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이 몰고 오는 법학의 위기
로스쿨이 몰고 오는 법학의 위기
  • 최재천 변호사
  • 승인 2009.12.24 05: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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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시사큐비즘]
   

저는 로스쿨에 동의했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로스쿨에 대해서는 일정 부분 비판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원이 너무 적습니다. 대학이 너무 적습니다. 변호사 시험 합격자 수가 너무 적을 것 같습니다. 학비가 너무 비쌉니다. 특권화 될 수밖에 없습니다. 3년간 1억이 든답니다.

로스쿨들은 너무 단기적으로 초기 정착을 고민합니다. 그 초기정착의 핵심은 각 대학의 합격률입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시험 선수들에 대한 관심이 상당합니다. 대법원과 법무부는 벌써 2년째 되어가는데도 판사와 검사를 어떻게 충원할지에 대한 대안조차 내놓고 있지 않습니다. 사법의 분권화에 대한 생각도 없어 보입니다. 지방 로스쿨 출신자들을 지방법원이나 지방검찰청에 어떤 비율로 어떤 방식으로 충원할지에 대한 대안이 없어 보입니다. 그렇다면 지방대에 대한 강제 배분이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요.

변호사 집단은 더 한가합니다. 현재 변호사협회와 로스쿨 간에는 어떠한 연결고리도 없어 보입니다. 로스쿨 3년 마치고 변호사 시험 합격해오면 채용하기는 할 건가요. 왜 미국처럼 학교로 찾아가고, 학교와 교류하고, 학교에 설명하고, 방학동안 인턴변호사를 받지 않는 걸까요. 변호사 수습은 어떤 방식으로 할 건가요. 다양성을 모토로 삼았던 현재의 로스쿨이 입학생 충원방식은 타당할까요. 가난하고 힘없는 소수자에 대한 우대조치는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는 건가요. 나이든 사람도 얼마든지 입학할 수 있나요. 로스쿨은 현재 사회 각 분야의 다양한 집단과 충분히 소통하고 교류하며 정보와 지식을 주고받고 있나요. 학생들은 사회와 교통하며 자신들의 경험을 외부에 나눠주고 있나요. 교수들의 교수방식은 충분히 변화되어 학생들을 만족시키고 있나요. 이른바 고시촌인 신림동엔 로스쿨 학생들이 방학 때면 나타난다는 소문은 잘못된 정보겠지요. 이런 점 등에서 저는 비판적입니다. 물론 전면적이 아니라, 부분적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혹여라도 로스쿨의 근간이 흔들릴까봐 하는 얘기입니다.

로스쿨은 유지되어야 하겠지만, 다시 강조하거니와 더 넓어지고, 더 깊어지고, 더 유연해져야 합니다. 더 많이 뽑고, 더 많이 배출해야 합니다. 좁은 문이 아니라 넓은 문이 되어야 합니다. 이미 투자해버린 소수정예의 대학입장에서는 억울하겠지만 차라리 그 대학들의 정원을 늘려주면서 다른 대학에게 인가를 내 주는 한이 있더라도 입구는 넓혀져야 합니다. 당연히 출구도 넓어져야 합니다.

 

최근 이곳 저곳의 특강을 다니면서 로스쿨에 대해 들을 기회들이 있었습니다. 현장의 목소리였지요. 로스쿨 자체에 대해서는 말씀들을 아끼십니다. 아직 시작에 불과하고, 그야말로 조심스럽게 로스쿨을 키워가고 계시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그 점을 존중합니다.

그런데 제게 관심 있게 들린 부분은 바로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로스쿨이 자칫 법학의 위기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염려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첫째, 법학 전문서적이 한계에 봉착했다고 하더군요. 책이 팔리지 않는 겁니다. 전에는 고시 공부에 몰입하는 학생들이 많았기 때문에 다들 즐거운 상상속에 책들을 구입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법서가 팔리지 않는답니다. 법률전문 출판사들이 어려워지지요. 교수들의 학문적 열망이 자칫 약해지는 모양입니다.

둘째, 대학원 자체가 대단히 위축되고 있답니다. 앞으로 로스쿨 교수님들은 로스쿨 출신들이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 때문이랍니다. 아직은 기능적 성격의 로스쿨 법학이 학문적 법학과 교직되기에는 시간이 필요한데, 별다른 희망이 없는 대학원에 법과대학 학생들의 진학이 중단되고 있습니다. 대학원의 황폐화가 학문으로서의 법학에 대한 황폐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셋째, 법대 자체도 재정적 측면에서 간단치 않습니다. 얼마 전까지도 통계 수치를 보면 법과대학 학생의 등록금이 가장 적은 게 마땅했습니다. 학생들을 가리키는데 특별한 원가가 필요 없지요. 강의실과 칠판만 있으면 되는 것이 법과대학 강의였습니다. 굳이 평가하자면 원가가 가장 덜 드는 대학이었지요. 그런데 지금 로스쿨은 그렇지 못합니다. 지금은 법과대 학생들이 있어서 괜찮지만 앞으로는 문제라는 것이지요. 로스쿨 1년 등록금이 거의 2천만원을 육박하지요. 물론 일부 서울 사립대 기준입니다. 정원 100명 기준으로 3학년을 모으면 60억입니다. 교수님들이 대부분 40분 내외이지요. 변호사로 일하던 분들을 모셨습니다. 연봉이 간단치 않겠지요. 여기에다 의무적으로 지급하는 장학금이 있습니다. 자칫 적자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물론 단기간은 괜찮지요. 하지만 장기적으로 볼때 다른 대학의 부담으로 이어집니다. 다른 대학은 참고 있어야 하나요. 당신들 스스로 해결하라고 하겠지요. 그러면 로스쿨 등록금 인상으로 이어집니다. 그렇지 않아도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어려운 관문인데, 그때는 더더욱 어려워지겠지요. 더 좁은 문이 되겠지요. 결국 법학의 위기가 자연스럽게 로스쿨의 위기와 결합되는 상황도 예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저는 이 부분의 전문가가 절대로 못됩니다. 그냥 최근 몇몇 교수님들께 배우는 과정에서 이런 저런 상황을 알게 됐습니다. 간단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문제는 사법시험을 언제까지 더 끌고가느냐의 문제와도 나름대로 상관이 있고, 로스쿨 장학생을 어느 정도까지 늘리느냐의 문제와도 상관은 있을 겁니다. 하지만 좀 더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일까요.

로스쿨에 대한 우리 사회의 입장과 이해를 좀 더 분명하게 할 필요가 있다라는 점에 도달합니다. 단지 몇 년 더 공부시키자고 로스쿨 도입한 건 아니잖아요. 사회의 다양한 자원을 어떻게 법률전문가로 싸고 넓게 끌어들이자는 것이겠지요. 사법시험이 가진 폐쇄성과 특권성을 극복하자는 것이었지요. 접근가능성을 높이자는 것이었지요. 그렇다면 현재 그렇게 되고 있나요. 자칫 법학계와 로스쿨이 양쪽 모두 진퇴양난의 위기에 빠지는 건 아닐까요. 물론 그럴 리는 없겠지요. 하지만 지금쯤은 한 번쯤 고민을 좀 더 정밀하게 가져가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법학도 살고, 로스쿨도 살고, 법조계도 살아야합니다. 로스쿨 학생도 살아야 합니다. 법과대 학생도 살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시민의 입장에서 ‘싸고 질 좋은’ 미국산 수입쇠고기가 아닌, 한국산 법률전문가를 손쉽게 고용해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되겠지요. 더 넓히고 더 깊이 있게 하고, 더 유연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이화여대 로스쿨, 영남대 로스쿨, 전남대 로스쿨, 광운대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이번 학기는 이화여대 법대에서 2,3,4학년을 대상으로 '현대사회와 법'이라는 교양과목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는 www.e-sotong.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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