그 후로는 해외에 체류하게 되어 한국의 상황에 대해서 현실감이 많이 떨어진 상태다. 그러나 "전국비구니회장 선거 혼란 치달을 수 있다"라는 제목의 법보신문 기사를 접하고 그 때의 경험이 떠올랐다. 주먹구구식 선거관리와 난장판을 연상하게 하는 투표현장은 민주주의와 디지털 시대를 살아온 젊은 세대에게 엄청난 충격이었고 무한히 실망스러운 기억을 안겨주었다. 그렇게 근 십년의 세월이 흘렀다.  

제12대 회장 선거를 앞두고 한동안 잠잠했던 전국비구니회의 위상과 사회적 역할에 대한 관심과 기대를 요구하는 기사들이 등장한다. 시대에 걸맞은 장기적 비전과 정책 제시에 대한 요구, 불공정한 선거시스템의 개선에 대한 글도 보인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선거 전과 선거 후의 패턴이 한결같다. 선거 전의 후보자 등록, 공약 제시, 선거시스템을 둘러싼 비판과 개선요구 등이 선거 후에는 당선자 소감으로 종결된다. 물론 지난 세월동안 당선자 스님들과 집행부는 열심히 대중소임을 살아 주셨으리라 믿는다.

그러나 당선 후의 4년이라는 시간은 선거권을 행사했던 스님들에게는 증발된 신기루 같다. 새로운 회장 선거를 앞두면 고질적인 선거법은 여지없이 개선되지 않았음이 드러난다. 선거 전에 내세웠던 공약이 제대로 실현되고 있는지에 대한 중간점검도 없었고, 시대에 걸맞은 비구니스님의 위상 제고와 사회적 역할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되었는지에 대한 피드백도 없다. 세상이 초고속으로 흐를 동안 출세간의 속도는 그 자리에 멈춘 듯 구시대적 패턴이 반복적으로 발생했다는 사실이 가슴 아프다.   

이제 전국비구니회 약 50년의 역사를 앞둔 상황에서 제12대 회장 선출시기가 다가온다. 필자는 전국비구니회가 반백년의 역사를 맞이하는 이 시점에서 또다시 '그들만의 리그'로 끝나지 않고, 비구니 스님들의 올바른 위상과 대사회적 역할을 위해 "소통"을 중요한 덕목으로 삼는 대표자를 만나고 싶다.

굳이 특정한 시간과 한정된 장소에 모이지 않아도 해외에서 공부하는 학승이든, 산골 오지에서 정진하는 수행자든, 일생을 수행과 포교로 헌신하신 장로비구니든, 심지어 병환 중에 있는 분이든 조계종단의 비구니라면 누구든지 참종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공정한 소통의 시스템을 마련할 수 있는 대표자 말이다. 그것은 부재자 투표의 형식이어도 좋고 디지털 시대의 혁신적 기술을 사용하여 시간과 공간의 벽을 넘어서는 간단한 시스템이라면 더욱 좋다.  

선거가 끝난 후에는, 회장선거의 시작만 기억에 남는 전국비구니회가 아니라 4년의 임기동안 승단 안팎을 둘러싼 현실개선과 발전적 미래를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하고 피드백하는 그런 대표자 말이다. 모든 중생을 이익되게 하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다양한 방식으로 실천할 수 있도록 대사회적으로 효율적 소통이 가능한 대표자 말이다. 

두 번째로는 "공심"의 덕목을 가진 대표자를 만나고 싶다. 변화하지 않는 기득권과 조직을 향해 실현되지 않는 권리를 요구하기보다 불법의 근본에 부합하는 큰 안목을 가지고 공덕의 힘으로 내부를 변화시킬 수 있는 "원대한 공심"을 가진 대표자 말이다. 승단 내부적으로 '공심'과 '공심 아닌 것'을 구분하는 객관적 기준에 대한 합의가 없이는 누구나 공심을 말할 수 있지만 공심을 실천하기란 어렵다.

수행자와 승단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진정한 공심"의 판단기준은 율과 법에 부합되는가 여부이다. 수행자가 일을 처리함에 있어 부처님께서 제정하신 법과 율에 위배된다면 갈등과 대립 및 소외를 동반한 편파적인 결과를 낳아 최후평가는 사심이 되고 만다. 종단 내에서 비구니 스님들의 피선거권 및 참종권이 제한됨으로써 불평등한 상황들이 존재한다는 비판은 너무 오래된 일이라서 전혀 새삼스럽지 않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이 발생한 근본원인은 승단이 율장에 대한 이해가 결핍되어 있기 때문이다.

▲ 전국비구니회관이 있는 법룡사 법당.

세간의 관점에서 남녀불평등이라고 비판하는 율장 속의 몇 가지 장치들이 미리 출발한 비구승단에게 사회적으로 열악한 대우를 받는 비구니 승단의 교육과 안정을 돕도록 책임 지우고 있다는 느낌이 매우 강하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율장 속에 담겨진 부처님의 음성 어디에도 비구승단이 비구니승단을 차별하거나 하대할 근거와 당위성을 제공하지 않는다. 또한 비구가 개인적으로 비구이기 때문에 비구니에게 존경을 받아야 할 권리를 부여한 적도 없다. 승단은 화합해야 하며 비구 승가와 비구니 승가는 서로 독자적으로 운영하되, 교류가 필요한 경우에는 그에 합당한 갈마의 형식을 지켜야 했다.

현재 우리나라 승가의 비구와 비구니의 차별적 요소는 율장의 문제가 아니라 종헌종법과 각종 제도가 문제이다. 율의 근본정신을 충분히 숙지한 상태에서 논의되고 결정된 정책들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만약 누군가 율장의 팔경법을 언급하면서 반시대적 오류가 있는 정책들을 옹호하고 비구니 승단의 역할과 활동에 대해 비합리적인 사고나 억압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그는 승가의 화합을 깨뜨리고, 쌍방의 증상을 방해하며, 율장의 기본정신은 물론 경장과 논장까지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반증이다. 율장을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하는 출가자의 숫자가 많아지면 조직 안팎에서 진정한 인간평등이 안 이뤄질 수가 없다. 

모든 비구니 스님들과 비구니 사찰들이 모범적인 지계로써 수행의 기초를 튼튼히 하고 중생에 대한 자비심과 애민심을 기반으로 전법활동을 지속하면 승단 내외부에서 진정으로 존경받게 될 것이고, 한국비구니 승단은 정법의 실천자로써 전 세계 불교국가의 이상이 될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조계종 전국비구니회가 계율과 율장에 대한 인식과 실천을 미래 50년 역사의 새로운 비전으로 삼아주길 희망해 본다.

정원 스님 |정원 스님은 대만에서 율장을 연구하는 학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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