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율·학 지남, 무소유 정신 계승한 입전수수의 삶”
“선·율·학 지남, 무소유 정신 계승한 입전수수의 삶”
  • 서현욱 기자
  • 승인 2019.10.22 14: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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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선리연구원, 22일 호암당 인환 대종사 추모 학술세미나
최동순 동국대 불교학술원 교수는 21일 재단법인 선학원 부설 한국불교선리연구원(원장 법진 스님)이 개최한 ‘호암당 인환 대종사’ 1주기 추모세미나에서 호암당 인환대종사의 생애와 사상을 발표했다.
최동순 동국대 불교학술원 교수는 21일 재단법인 선학원 부설 한국불교선리연구원(원장 법진 스님)이 개최한 ‘호암당 인환 대종사’ 1주기 추모세미나에서 호암당 인환대종사의 생애와 사상을 발표했다.

“인환 스님은 스승인 원허 스님의 계율 정신을 이어 평생 지계행을 지속했고, 출가와 함께 시작한 선 수행을 그치지 않았고, 계율과 선리 등 불교학 연구와 후학 양성을 지원했다. 여기에 원허 스님의 무소유 정신을 이어 법맥이나 사찰 개산 등 회상을 이루기보다 입적할 때 남긴 것이 학술서적이 대부분이었다.”

최동순 동국대 불교학술원 교수는 21일 재단법인 선학원 부설 한국불교선리연구원(원장 법진 스님)이 개최한 ‘호암당 인환 대종사’ 1주기 추모세미나에서 이 같이 말했다.

최 교수에 따르면 인환 스님은 선과 율, 그리고 불교학에 정통했으며, 지계행과 무소유 정신을 실천한 승려였다. 또 캐나다 미국 등에서 한국불교를 널리 알리는 등 입전수수의 삶을 살았다.

최 교수는 “인환 스님은 지계청정을 두고 스승 원허 스님의 실천을 계승했다.”고 평가했다.

인환 스님은 불문에 입문과 함께 석암혜수 율사의 가르침을 받았고, 평생 계율을 연구하고 지계행을 이어갔다. 인환 스님은 부산 피난 생활에서 경허-혜월-석호-석암으로 이어지는 율맥을 계승하고, 계율학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또 전계사와 증사로 활동하고, 오계파지 운동을 펼치는 등 지계청정이었던 원허 스님을 지계실천행을 그대로 계승했다는 것.

최 교수는 또 인환 스님이 지계행과 함께 선리 연구 및 참선 수행을 일과처럼 행했던 점을 강조했다.

그는 “인환 스님은 선정 생활을 놓지 않았다.”면서 “인환 스님은 출가와 함께 선원에서 대중생활을 시작했고, 서옹, 향곡, 지원, 설봉 등 선 실천과 선리에 밝은 선지식을 만나 그들의 진면목을 보고 듣고 배웠다.”고 했다.

그러면서 “학승의 길을 걸으면서도 일과에서 좌선을 놓지 않았고, 스승 원허 스님이 금강산 마하연을 지원하고 표훈사에서 선원을 개설해 운영하고 수좌들을 지원한 것처럼 인환 역시 선수행을 하는 수좌들을 지원했다.”고 했다.

또 선학원이 발간하는 월간 선원에 ‘증도가’와 ‘선리참구’를 연재해 선학을 보급했다. 이 연재물은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21열린 호암당 인환대종사 추모 학술행사에서 인환 스님의 게율학연구와 사상을 발표하는 이자랑 동국대 교수와 토론하는 오경후 교수
21열린 호암당 인환대종사 추모 학술행사에서 인환 스님의 계율학연구와 사상을 발표하는 이자랑 동국대 교수와 토론하는 오경후 교수

인환 스님과 뗄 수 없는 것은 불교학 연구이다. 인환 스님은 선암사, 해인사, 통도사 강원을 거쳐 동국대학교에 편입해 석사 과정을 마치고, 스스로 길을 열어 일본 고마자와 대학과 도쿄 대학에서 박사를 취득했다. 그리고 동국대학교로 돌아와 교수를 역임했다. 그는 동국대 석사를 ‘ 대승불교비불설에 관한 연구’로 취득했다. 권기종 동국대 명예교수는 추모 세미나에서 인환 스님을 회고하면서 “그가 대승불교비불설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취득한 것은 당시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분야로 다른 학생들과는 불교학 시각이 크게 달랐다.”고 전했다.

인환 스님은 탁월했다. 승려로서 도일해 박사학위를 취득한 것도 그가 처음이었다. 인환 스님은 일본 유학시절 히라카와 아키라, 나카무라 하지메, 다마키 고시로, 가마다 시게오 등 당대 유명한 불교학자들의 가르침을 받았고, ‘신라불교계율사상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 논문은 일본어와 한국어로 모두 출간될 정도로 탁월한 연구로 손꼽힌다. 한국에 돌아온 인환 스님은 동국대에서 도제를 양성하고, 계율학은 물론 일본에서 배운 묵조선 등을 비롯해 선리 연구에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 스승 원허 스님은 금강산불교회를 조직해 김태흡과 석전 박한영 등 연구자를 지원했듯, 인환 스님 역시 평생을 불교학 연구와 연구자들을 가르쳤다.

최 교수는 인환 스님의 소욕지족한 무소유 생활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인환 스님은 연구생활과 학술발표 활동 등에 활발했지만 법맥제자를 양성하거나 도량(사찰) 개산을 통한 회상을 이루지 않았다.”면서 “학술자료로서 서적과 문서에 의욕이 강했다. 인환 스님이 남긴 유품은 대부분 불교학 관련 책 뿐이었다.”고 했다.

인환의 무소유에 최 교수는 원허 스님의 정신을 계승한 것으로 평가했다. 그는 “인환 승님의 소욕지족한 수행생활은 스승 원허 스님의 무소유와 관련돼 있다.”며 “오랫동안 표훈사 주지와 낙산사 주지를 역임한 원허 스님 역시 옷가지 한 두 벌만 남기고 입적했고, 인환 스님이 스슬의 무소유 정신을 계승한 것”이라고 했다.

인환 스님에게서 눈에 띠는 점은 입전수수의 삶이다. 불교학을 전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 갔다. 수많은 언론사에 기고와 연재를 했고, 강의를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가르쳤다. 사찰교양대학과 불교학 관련 세미나에 누구 보다 많이 참여했다. 선학원 부설 한국불교선리연구원의 고문을 맡아 수많은 세미나와 토론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나와 후학들의 공부 성과를 경청했고, 토의했다. 이런 활동은 입적 직전까지 이어졌다.

또 한국불교 국제화에도 힘을 보탰다. 일본에서 공부할 때는 숭산 스님과 제일 홍법원을 같이 운영했던 그는 1977년 캐나다 토론토로 넘어가 랭귀지 스쿨부터 밟으면서 백일기도를 시작했고, 교민들에게 불교학을 강의했다. 곧 토론토 대각사를 창건하고, 활동영역을 넓혀 시카고 불타사 주지를 겸직하고 미국 동부와 서부를 오가며 법문하고 불교학을 강의했다. 북미활동을 접은 것은 입적한 지관 스님의 거센 요청 때문이었다. “한국불교 인재 양성에 힘쓰라”는 지관 스님의 요청에 귀국한 인환 스님은 입적 때까지 경국사에 머물며 후학을 양성하고 사부대중에게 교학을 가르쳤다. 한국에 와서도 인환 스님은 방학 중에 미국 캐나다 유럽 동남아 일본 등을 오가며 법문하고 참선을 지도했다.

인환 스님과 인연을 이야기하는 한국불교선리연구원장 법진 스님.
인환 스님과 인연을 이야기하는 한국불교선리연구원장 법진 스님.

인환 스님의 삶은 스승 원허 스님과 함께 한국 현대사의 비극적인 시대를 관통했다. 사제의 비극은 한국전쟁에 기인한다. 원허 스님은 40여 년간 표훈사를 중심으로 활동했고, 한국전쟁 직전 공산주의를 피해 남하해 불교정화와 출범에 기여했다. 1962년 불교재건위원 5인 중 한 명이었고, 제1대 종회의원이었다. 인환 스님 역시 원산 출신이었다. 인환 스님은 1.4후퇴 때 산심히 군함을 타고 피난 왔다가 출가했다. 일제강점기 망국의 시대를 거친 두 사람은 모두 북한을 탈출했고, 한국전쟁이라는 엄혹한 시절을 거쳤다. 때문에 원허 스님과 인환 스님 모두 북한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분단된 조국은 그들의 복귀를 허락하지 않았다.

최 교수는 “낙산사에서 북파공작원 위패를 모시고 위로했던 원허 스님은 금강산 표훈사로 돌아가지 못하고 서울 적조암에서 입적했고, 제자인 인환 스님 역시 북녘 가족의 안위를 위해 출가하고 그들을 위해 복전을 쌓으며 살았지만, 원산에 두고 온 모친과 가족들에게 돌아가지 못하고 경국사에서 입적하는 현대사의 비극을 겪으면서 이데올로기의 긴장 속에서 사문의 길을 걸었다.”고 했다.

이날 세미나에서 신규탁 연세대 교수는 ‘호암당 인환 대종사의 선학 연구와 사상’을, 이자랑 동국대 불교학술원 교수는 ‘호암당 인환 대종사의 계율학 연구와 사상’을 각각 발표했다.

이날 세미나를 주최한 한국불교선리연구원장 법진 스님은 “스님은 후학들에게 자료를 보고 분석하는 법부터 글 쓰는 방법까지 자상하고 준엄하게 일어 주신 분”이라며 “오늘은 호암당 인환 대종사를 추모하는 자리지만 스님의 학은을 입은 이들은 모두 스님의 숭고한 정신을 계승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인환 스님이 입적 전 전계제자로 삼은 대운 스님(양주 지장사 회주)은 “스님은 노년 보행이 불편하고 눈이 어두워지고 작은 소리를 듣기 어려웠지만, 스님은 자연스런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적적요연한 경지의 청정본연으로 돌아가기 좋은 기회로 삼으셨다.”면서 “스님은 늘 수도는 난행고행만 일삼는 게 아니라, 그때 그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을 하고, 공연한 분별심을 일으키지 않고 걸림 없이 행하는 것”이라고 가르치셨다“고 회고했다.

#호암당 인환대종사 행장(한국불교선리연구원 정리)

경국사에 주석할 때의 인환 스님.
경국사에 주석할 때의 인환 스님.

1931년 음력 8월 2일 함경남도 원산에서 출생한 대종사는 22세 되시던 1952년 8월 부산 선암사 소림선원으로 입산 득도했다. 그 이듬해 2월에 원허 효선(圓虛孝璇) 스님을 은사로, 석암 혜수(昔巖慧秀) 율사로부터 사미계(沙彌戒)를 받았다.

1955년 해인사 불교전문강원에 입학한 스님은 그 이듬해인 1956년에 구족계를 받고, 1959년까지 해인사와 통도사에서 부처님의 일대시교를 열람했다.

인환 스님이 선학원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60년 10월 운허 용하(耘虛龍夏) 스님 주도로 불교사전 집필 편찬 작업에 동참하시던 때였다. 2년간 이 작업을 하면서 현대불교학의 필요성을 절감하신 스님께서는 곧바로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로 진학해 학사과정에 이어 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치고 1966년 문학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스님은 삼장을 연찬하는 중에도 틈틈이 선수행을 해 1967년 7월에는 부산 선암사 소림선원에서 10하안거를 성만했다.

선과 교를 함께 닦던 스님께서는 40세 때인 1970년 일본 유학길에 올라 5년 만에 문학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했다.

스님은 국제포교의 필요성을 깨닫고 1977년 5월 캐나다 토론토에 대각사(大覺寺)를 창건하여 캐나다와 미국을 중심으로 참선수행을 지도했다. 52세였던 1982년 2월 모교인 동국대학교로 돌아와 1996년까지 후진 양성을 위해 헌신했다. 교수로 재임 기간 동안 스님은 정각원 원장, 불교문화연구원 원장, 불교대학장, 오계파지운동 국제본부 총재를 맡아 동국대학교와 한국불교의 발전을 위해 매진했다.

66세에 정년퇴임을 하신 후에도 불교발전을 위한 스님의 열정은 식지 않았다. 2003년에는 동국대학교 명예교수로, 2005년에는 도쿄대학교 대학원에서 외국인 객원교수로 연구활동을 이어갔다. 그 이듬해인 2006년에는 대한불교조계종 법계위원회 법계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재단법인 선학원 산하 한국불교선리연구원 고문을 맡아 입적할 때까지 선학원과 인연을 이어갔다.

2010년에는 한일 불교유학생교류협회 대표, 2011년에는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원장과 동국역경원 원장 소임을 맡는 한편, 대한불교조계종 원로회의 의원으로 추대돼 대종사 법계를 품서 받았다.

스님은 2013년 7월 한국일보에서 제정한 ‘자랑스런 한국인상’을 수상했다. 2016년부터 경국사 환희당에서 한주로 계시던 스님은 2018년 10월 26일 세수 88세, 법랍 66세로 입적했다.

스님은 삼장을 두루 연찬하고, 현대불교학을 폭넓게 섭렵했며, 선과 교를 넘나들었다. 율장을 학문적으로 깊이 연구하는 한편, 스님 스스로 계율을 실천하시는 율사가 되어 후학들의 지남(指南)이 되었다. 국내 국외를 가리지 않으시고 전법에도 헌신하던 스밈은 이 시대의 수행자가 어떠한 모습이어야 하는지 몸소 보여주시고 사바와 인연을 마쳤다.

[이 기사에 대한 반론 및 기사제보 mytrea7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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