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니카 대사관은 한국 외교의 축소판
도미니카 대사관은 한국 외교의 축소판
  • 최재천 변호사
  • 승인 2010.02.01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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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시사큐비즘]
   

아이티에서 구조활동 중인 119 구조대와 한국 외교부 도미니카 대사관을 비교한 MBC 뉴스가 네티즌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한국 외교부, 특히 영사 업무의 무능과 관료주의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과거부터 그래왔고, 지금도 그러하고, 앞으로도 그러할 일이 우연히 MBC 카메라에 노출됐을 뿐이다.

 

난민촌에 전해진 사랑
(서울=연합뉴스) 아이티 지진 피해 복구가 한창인 가운데 월드비전 플레이스 아크라 난민촌의 지진 피해자들이 월드비전이 지급하는 식량구호품을 받기 위해 한 줄로 서 있다. 2010.1.27 << 월드비전 제공 >>photo@yna.co.kr
먼저 아이티에는 대사관이 없다는 현실에 주목해야 한다. 도미니카 대사가 아이티의 주재대사다. 대한민국은 국격만 따질뿐, 외교 역량과 수준은 결코 이에 미치지 못한다. 외교 예산도 턱없이 부족하고 해외 공여 예산도 턱없이 부족하다. 국제기구 진출도 턱없이 미진하고, 국제기구 관련 예산도 턱없이 검약하다. 상품의 세계화만 노래할 뿐, 사람의 세계화, 문화의 세계화, 외교의 세계화에 대해선 철저히 겸손한 나라다.

한국 외교는 4강 외교, 최근 들어선 3강 외교말고는 없다. 아니다. 1강 2중 외교일 것이다. 오로지 한미동맹이 근간이 되다보니 워싱턴 스쿨만 외교부의 핵심부서로 대접받는다. 어떤 외교관이라도 한번 잡아놓고 물어보라. 어디서 근무하고 싶냐고. 1000퍼센트 워싱턴이고, 외교부에서는 북미국이다. 그 다음 정도가 UN쯤 될 것이고, 그 다음 정도가 영어를 사용하는 선진국이다. 영어 말고는 다른 외국어는 없다. 미국 말고는 다른 주재국은 없다. 그 다음이 최근 들어 각광받고 있는 중국이고, 일본이다. 일본과 중국이 2중쯤 될 것이다.

종래에는 워싱턴 스쿨과 도쿄 스쿨이라는 이름으로 두 인맥이 대립하는 수준이었지만, 이미 워싱턴으로 주도권이 완벽하게 넘어간 지 오래됐다. 그렇다면 도미니카 대사관은 어느 정도 수준일까. 아이티 주재대사를 겸임하고 있으니 인력과 장비와 정보는 충분할까. 아닐 것이다.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었을 것이다. 왜 하필 이런 일이 했을 것이다. 말년에 무슨 고생이야 했을 것이다. 평생 좋은 대사관 보직 한 번 받지 못하고, 조용히 대사 소리 들으며 끝내려는데 이게 무슨 짓이야 했을 것이다.

물건을 받아서 잔뜩 쌓아놓았지만 배포할 선도 없고, 정보도 없고, 사람도 없다. 차량도 없다. 모르긴 몰라도 한국에서 파견된 직원 두세 명하고 현지에서 채용된 교포직원 두세 명하고 기능직 현지직원이 전부였을 것이다. 도미니카에서 아이티는 한 달에 한두 번쯤 다녀오는 수준이었을 것이다. 굳이 변명하자면, 예산도 뻔한 수준이었을 것이다. 인건비와 관리비뿐이고, 외교안보 역량을 창의적으로 설계할 수 있는 예산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이런 수준의 대사에게, 이런 수준의 대사관에게 더 이상 바란다는 건 어쩌면 무리였을지도 모른다. 처절한 비주류 신분이고 비주류 대사관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 따른 비난은 온몸으로 받을 수밖에 없는 또 다른 비극을 감당해야 한다. 비주류의 운명이다. 공은 주류에게, 과는 비주류에게 전가되는 법이다.

대사관 내에서도 영사 업무는 가장 업무능력이 떨어지거나 못난 사람이 가는 부서다. 가장 골치 아프고 가장 피곤하다. 어쩌다 한국 여행객이 시신으로 발견되면 맨 먼저 쫓아가야 되는 사람들이 이 사람들이고, 파벌싸움에 때로는 말려들기도 한다. 왜냐하면 교포사회의 분열이 상당한 곳이 여럿 있고, 특히 평통자문위원을 둘러싼 최근의 논란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가 될 것이다. 교포 사회, 한국 여행객, 한국에서 출장나온 분들을 모두 상대해야 하는 가장 피곤한 대민 업무가 바로 영사업무다. 솔직하게 표현하자면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다. 가장 기피한다. 그래서 가장 대사 눈밖에나는 사람이 영사업무를 담당한다.

이런 대사관에서 한국인을 위한 한국인의 영사업무가 제대로 진행 될 수 없다. 힘도 없고, 권위도 없고, 양쪽에서 치이고, 욕은 가장 먹기 쉽고. 이런 업무가 바로 영사업무다. 솔직한 표현이라는 것을 용서해 주기 바란다. 누가 하려고 하겠는가. 어떤 서비스가 나올 수 있겠는가. 외교부가 영사업무 개선방향을 수십 차례 발표했다. 이번에도 또 영사업무 개선방향이 나올 것이다.

미국 중심의 외교안보 역량을 펼치다 보니 나머지 국가는 관심밖이다. 한국에 나와있는 외국대사관을 대하는 방식도 하나도 다르지 않다. 철저히 1강 2중, 혹은 1강 3중 위주다. 나머지는 역시나 비주류를 대하는 방식으로 대응한다. 외국에 나가있는 한국대사관도 마찬가지다. 관심도 없고, 사람도 안 주고, 돈도 주지 않는다. 정보보고 백날 올려봐야 채택될 일 없고, 대통령의 정상외교가 있을 리도 없다. 수년 돼도 대통령이나 총리나 장관 한번 다녀가지 않는다. 그만큼 관심밖이다. 우리가 주요 선진국에 대해서는 특별한 관심을 경주하지만, 중진국이나 후진국에 대해서는 종종 무시하는 눈초리를 보이곤 한다. 그 무시의 눈초리가 주재국 대사관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음에도 불과 몇 십 년만에 사실상 선진의 반열에 오른 대한민국이 우리보다 조금 못산다고, 우리보다 조금 힘이 약하다고 종종 무시하곤 한다. 우리가 지난 70~80년대 비난했던 일본에 대한 경제동물이라는 용어를 생각해보면,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도미니카 대사의 발언, 도미니카 대사관의 무능은 결국 한국 외교의 축소판이다. 당연한 일이다.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늘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국제사회에 대한 눈높이를 교정하지 않는다면, 그리하여 외교안보 역량을 근본적으로 재설계하지 않는다면, 미국 중심, 주변 4강 중심의 외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외무고시로 통칭되는 외무관료제의 기득권 의식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면, 외교관이라는 특권계급의식에서 자유롭지 못한다면 도미니카 대사관 사건은 백년하청이다.

 

   
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이화여대 로스쿨, 영남대 로스쿨, 전남대 로스쿨, 광운대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이번 학기는 이화여대 법대에서 2,3,4학년을 대상으로 '현대사회와 법'이라는 교양과목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는 www.e-sotong.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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