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정하라 6
선정하라 6
  • 하도겸
  • 승인 2019.10.15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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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뜻으로 보는 입보리행론 32

 

그 어떤 시련이 와도 겁을 내서 돌아서서 결국 중지해서는 안 된다. 어떤 일을 하든 처음에는 생소하고 낯설고 힘들고 두려워도, 익숙해지면 공포도 환희로 바뀌기도 한다. 한때 별로였던 사람도 자꾸 보다 사라지면 보고 싶어지듯이 말이다. 누구든지 나와 남 모두를 빨리 구하고자 한다면 “나와 남 바꾸기”라는 최고로 거룩한 비밀 수행을 해야 한다.

우리는 몸에 집착하여 작은 위험에도 두려워한다. 이렇게 공포를 야기하고 두려움을 일으키게 하는 이 몸에 대한 집착을 적처럼 두려워해야 한다. 굶주림·갈증·질병을 모면하거나 치료하기 위해 새나 물고기나 짐승을 잡으려고 다니는 길목에 몰래 숨어 기다린다. 어떤 이는 자신의 이익과 명예를 지키기 위해 부모까지 죽이거나 삼보의 공양물을 훔친다. 결국 그런 인과로 인하여 불타는 무간지옥에 떨어진다. 지혜로운 현자라면 이 몸에 집착하지 않을 것이며 원수처럼 보며, 경멸하여 무시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만약 남에게 이것을 주면 나는 무엇을 먹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이는 결국 자기만 생각하는 굶주린 귀신[아귀]이 된다. '만약 내가 이것을 먹으면 남에게는 무엇을 주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결국 남의 이익을 생각하는 천왕이 된다. 자기를 위해 남을 괴롭히면 이 사람은 지옥에서 고통을 맛볼 것이다. 그러나,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면 결국 모든 일을 원만하게 성취할 것이다.

자기를 사람들 위로 높이려고 하면 악취(도)에 태어나 미천하고 어리석은 바보가 된다. 그러나, 남을 높이고 존중하면 선취에 태어나 명예가 드높은 현자(賢者)가 된다. 자기를 위해 남을 부리면 언젠가 종이 될 것이며 남을 위해 스스로 행하면 언젠가 군주의 지위를 누리게 될 것이다.

세상의 행복은 남의 행복을 위하는 데서 온다. 세상의 고통은 자기만의 행복을 원해서 오는 것이다. 많은 말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어리석은 이는 자기만을 위해 일하고 부처는 남을 위해 일한다. 이 두 가지의 차이를 잘 봐야 한다.

나의 행복과 남의 고통을 실제로 바꾸지 않으면 부처를 이룰 수도 없으며, 윤회해도 행복을 얻을 수 없다. 다음 생은 고사하고 하인은 일하지 않으며 주인은 품삯을 주지 않으니 이생에서도 뜻을 이루지 못한다. 남들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금생이든 내세든 행복을 모두 놓치게 된다. 거꾸로 남에게 고통을 준 인과로 인하여 어리석게도 참기 힘든 고통만 받으리라.

이 세상의 모든 손해와 두려움과 고통은 모두 '나'라는 집착에서 생기는데, 이런 집착이 도대체 내게 왜 필요한가. 나를 온전히 버리지 않으면 그런 고통도 버릴 수 없다. 이는 불을 버리지 않으면 화상을 면할 수 없는 것과도 같은 이치이다. 따라서 나의 해로움을 줄이고 남의 고통을 가라앉히기 위해 내 자신을 남에게 내줘야 하고 남들을 나처럼 귀하게 대해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나는 남보다 아래에 있다는 것을 마음으로 분명히 알아야 한다. 모든 중생의 이익을 위하는 것 외에는 이제 다른 것은 생각하지도 말아야 한다. 이제 눈이나 다른 그 무엇도 자기만의 이익을 이루려는 데 써서는 안 되며, 중생의 이익에 반하는 데 쓰는 것도 옳지 않다. 그러므로 늘 중생을 중심에 두고 나의 몸에 가지고 있는 무엇이든 다 가지고 이웃들을 이롭게 하는데 써야 한다. 나보다 낮은 이도 나처럼 위하고, 나를 남처럼 대해야 한다. 이렇게 자타 분별이 없는 마음으로 시기·경쟁·자만을 다스려야 한다.

그는 존경받지만 나는 멸시를 받으며 그는 재물이 있으나 나는 가난하다. 그는 칭찬받지만 나는 비난을 당하며 그는 행복하지만 나는 불행하다. 나는 일이 많으나 그는 편안하게 쉬고 있으며 그는 세상에 명성이 자자하지만 나는 미천하고 덕이 없다. 이는 내게 공덕이 없는 탓이니 어찌하랴. 나의 모든 공덕을 다해도 어떤 이보다는 못하지만 어떤 이보다는 내가 낫기도 하다. 계율을 깨뜨리거나 견해가 지혜롭지 못한 것은 번뇌의 힘이지 의지가 아니다. 까닭에 어떻게 해서든 최선을 다해 치료해야 하며,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기꺼이 치료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는 날 보살피지도 않으면서 도대체 어찌하여 나를 경시하고 업신여기는가! 나를 위하지 않는다면 내게 그의 공덕은 무슨 의미가 있으며 또 무슨 소용이 있는가!

거꾸로 중생들이 맹수의 입과 같은 악도에 문턱에 서 있는데도 그들을 위한 연민이 없으며, 나아가 자만하여 스스로가 공덕이 있다고 추켜세우며 지혜로운 이들을 깎아내리며 경쟁하려고 한다. 동등한 이들과 비교해서 무엇이든 내가 우월해야 하기에 재물과 명예를 모두 다 걸고라도 싸워서 반드시 이기려한다.

어떻게 해서든 나의 공덕은 세상에 다 드러내야만 하며, 남이 가진 공덕은 누구도 알지 못하게 한다. 자기의 허물은 절대로 비밀이니 감추고 나는 공양 받아도 그는 아니며 나는 지금 재산을 잘 모으고 존경 받아도 그는 아니어야 한다. 그의 옳지 않은 일로 인해서 모든 중생들이 비웃으며 심한 욕설을 퍼붓는 것을 오랫동안 즐겁게 바라본다. 번뇌에 찌든 그가 감히 나와 경쟁하려 든다고 해도 어찌 나의 배움이나 지혜나 혈통이나 재물을 대적할 수 있겠는가! 이와 같이 중생 누구나 나의 공덕을 들어 알고 있다면, 그제서야 털끝이 서는듯한 전율을 느끼며 만족하여 행복해한다.

설사 그에게 재물이 있어도 내 일을 시키며 그에게는 생계비만 챙겨주고 나머지는 내가 강제로 빼앗는다. 그는 행복에서 멀어지도록 나는 늘 위해를 가할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수백 번도 넘게 더 윤회하며 서로 고통을 겪었다.

마음으로 자기 이익만을 탐하다 세월만 무수하게 흘러가고 말았구나. 너무나 애를 섰지만 큰 고통만을 얻었다. 이제라도 중생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며, 부처님 말씀은 틀림이 없으니 이 공덕은 나중에 꼭 보게 될 것이다. 만일 그대가 예전부터 이런 선업[이타행]을 지어왔더라면 부처의 원만한 성취는 아니더라도 상황이 지금처럼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와 같이 남들의 정혈 방울까지도 그대가 '나'의 것처럼 여겼던 것처럼 그렇게 중생들을 ‘나’라고 생각해야 한다.

스스로를 살펴서 남을 위해 일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자기 몸에 있는 어떤 것이든 다 가져가 남들을 이롭게 하는데 써야 한다. 나는 행복해도 남은 불행하며 나는 고귀해도 남은 천하며 나는 도움 받아도 남은 버려진대도 왜 자기 스스로를 부러워하지는 않는가! 내 행복은 남에게 주고 남의 고통도 내가 받아야 한다. 늘 '이것을 왜 하는가?' 라고 스스로를 살피며 허물을 알아차려야 한다.

남이 잘못을 했어도 내 자신의 허물로 받아들이고 내게 작은 잘못만 있어도 여러분들에게 밝혀야 한다. 남의 명성은 널리 칭찬하고 나의 명성은 조용히 감추며 나는 미천한 종처럼 여겨 모두를 위해 일해야 한다. 본래 허물을 많이 가졌다고 생각하며, 공덕이 조금 있어도 칭찬하지 말고 공덕이 있더라도 누구도 알지 못하게 해야 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에게 해를 끼친 해악이 크다. 앞으로 중생의 이익을 위하고자 하오니 그 해악을 제가 받도록 기원해야 한다.

독선에 빠져서 거만하게 목에 힘주며 군림하지 말고, 새 신부처럼 수줍어하며 조심하며 자제해야 한다. 이처럼 행하는데 머물러야 하며, 그 외의 악행은 하지 말아야 한다. 이와 같이 다스려야 하며 혹시 선을 넘게 되면 바로 대처해야 한다. 권고한대로 하지 않는다면 모든 벌을 다 줘서라도 번뇌의 원인인 자신을 끊어 버려야 한다. 언제 어디서든 괴롭힐 수 있었던 예전과는 달리, 지금 정체를 알아차리고 지켜보고 있는데 이제 어디로 도망가려고 하는가! 이제 모든 오만함을 다 부수어버려야 한다.

이제는 자신만을 위해 일한다는 생각은 모두 버려야 한다. 이미 남에게 팔려진 몸과 다름없으니 불평하거나 상심하지 말고 잘 받들어 모시며 봉사해야 한다. 만일 방일하여 중생을 위하지 않는다면 저 무서운 지옥의 사자에게 던져질 것이 분명하다. 과거에도 수없이 던져져서 오랫동안 고생을 겪었다. 여전히 원한으로 가득 차 있으니 이제 이기심을 부셔 버려야 한다.

스스로 행복하고 싶다면 자신만이 행복해서는 안 되고 남들부터 행복하게 만들면 된다. 마찬가지로 스스로를 지키고 싶다면 다른 이들을 늘 보호해야만 한다. 몸이라는 것은 잘 돌보면 돌볼수록 더욱 엄살을 부리게 된다. 이처럼 더러운 욕망은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가 없으니 앞으로 어떻게 충족시킬 수 있겠는가!

욕망은 충족될 수 없어도 계속 원하기에 번뇌와 불만이 생긴다. 하지만 그 어떤 것에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빠짐없이 골고루 갖추게 된다. 그러므로, 몸이 원하는 것을 채우려하도록 그런 틈을 주게 내버려둬서는 안된다. 마음을 앗아가는 그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바로 최고의 재산인 만족과 행복을 얻을 수 있다.

죽으면 몸은 불결하게 썩으며 결국 한 줌의 재가 되며, 스스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타력으로 옮겨질텐데 어찌하여 이를 ‘나’라고 집착하는가! 살았건 죽었건 이 몸 기관 덩어리에 집착한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결국 죽은 몸은 흙덩어리와 다름없는데 아직도 내 몸이라고 스스로를 높여서 잘난 체하고, 남을 업신여기는가. 이 몸의 욕망을 보살피느라 쓸데없는 고통만 겪었는데, 나무처럼 불타버리는 이 몸에 집착하거나 화를 낸들 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공들여 수습하든 독수리의 먹이가 되게 하든, 시체 자체는 애착하거나 분노할 게 없는데, 어찌하여 그토록 집착했는가! 아무리 멸시해도 화를 낼 수조차 없고 누군가 칭찬해줘도 알 수도 없게 됐는데 왜 우리는 그토록 애를 썼던 것일까!

누군가 자신의 몸을 애착했던 이유가 자신을 위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모든 중생들을 위하는 것이 자신에게 더 유익한데 어째서 중생들의 몸은 소중하게 돌보지 않는가! 그러므로 '나'라는 집착을 버리고 중생을 위해 온 몸을 바쳐야 한다. 몸에 허물이 많더라도 중생들을 위해 일을 하는 동안은 우리의 몸도 잘 돌보아야 한다.

어리석은 행동은 지금까지 한 것으로도 충분하니 이제 그만두고 지혜로운 보살들의 길을 따라서 불방일(不放逸)하라는 말씀을 온 몸에 새기며 잠과 혼침(昏沈)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 두가지를 정복하신 대자비심을 지니신 보살처럼, 온갖 어려움을 극복할 때까지 인내해야 한다. 밤낮으로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으면 고통은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 장애를 없애기 위해서는 늘 스스로 선정(禪定)에 들어가되, 혹시라도 잘못되면 바로 벗어나 다시 마음을 바로잡고 올바른 선정의 대상에 집중하면 한다.

/ 하도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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