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이안 투본강의 청풍명월
호이안 투본강의 청풍명월
  • 소암 스님
  • 승인 2019.09.3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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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8월의 폭염에 시달리고 또 조국 사태를 보며 잠시 베트남으로 도피성 배낭여행을 하고 있다. 이십여 년 전 사이공과 인접한 땅굴 유적을 견학한 뒤 수년 전 하노이Hanoi와 다낭Da Nang에 처음 간 이후 다낭과 호이안Hoi An여행이 세 번째다.

베트남의 마지막 왕조가 있던 후에Hue와 호이안은 다낭에서 각각 버스로 두 시간, 한 시간의 가까운 거리로 많은 한국인의 관광명소로 떠오르고 있는 역사 도시다. 작년 이맘때에도 나는 역시 다낭을 거쳐 세계문화유산인 호이안에서 추석을 보냈다. 밝은 달을 보면서 세계 각지에서 온 수를 셀 수 없는 사람들이 광장을 메우고 사자춤을 추며 투본강에서 보트를 타고 등불을 흘려보냈다.

청계천의 등불축제도 이때쯤 절정을 달할 것이다. 수백 년 묵은 목조건물이 줄을 잇고 관광객을 맞아들인다. 한국의 조선시대 건물은 북촌, 서촌에 남아있고 인사동의 고가는 남산한옥마을로 이전해 몇 채를 제외하고 이제는 볼 수 없으나 이곳 호이안은 수백 채가 강변을 따라 줄지어 있어 한번 다녀간 사람들은 거듭 오게 만든다.

4백 년 전 화교들이 자리 잡고 또 일본과의 문화교류로 활발한 교역과 문화예술이 발전한 작은 도시로 베트남에서도 단연 손꼽는 명소다. 옛 해양 실크로드의 도시 호이안은 아마도 고려시대에 상호교류를 했을 것이며 이곳을 지나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의 해양요지인 말라카로 가는 길목이었으니 말이다.

그런 역사전통이 존재하는 이곳이 예사롭지 않은 곳이며 다낭과 더불어 현대한국과도 잊을 수 없는 도시가 됐다. 베트남의 악몽이자 한국군의 훈장으로 생각한 이곳이 한국인을 부끄럽게 한다.

미군과 더불어 전쟁을 수행하다가 무고한 민간인을 약 9천 명 노소남녀를 가리지 않고 학살한 현장이 이곳에서 멀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가기 힘든 학살 현장의 기념비가 서 있는 그곳을 한국인 여행자들의 코스에 집어넣고 가보면 좋겠다. 관광은 단순한 오락만 있는 게 아니고 문화체험과 학습도 겸하는 것이고 우리가 베트남에 빚진 정신적 부채를 탕감할 수 있다면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물질적인 배상 문제는 정부가 해야 할 일이고 사과와 추모의 마음은 민간인들의 몫이라고 본다.

현지 가이드와 차량을 준비하지 않으면 찾아가기가 힘들다는 말을 듣고 작년에 이어 금년에도 '베트남 학살비'가 있는 유적지를 가보지 못해 송구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재작년 가을 '베트남학살 진상규명위' 실무자와 오랜 지인인 강우일 주교가 진행하는 토크쇼에 참석했다가 아직도 정부 차원의 진상규명과 배상 문제는 여전히 소극적이라는 말을 듣고 베트남 국민에게 빚진 마음은 여전하다. 우리가 일본에 식민지배와 만행에 대한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듯이 우리 스스로 베트남 정부와 국민들에게 공식사과하고 배상해야 일제강점기 피해배상도 정당성을 가진다.

붕정만리의 추억과 평화

우리가 백 년 전 한일합방의 치욕을 겪고 3·1 독립운동의 횃불을 든 이래 국내외 독립운동을 가열차게 벌이고 항일투쟁에 몸 바친 독립지사들이 상당수였듯이 베트남도 역사적으로 중국, 프랑스, 미국 등 세계 최강대국들과 전쟁을 벌이고 민간인들이 총동원해서 투쟁을 벌인 결과 독립을 쟁취했다.

먼 역사를 보면 역대 중국과 전쟁을 벌이고 그때마다 살아남았으며 근대 일본과의 식민지도 2차 대전의 영향으로 끝난 지 70년이 넘었다. 그러나 남은 것은 한반도가 분단되면서 아직도 반쪽국가로 상호연명 하는 현실이 우리를 우울하게 만든다. 베트남이 치열한 전쟁 끝에 통일된 것과 비교하면 우리가 경제대국이라 하지만 수치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폭력에 의하지 않는 평화적 공존과 상생적 통일은 아직도 우리에게는 먼 훗날의 꿈인가? 문재인 정권이 출범하고 남북영수 대화와 소통을,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의 거듭된 회담을 통해 남북평화공존의 시대가 도래할 줄 기대했으나 역시 쉽지 않다. 남북의 이해관계와 북미 수교의 타결을 위해 전제조건의 해결이 중첩되기 때문이다. 미국은 북한의 핵동결과 미사일 발사 중지를, 북한은 한미군사 합동훈련의 중지와 경제적 지원, 그리고 미국의 경제제재 해제와 조속한 북미 수교를 원한다.

문재인 정권의 북미 중재자로서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열쇠를 쥐고 있는 미국의 입장은 좀처럼 빗장을 열지 않는다. 물론 트럼프대통령의 남북한 지도자에 대한 예찬은 긍정적이나 한반도정책이 극적으로 전환되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다. 우리정부 역시 큰 틀에서는 미국과 중국 등 사강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나 최소한 오랫동안 문 닫은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을 재개할 수 있는 역량을 총동원해야 할 절박성은 보이지 않아서 유감이다. 가장 좋은 것은 미국의 동의를 받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우리 스스로의 노력보다 미국만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정부 정책의 안이함이 조금은 염려스럽다.

다시 맞는 추석의 한민족축제는 남북을 하나로 만들고 지나간 역사와 추억을 생각나게 한다. 고향을 이북에 둔 실향민들과 이남이 고향인 우리 모두에게 감사와 행복을 선사한다. 중국 역시 추석의 연휴는 긴 명절로 축제 열기가 대단하다. 오래전 추석을 중국에서 지낸 경험으로 풍성한 선물과 민족대이동이 엄청난 규모인 것을 보고 놀랐던 적이 있다.

호이안에서 수많은 단체관광객의 숫자가 첫째가 중국인, 둘째가 한국인이다. 추석을 하루 앞둔 오전과 저녁에도 중국인들의 관광행렬은 멈추지 않는다. 식당과 커피집 긴 투본강변을 따라 산책하면서 풍광이 뛰어난 강가와 고가옥 인파물결을 지켜본다. 뜨거운 낮보다 건물 안에서 밤에는 쏟아 나오는 인파에 치여 자칫 헛걸음칠 수도 있다. 4백 년 전의 중국 화교가 세운 광조회관, 백당, 베트남과 일본의 문화교류 상징인 내원교는 호이안의 중심이다.

적은 인구에 비례해서 관광객이 넘치기 때문일까? 강물은 탁하고 예전 운하를 만들어 배를 타고 다녔을 뱃길은 오염이 심해 시궁창 냄새가 난다. 이 강물이 맑다면 참으로 산수화 같은데 호이안의 환경문제는 오래된 화두로 시민들과 관광객들의 희망 사항이다.

하기야 서울의 청계천도 80년대까지는 도시의 오염이 심해 죽은 하천이었다.

환경문제는 이제 한 나라 한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 백 년간의 산업화 사회는 온갖 인공쓰레기를 양산했고 지나친 산업에너지는 전 지구를 파괴 오염시켜 온난화의 재앙을 초래하고 있다.

가까운 일본도 수년전의 핵발전소 폭발로 땅과 생물이 오염되고 방사성 물질을 바다로 방류해서 오대양 전체를 파괴시키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인간의 발전된 문명이란 결국 천연자연과 인간사회를 파괴한 대가가 아닌가 싶어 서글퍼진다. 이래서 인간사가 제행무상이라 하지 않는가.

오늘 오전 호이안의 중심가인 법보사에 가서 참배했다. 중추절 법회는 수백 명의 신도들이 참여한 가운데 간소하게 끝났다. 마침 주지스님이 밖에 앉아 있어서 말을 건넸다. 나이 든 분이니 한문을 알 것이라 믿고 필담으로 인사했더니 역시 소통이 된다. 70대 초반의 노장님의 법명은 행념行念. 삼십분가량 문자로 주고받고 녹차도 몇 잔 얻어 마셨다. 절 입구에 넓은 늪이 있어 연지를 만들면 이 절이 명물이 될 것이라 권했다. 마침 식당에 음식을 날라 가보니 선종사찰인지 순 채식이었다. 추석이고 점심시간이라 나에게 식사를 대접해 먹었더니 역시 파, 마늘을 넣지 않은 한국 선방 음식과 흡사했다.

장대비가 두어 시간 쏟아졌다. 뜨거운 날씨가 시원해졌다. 늦은 오후 날씨는 개이고 밤에는 보름달을 볼 것이다. 작년에도 여기에서 추석을 보냈는데 인파가 엄청났다. 한국에도 밝은 달이 뜨고 만 리 길인 이곳도 같은 달이 뜨니 시공을 초월해 청풍명월의 축제는 같다. 바라건대 풍성한 추석이 지나면 가을도 깊어질 것이다.

베트남은 60년대 세계최강의 미국과 전쟁을 벌이고 쌍방 많은 피해를 남겼다. 전쟁에서 승리한 위대한 주권국가다. 한국도 미국과 연합군으로 참여해 경제적 이익을 얻었으나 동시에 베트남에 큰 피해를 준 과거사가 있다.

한반도의 평화공존과 남북한 통일은 우리의 최대 화두로 남아있다. 하루속히 남북공존시대가 열리기를 보름달에 기원한다. 동서독 평화 통일 후 동독 출신의 메르켈Merkel 총리는 벌써 총리연임이 네 번째다. 한국이 주도해 언제인가 평화통일이 되면 남북 지도자가 남북 국민의 지지에 따라 국가수장을 번갈아 맡을 수 있으니 남북이 미리 걱정 안 해도 좋다.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이 불러 유명해진 '왓 어 원더풀 월드What a Wonderful World'는 반전영화 '굿모닝 베트남Good Morning Vietnam'의 주제음악으로 세계평화 음악의 상징이 됐다. 우리도 비무장지대에서 남북과 세계인이 모여 한반도 융성과 세계평화를 노래했으면 좋겠다는 열망이다.

※ 이 기사는 제휴매체인 <불교저널>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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